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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빌었다, 김정일 안 죽었으면… 무사 소식에 안도
용천역 폭발사고 9년이 지났다. 한국의 외교·안보를 지금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묻고 싶다. “한반도 미래전략이
 
중앙일보 기사입력 :  2013/03/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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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빌었다, 김정일 안 죽었으면… 무사 소식에 안도

[중앙일보] 입력 2013.03.12 00:26 / 수정 2013.03.12 00:26

고건의 공인 50년 (20) 용천역 폭발사고

2004년 4월 22일 평안북도 용천의 용천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사고가 일어나 160여 명이 사망했다. 용천역에서 200m정도 떨어진 용천(북한 표기로는 룡천)소학교에서만 어린이 70여 명이 숨졌다. 건물 형체만 남은 용천소학교.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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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돌아왔다. 관저 거실 안 흔들의자에 앉아 버릇처럼 TV 뉴스 채널을 켰다. 저녁 8시쯤 됐을까. 북한 용천역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는 CNN 속보가 떴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방문을 마치고 특별열차편으로 돌아온다고 하지 않았나. 설마….’

 동시에 거실에 있던 팩스의 소리가 분주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국방부 등에서 급하게 보낸 정보보고였다.

 ‘2004년 4월 22일 하오 1시께 북한 평양 북방 약 150㎞ 정도 떨어진 평안북도 용천군 용천역에서 대규모 폭발사고 발생.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탄 특별열차가 사고 지점을 지났는지 여부와 통과 시간은 현재 확인되지 않음. 폭발사고 규모와 원인은….’

 팩스 종이를 쥔 손이 떨렸다. 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외교안보 라인에 전화를 돌렸다.

 “김정일 신변이 어떤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알아본 뒤 즉시 보고하세요.”

 그날 밤, 누워봐도 잠이 올 리가 없었다. 관저의 거실로 나가 흔들의자에 다시 앉았다. CNN 채널을 켰다 껐다 했다. 그때까지 확실한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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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발사고로 김정일이 만약 죽었다면, 그럼 친(親)중국 군사정권이 들어설 수밖에 없다. 남북 간 긴장 관계가 심해지면 어떻게 되나.’

 김정은이 등장하기 한참 전의 일이다. 후계 구도는 윤곽도 드러나지 않은 때다. ‘김정일의 사망이라고 하는 급변사태가 일어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쓸 수 있는 수단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남북 간 대화가 완전히 단절된 시기는 아니었다.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1947년 유엔 총회의 결의 사항을 내세워 남북 총선거를 하자고 제안해야 하나. 그 조항이 지금도 유효한가.’ 심지어 고민은 거기까지 치달았다.

 밤을 새면서 ‘제발 김정일이 안 죽었으면’ 하고 바랐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창에서 뿌옇게 빛이 새어 들어왔다. 오전 4시쯤 기다리던 소식이 CNN 속보로 보도됐다. 엇비슷한 시간 팩스로 들어온 정보보고도 같은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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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에 도착. 신변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

 그제야 의자 뒤로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23일 오전 용천 재해대책 관계장관 회의를 소집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조영길 국방부 장관, 정세현 통일부 장관, 고영구 국정원장,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은 물론 이헌재 경제부총리 등 경제 장관까지 불렀다. 내가 먼저 발언했다.

 “우선 인도적 지원을 합시다. 북한의 요청이 있든 없든 상관 없습니다. 동포애로 접근해야 해요. 의약품 등 구호품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에 전달하도록 합시다. 북한이 희망한다면 시설 복구까지 해주도록 합시다.”

 그리고 반기문 외교부 장관에게 물었다.

 ▶고건=지원 금액은 얼마로 하는 게 좋겠습니까.

 ▶반기문=30만 달러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고건=좀 부족한 것 같은데요.

 ▶반기문=50만 달러 정도는 어떨까요.

 ▶고건=중국은 어느 정도로 할까 모르겠네요. 그래, 100만 달러로 합시다.

 나중에 따져보니 100만 달러는 잘한 결정이었다. 중국이 96만 달러 물품을 지원했다. 외교부가 쓸 수 있는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반기문 장관이 큰 예산을 선뜻 내놓기 어려웠을 거다. 하지만 30만~50만 달러를 지원했다면 같은 동포국가로서 체면이 안 설 뻔했다.

 회의는 1시간 만에 끝났다. 경제부처 장관들은 회의실에서 내보냈다. 통일·외교·국방장관과 국정원장에게만 “잠깐 앉으시라. 회의를 조금만 더 하겠다”고 했다. 긴히 물어볼 게 있었다.

 “제가 어제 한숨도 못 잤어요.”

 다들 표정이 이상했다. 왜 내가 잠을 못 잤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아, 혼자만 잠을 설쳤나 보다. 고민은 대통령 권한대행 혼자만의 몫이었나 보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김정일이 죽었으면, 급변 사태로 이어졌다면 어떻게 했을 겁니까. 무슨 대책이라도 생각해둔 게 있습니까.”

 “….”

 회의장에 침묵만이 흘렀다. 한국의 외교안보를 책임지는 수장들이 입을 다물고 아래만 쳐다보던 그 풍경,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후 한국과 미국이 ‘작전계획 5029’를 내놓았지만 한반도 미래전략이 아닌 군사계획일 뿐이다.

 9년이 지났다. 한국의 외교·안보를 지금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묻고 싶다.

 “한반도 미래전략이 있습니까.”

 
정리=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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