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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조금만 더 잘할걸, 조금만 더
[권석천의 시시각각] 우리를 슬프게 하는 국정원
 
중앙일보 기사입력 :  2013/11/0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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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조금만 더 잘할걸, 조금만 더

[중앙일보] 입력 2013.10.30 00:08 / 수정 2013.10.30 00:29
권석천
논설위원
10월의 늦은 오후 서울 명동에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다. 거리 양편의 노점들은 하나둘 불을 밝히고 하루를 시작한다. 성당 들머리엔 ‘명동성당 종합계획 1단계 신축공사’ 표지판이 붙어 있다. 귀에 익은 노랫가락이 어디선가 들려온다. ‘잘할걸’. 버스커 버스커다.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은 난 다시 그대 생각에….”

 성당으로 향하는 철제 계단을 따라 성당의 연대기가 공사 가림막에 펼쳐져 있다. 1984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1987 인권·민주화운동의 중심지. 글귀 밑 미사 사진 속에 청년 박종철의 영정이 있다. 그렇다. 87년 6월이 있었다. 함성과 구호와 최루탄의 시간. 지금 우리는 그해 6월이 놓은 길 위에 서 있다.

 “그때는 우리가 완벽했을지라도 지금은 닿을 수 없어….”

 며칠 전 여론조사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지난해 하반기, 정말 이상했어. 야권 후보들을 비난하는 트윗들이 주말에 사라졌다가 월요일부터 급증하곤 했거든. 트위터 순위 사이트를 봐도…. 국정원 수사를 보니 왜 그랬는지 알겠더군.

 컴퓨터 앞에 종일 앉아 있다 퇴근하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들도 보통 샐러리맨들처럼 ‘불금’(불타는 금요일)과 주말이 기다려졌을 것이다. 그들은 댓글 올리고 리트윗(재전송)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문제는 그렇게 ‘평범한’ 일상에 있었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도대체 우리가 왜 이렇게….”

 그해 6월 한국 사회는 대통령 직선제만 하면 민주주의가 이뤄질 거라 믿었다. 일상까지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재편되지 않는 한 민주 정치는 요원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정보기관 직원, 군 사이버사령부 요원의 업무 내용이 상식적이지 않다면 정상적인 사회라 부를 수 없다는 사실도 예감하지 못했다.

 그 책임이 정치인들에게만 있을까. 준비된 대통령은 준비된 시민이 있을 때만 유효하다. 안타깝게도 우린 준비되지 않았고 깨어 있지 않았다. 우리가 깨어 있었다면 우리의 친척이나 대학 동창인 그들이 선거 개입으로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이었다면 과연 거부할 수 있었을까. 고통스럽지만 인정해야 하는 사실도 있다.

 “조금만 더 잘할걸, 조금만 더 참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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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나라 정치수준은 그나라 국민의 의식수준, 국민과 정치판이 그나물에 그밥인한 희망은 없다!

 그해 6월 우린 서둘러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자기 자리로의 복귀를 조금 미루고 한국 사회, 한국 정치의 미래를 놓고 토론을 벌였어야 했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묻고 답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상식과 일상을 만들어가야 했다. 권력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어떤 이유로도 국가기관이 시민들의 여론에 검은 손을 뻗으려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서로의 가슴에 새겨 넣어야 했다.

 입으론 노동자·농민을 말하면서도 다들 자기 앞의 생(生)에 초조해했다. 구호 소리만 높았을 뿐 생각을 나누지 않았다. 어쩌면 그 철저하지 못함에 보복당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상처가 덧나고 고름이 터진 뒤에야 ‘철저 수사’를 다짐하는 총리 담화문에서, 국정원 방어에 급급한 여당 의원들의 모습에서, ‘구국의 결단’과 ‘아버지 대통령 각하’를 거론하는 발언록에서 상식의 퇴행을 확인하고 있다.

 “조금만 더 잘할걸, 조금만 더….”

