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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각영·박찬종의 증언 유병언 세모그룹 전 회장재기의 비밀
오대양’도 그의 ‘지갑’이었다
 
일요신문 기사입력 :  2014/04/3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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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6호] 2014년04월28일 11시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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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신문]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의 실제 오너로 알려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둘러싼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검찰은 세월호 침몰 사건과는 별개로 유병언 전 회장의 횡령·배임·탈세 혐의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전방위적으로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1997년 8월 한강유람선 사업 실패로 2000억 원대의 빚을 지고 부도를 냈는데도 빼돌린 돈으로 불과 1년 6개월 만에 청해진해운으로 재기에 성공한 유병언 전 회장. 통상적으로 기업이 부도가 나면 채무변제를 위해 오너 일가 재산까지 동원되면서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게 되는데, 유 전 회장은 예상을 뛰어 넘는 속도로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하고 수십 개에 달하는 계열사를 보유한 수천억 원대 자산가로 성장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배경에는 전두환 정권의 5공화국과 이어진 6공화국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정치권과 깊숙한 유착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되지 않을 정도의 미스터리가 유 전 회장 주변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 전 회장이 이처럼 화려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신비에 가까운 비밀은 뭘까.


유병언 전 회장. JTBC 방송화면 캡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지난 194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와 자신의 부모 고향인 대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다. 대구 성광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미국인 독립선교사 딕 욕(Dick York)의 영향으로 “복음을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이때가 1962년이다. 대구의 한 가정집 구석방에 예배방을 차리고 자신의 장인이 되는 권신찬 목사와 함께 선교 활동을 시작한다. 기독교복음침례회 소위 ‘구원파’의 시작이다. 

종교방송인 극동방송에 부국장으로 취임했으나 정통 기독교 교단으로부터 사이비 이단이라는 항의를 받다가 쫓겨  나기도 하는 유 전 회장은, 이후 “교제의 구심점이 필요하다”며 신도들 12명을 모아 당시 부도 위기의 ‘삼우상사’를 인수해 삼우트레이딩을 설립한 뒤 사장의 자리에 올라 사업을 본격화한다. 그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돈이나 귀중품은 하나님의 것이다”, “돈을 차용해서라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등의 말로 신도들의 돈을 끌어 모았다고 전해진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서울 염곡동 소재 자택. 일본의 언론사에서도 취재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후 1980년대에는 ‘세모’라는 이름으로 스쿠알렌(상어에서 추출한 불포화 지방산으로 만든 건강식품), 한강 유람선 등의 사업을 펼치며 세를 급격히 불려 나갔다. 특히 태권도 공인 7단으로 알려진 유 전 회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와 대구에서 무술을 통해 맺은 친분을 바탕으로 전두환 정권의 비호 속에 승승장구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83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에는 경호 인력을 지원해 줄 정도로 전 전 대통령과 가까워져 핫라인까지 생겼던 것으로 전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유 전 회장은 이른바 ‘오대양 사건’으로 한 차례 큰 풍파를 만나게 된다. 오대양 사건이란 지난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오대양’의 공예품 공장 식당 천장에서 이 회사 대표 박 아무개 씨와 그녀의 두 아들, 종업원 등 신도 32명이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긴 채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박 대표가 사채 170억 원을 갚지 못해 집단 자살했다는 것이 당시 수사당국의 공식 발표였다.

당시 유 전 회장은 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며 두 차례에 걸쳐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다만 유 전 회장은 구원파 신도들로부터 거액을 빌린 뒤 갚지 않아 상습사기 혐의로 1992년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5선 국회의원을 지낸 박찬종 변호사가 일정 부분 역할을 하게 된다. 


