2008년 이른바 ‘노크 귀순’으로 탈북한 이철호(34)씨가 살인미수 혐의로 다음달 국민참여재판을 받는다. 귀순 초기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용감한 탈북자로 영웅 대접을 받았던 그는 지난해 11월 아내의 목을 졸라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아내의 목을 조른 후 지인에게 ‘한국에 와서 많은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정말 힘들었다. 오늘 비록 목숨을 끊지만 통일의 이념은 뜨거웠다’는 문자를 보낸 후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뢰밭과 북한의 감시를 피해 목숨을 걸고 찾았던 남한에서의 삶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 지난 2008년 탈북한 이철호씨.
탈북자 스타에서 살인 미수 혐의로 추락북한군 15사단에서 중위로 근무하던 그는 2008년 4월 27일 귀순했다. 그는 이날 북한 철책선에서 남한의 철책선까지 30여분을 걸어 GP 초소 앞에 나타났다. 그는 후일 한 온라인 카페에 “당시 철책에 서 있는 5분 동안 내가 나서 자란 고향을 뒤돌아 보며 힘겨운 결단을 하기까지 정말 모질고 힘들었다”고 썼다.
당시 지뢰밭과 북한의 감시를 피해 초소 앞까지 직접 걸어온 이씨의 귀순은 ‘노크 귀순’이라는 이름이 붙으며 화제가 됐다. 철책을 넘은 뒤 속옷을 벗어 흔들며 우리 측 전방 초소(GOP)에 총까지 쐈는데 반응이 없자 최전방 경계초소(GP)까지 걸어가 우리 장병을 불러 남한 사회에 안긴 것을 두고 생긴 말이다.
그는 두 달여 만에 한 종합편성채널에 출연해 귀순 이유와 북한 사회, 군의 모습 등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씨는 북한 보위사령부 장교 출신의 최초 귀순자로 북한군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허술한 우리 군의 방비 태세를 폭로하는 역할까지 더해져 큰 관심을 받았다. 그는 방송 출연 당시 “내가 방송에 출연하는 게 북한 최전방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한에서의 개인적 삶은 잘 풀리지 않았다. 귀순 후 탈북자 단체 등의 도움을 얻어 취직했지만, 적응을 잘 못하고 방송 출연 등으로 문제가 생겨 금방 해고되는 경우가 많았다. 주변 탈북자들은 “북괴를 괴멸시켜야 한다는 일념 아래 방송 등에 매진한 것이지만, 개인 생활에는 마이너스가 됐다”고 했다.
2012년 탈북자 출신인 A(29)씨와 결혼도 했지만, 가정생활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이듬해 이씨가 사업을 벌인 것이 잘되지 않으면서 줄곧 가정 불화에 시달렸다. 이씨는 당시 지인에 사기를 당해 정착금 등 전 재산을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둘은 별거에 들어갔고, 이혼 소송을 밟기 시작했다.
이씨는 이때 남한에서의 생활에 큰 좌절을 겪었다고 한다. 지인인 탈북자 출신 영화감독 정성산씨에 따르면 이씨는 종종 북한해방과 종북 척결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나라에서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얘기를 종종 했다고 한다. 탈북자로서 대의(大義)와 개인적 삶 모두 어그러져버렸다는 얘기였다.
- 정성산 감독 페이스북 캡쳐.
그러던 지난해 11월 27일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아내와의 이혼이 감정이 아닌 경제적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 이씨는, 아내를 집으로 불러 다시 합치자고 권유했다고 한다. 이씨의 또 다른 지인은 “이씨는 아내가 아직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고, 돈만 벌면 금방 사이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그런데 아내는 생각이 조금 달랐던 것”이라고 했다.
아내 A씨가 자신의 권유를 거절하자, 이씨는 순간 분노가 치솟았다. 그래서 아내의 목을 졸랐다고 했다. 아내는 다행히 생명을 잃지는 않았다. 이후 이씨는 행동을 후회하며 자살을 결심했다. 500만원이 든 통장을 아내 손에 쥐여주고, 친분이 있는 탈북자들에게 ‘한국에 와서 스트레스 이겨내기 정말 힘들었다. 비록 목숨을 끊지만 통일의 이념은 뜨거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다행히 의식을 차린 아내의 신고 덕에 경찰이 출동해 자살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씨는 조사 과정에서 결국 구속 기소됐다.
지난해 12월 10일 기소된 이씨는 1심 재판과정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 다음 달 7일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씨는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에서 “아내를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며 “국민의 판단을 받아보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