 현실은 홍상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통속적이고 비루하다. 그래도 개선하려는 의지까지 접지는 말아야 한다. 젊은 공무원들이 허접한 글들을 리트윗하면서 안보 업무라고 믿는 현실만큼 소름 끼치는 일은 없다. 이젠 의식의 일대 변화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때 대학생이었던 40대, 넥타이 부대였던 50대, 60대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매번 비슷한 곳을 맴도는 회로에서 벗어날 순 없는 걸까. 착잡한 마음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점령한 거리로 들어갔다. 세상은 상점과 노점의 불들로 환했지만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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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우리를 슬프게 하는 국정원

[중앙일보] 입력 2013.10.23 00:38 / 수정 2013.10.23 00:38
권석천
논설위원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나오는,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하는 국정감사입니다.”

 그제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에서 박영선 국회 법사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실제 국감장 뒷줄에 있는 검사들 표정에선 만감이 교차했다. 당혹과 좌절, 무력감, 그리고 조직과 인간에 대한 허무함이었다.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 직무에서 배제된 윤석열 여주지청장과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의 설전은 그만큼 거칠게 서로의 마음을, 검사들 마음을 후벼 팠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표범이 사냥하듯 신속한 수사가 필요했다.” 트위터에선 윤 지청장의 어록이 빠르게 리트윗(재전송)되고 있다. 나는 그의 절차 위반은 잘못이라고 보는 쪽이다. 한 검찰 간부의 설명이다.

 “윤 지청장이 위임전결로 국정원 직원을 체포했다고 하는데요. 위임전결은 ‘차장급’이 아니라 차장이 해야 합니다. 위임받은 이상 지검장이 반대하는 결정을 해서도 안 되고요.”

 수사권과 기소권을 쥔 검찰의 권한을 절차로 규율하지 않는다면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외압을 받는 상황이었다면 예외를 인정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 예외가 관행이 되고, 시민의 자유를 빼앗아온 게 현실이다. 그 점에서 얼마 전까지 검찰권 확대와 특수부 수사에 제동을 걸었던 야당 의원들이 절차 위반까지 편드는 모습은 씁쓸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건 국정원의 태도다. 한 대학 교수는 “국정원이 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느냐”고 묻는다.

 “국정원 요원들이 댓글뿐 아니라 트위터로 정치와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게 사실이면 기관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죠. 민주주의는 국정원이 지키고자 하는 국가 안보의 핵심인데….”

 종북 세력을 척결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해도 그 과정과 절차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국정원법도 정치활동 관여를 금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의혹을 자체 조사한 뒤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 의뢰를 했어야 마땅하다. 문제의 트위터들을 보고 검사들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윤 지청장)고 분노했다면 국정원은 더 크게 분노해야 한다. “남재준 원장이 트위터 의혹에 격노하고 엄중 조사를 지시했다”는 소식이 풍문으로라도 들려와야 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건 하나 더 있다. 청와대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으로 의심되는 트위터가 쏟아져 나왔다는데, 군 사이버사령부 요원들이 정치 댓글을 올렸다는데 청와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어제 국무회의에서 관련 현안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군 통수권자로서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 비서진은 대체 대통령을 어떻게 보좌하고 있는 것인가.

 이명박정부로부터 도움 받은 것도 없는데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이 불거지는 상황 자체가 싫을 수도 있다. 그렇게 신세 진 게 없다면 더더욱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면 대통령 위상이 높아지는 것 아닐까. 박 대통령 지시로 국정원이 자체 개혁안을 마련했다고 하지만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는 작업 없이 개혁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어쩌면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검찰 내분도 폭탄이 굴러다니다 하수종말처리장에서 터진 것인지 모른다. 한 검사는 “청와대에서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하라’고 한마디만 해줬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선거는 국민이 대통령을 임명하는 인사(人事) 절차다. 그 중요한 절차가 다시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다른 절차들도 지켜질 수 있다. 크든 작든 절차가 지켜지지 않는 나라에 사는 건 위험하고 슬픈 일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난 10개월 “이 모든 것이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는 안톤 슈낙의 마지막 문장에 갇혀 있는 이유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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