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지역에 부는 거센 민족주의 바람이 위험수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한국 영토인 독도를 두고 일본이 집요하게 영토 분쟁을 걸고 있는 것을 비롯, 중·일 간에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러·일 간에는 쿠릴열도 영유권 분쟁으로 빚어진 국가 간 긴장이 국민 간 갈등으로 번져가 각 나라에서 분쟁 상대국을 규탄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 민족주의 정서를 모으고 확산하는 자극제(刺戟劑)로는 영토 문제만큼 인화성(引火性)이 높은 것이 없다. 영토 문제와 결합한 민족주의 바람이 한번 불기 시작하면 이성에 바탕을 둔 합리적 의견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그러나 영토 문제는 목청을 높인다고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성숙한 국가의 노련한 지도자들은 민족주의 정서를 영토 문제에 개입시키지 않으려고 자제하는 것이다. 민족주의에는 태풍과 같은 에너지가 담겨 있지만 그 에너지에 방향 감각을 일깨워 줄 눈이 달려있지 않아 사태를 극단적으로 악화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다 일본 총리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듯 현재 동북아 분위기는 정반대다. 정치 지도자들이 과도한 민족주의 정서를 부추기고 거기에 올라타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다시 그런 참화(慘禍)를 불러오지 않기 위해 통합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100년간 침략과 피침(被侵)의 악연(惡緣)을 쌓아온 동북아야말로 평화와 안정을 보장할 다자적 안보 틀이 절실한 곳이다. 그러나 가해자(加害者) 국가였던 일본은 한국·중국·러시아와 영토를 둘러싼 3면(面) 분쟁의 주역(主役)으로 나서고 있고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은 해군력을 늘리며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여러 이웃 국가와 영토 및 영해 분쟁을 빚고 있다. 중국과 영토 분쟁에 얽힌 나라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제휴·동맹 관계를 모색하고 나서는 상황이다. 미군과 일본 자위대가 지난 21일부터 미국령 괌 인근 해역에서 중국군이 센카쿠열도를 침범할 경우를 상정한 도서(島嶼) 탈환 훈련을 벌이고 있고, 미국을 방문 중인 중국 인민해방군 대표단은 "댜오위다오가 미·일 방위조약의 적용을 받는 것에 반대한다"며 이런 움직임에 쐐기를 박고 나섰다.
지금 동북아는 20년 전부터 핵과 미사일로 이 지역 안보 구조를 흔들어온 북한 변수(變數)에 한국·일본·중국·러시아가 얽힌 영토 분쟁으로 거세진 각국의 민족주의 바람이 더해져 취약한 안보 구조가 더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 다음 대통령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은 동북아 안보 구조를 꿰뚫어보고 대한민국 국익(國益)을 지켜나갈 외교적 안목과, 동맹을 선택하고 유지해 나가는 국제 정치적 리더십이다.
각국의 민족주의 정서가 맞부딪치는 동북아의 새로운 국제 환경은 든든한 동맹 관계만으로 안보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냉전 시대와는 또 다르다. 대한민국은 주변 군사 대국들과 달리 언제 안보와 관련한 중대 선택과 마주칠지 모르는 나라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선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대선 후보들의 외교와 안보에 관한 자질 검증은 아예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정치인과 국민이 이런 비정상(非正常)을 비정상인 줄로 깨달아야 정상(正常)으로 나가는 첫발을 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