1990년대 초반 유병언 전 회장이 오대양의 배후라고 폭로한 박찬종 변호사(왼쪽)와 당시 유 전 회장의 상습 사기사건 수사를 맡은 김각영 전 검찰총장.
박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 사건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게 밝혔다. 그는 “오대양 사장 박 씨는 유병언 씨의 ‘바지사장’이고 핵심 여자 신도였다. 유 씨가 ‘투자하면 구원 받는다’며 (박 씨 등을 통해) 사채를 끌어들이게 되는데 (채무 압박으로 코너에) 몰리게 되니까 32명이 집단 자살(부검의는 집단자살이라고 주장)한 사건이 오대양 사건이다. 피해자가 수백 명으로 여기저기 고소·고발도 하고 그랬는데, 제대로 수사도 안 되고 해서 1990년 5공 청문회 특위의 한 의제로까지 올라왔다. 아무 결론도 없이 끝나니까 피해자들이 들고 일어나서 시위를 벌였고 1991년, 오대양 사건 배후에 대해서 (수사 당국이) 재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그때 피해자들이 날 찾아와서 이 사건의 청원을 수리해 달라고 해서 내 지역구도 아닌데 국회 청문회 자료 전부 끄집어내 먼지 털고 증언을 조합했다. 박 씨가 모은 돈이 최소 200억 원에서 600억~700억 원까지 되는데 그 중에서 상당 부분이 세모 유병언 회장에게 흘러갔다는 정황과 증거를 바탕으로 검찰에 수사 의뢰를 했다. 그래서 유 씨가 사기죄로 구속됐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유 전 회장과 전두환 정권의 유착설에 대해서도 “전두환 정권과 상당한 유착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거로 확실하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오대양 사건 배후를 조사해 놓고 무마한 흔적들도 있고, 전 대통령이 유 씨의 조그만 중소기업 공장도 일부러 방문한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 정황상 그렇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87년 경기도 용인에 있는 오대양의 공예품 공장 식당 천장에서 집단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오대양 사건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고 지휘했던 대검 중수부장 출신의 심재륜 변호사도 지난 2012년 초 한 월간지 인터뷰를 통한 회고담에서 오대양 사건의 사망자들이 조달한 사채가 구원파를 거쳐 세모 측으로 유입됐음을 나타내는 수표 기록이 발견됐다며 오대양과 구원파, 세모의 관련성을 언급했다. 

이 인터뷰 때문에 심 변호사는 유 전 회장으로부터 소송을 당했지만 서울남부지법은 심 변호사의 회고담을 허위 사실이라고 단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오대양 사장 박 씨가 1983~1984년 구원파인 송 아무개 씨에게 4억 6300만 여 원 상당의 수표를 송금한 사실, 송 씨의 계좌에서 인출된 수표 1억 7500만 원이 세모 측에 전달된 사실, 오대양 직원들이 사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 사실 등을 모두 인정했다.
 
 
또 이와 관련해 지난 1989년 당시 광주지검 형사1부장으로서 유 전 회장의 상습사기 사건 수사를 맡았던 검찰총장 출신 김각영 변호사도 유 전 회장에 대해 흥미로운 발언을 내 놓는다. 김 전 총장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오랜 시간이 지나 간헐적인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고 전제한 뒤 “유 전 회장은 당시 사기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난 상태였는데 송 아무개 씨에 대한 수사를 하다 유 전 회장이 공범으로 밝혀지면서 기소중지가 돼 형을 살게 됐다. 송 씨의 집이 전남 완도라서 광주지검에서 수사를 하게 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총장은 유 전 회장에 대해서는 “당시 유 전 회장도 한 차례 수사를 했다. 기독교 교리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돈 끌어들이는 데는 확실히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묘한 뭔가가 있었다. 장인인 권신찬이 오히려 유병언을 떠받들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송 씨는 권신찬의 며느리였는데, 유 전 회장에게 가서 몇 년 시중을 들었다. 송 씨가 돈을 끌어서 연구소에 갖다 놓으면 유 전 회장이 그것을 쓰는 식이었다”고 회고했다. 

수많은 의문만 남긴 채 덮어져 버린 오대양 사건과 함께 미스터리의 중심인 유 전 회장도 사업의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1997년 부도를 맞게 된다. 하지만 그는 금세 다시 신도들을 규합해 청해진해운을 설립하고 그동안 쌓은 정관계의 끈끈한 커넥션을 활용해 화려한 부활을 하게 된다. 정관계 커넥션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미 한 번 크게 망한 회사의 대표를 위해 추종자들이 돈을 들고 다시 뭉친다는 게 언뜻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과거 구원파로 활동하며 8년간 유 전 회장의 통역을 맡았던 정동섭 전 한동대 외래교수는 이에 대해 “유병언 씨는 일단 달변이고 설득력이 있다. 그의 ‘구원파’라는 것은 한마디로 ‘구원지상주의’다. 구원이 궁극적인 가치고 유 전 회장은 신도들에게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어 준다. 그 다음 부터는 모든 신도가 형제·자매가 된다. 신도들과 신도들이 돈을 내 만든 회사들은 모두 유병언 개인을 위해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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