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군관들, 뇌물주고 軍 탈출…“병사들은 전쟁 원한다” 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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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주성하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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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기사입력 : |
2015/03/12 [23: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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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군관들, 뇌물주고 軍 탈출…“병사들은 전쟁 원한다” 왜?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뇌물 주고 군대 탈출하는 북한 군관들주성하 기자 입력 2015-03-12 03:00:00 수정 2015-03-12 10:47:47
주성하 기자
북한군이 스스로 와해되고 있다.
이를 증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 군관들의 ‘탈군(脫軍) 바람’이다. 먹고살기 힘든 데다 김정은 시대 들어 군 생활은 더욱 고달파지니 사회에 빨리 나가 돈 버는 것이 최선이라 인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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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장쯤 되면 나이가 있기 때문에 정년까지 버티려고 애를 쓰지만 대대장급 이하 군관들은 생각이 다르다. 군관 출신은 노동당이나 보안부 등 권력 기관에 배치되는 데 유리하다. 군에서 힘들게 살기보다는 뇌물 받을 수 있는 직업을 하루라도 빨리 얻는 것이 더 실속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당연히 군 당국은 제대를 강력히 막는다. 그래서 제대를 위한 뇌물이 공공연하게 오고간다. 40대를 넘으면 200달러 정도면 가능하지만 30대 군관은 500달러까지 주어야 한다. 군에서 매관매직이 아니라 ‘탈관탈직’이 트렌드가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북한에서 500달러는 일반 4인 가정이 1년은 잘 먹고 살 수 있는 돈이다. 달러를 구경하기 어려운 초급 군관에겐 평생 만지기 어려운 거액이다.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달러가 모아지는 것도 아니고, 대출 받을 곳도 없다.
군의소에 뇌물을 주고 ‘감정제대(의가사제대)’되는 ‘우회로’도 물론 있다. 하지만 뇌물이 적게 드는 대신 사회에 나가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단점도 있다.
“北 여군 생존위해 性상납…탈북해도 中서 인신매매”
요즘은 군관에게 시집오겠다는 여성도 없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전엔 군관이 처녀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배급과 월급이 꼬박꼬박 잘 나오고 궂은일은 병사들이 다 해주기 때문에 거의 ‘사모님’처럼 살 수 있어서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엔 병사들을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게 하라고 군관들을 다그치니 군관 아내가 되면 돼지 기르기나 콩 농사 따위로 세월 다 보내야 한다. 요즘 북한에서 군관에게 시집가겠다는 처녀 대다수는 산골 농민이다. 자식에겐 농민 신분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다. 간혹 좋은 집안에 장가가는 군관도 있지만, 이는 사위를 일찍 제대시켜 간부로 밀어주겠다는 처갓집의 속셈 때문이다. 군관 가치가 땅에 떨어지니 군관학교에 자원자도 없다. 그러니 요즘은 쭉정이가 군관이 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다. 군관부터 군에서 제대하지 못해 안달이 났으니 군 기강도 말이 아니다. 북한 병사들의 목표는 오래전부터 “도둑질해먹고, 강도질해먹어도 10년 동안 영양실조만 걸리지 말자”이다. 부모들부터 그렇게 요구한다.
“개똥 뒤져 옥수수알 찾아 먹고…” 탈북女 인권 실태 증언
영양실조를 피하기 위해선 훔치는 기술보다 어떤 부대에 배치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최근에 탈북한 북한 군인 대다수가 전투부대는 편제의 70%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단 편제가 1만 명이라면 실제 병력은 7000명도 채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영양실조로 집에 치료하러 간 병사, 돈 벌어오라고 집에 보낸 병사까지 빼면 가용 병력은 더 줄어든다. 한국 국방백서엔 북한군 병력이 120만 명이라고 언급돼 있지만 탈북 병사들의 말을 들으면 전쟁 나면 60만 명은 동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와중에도 편제의 110%가 넘는 부대도 있다. 해안경비대가 대표적이다. 해안경비대는 어부 단속 권한이 있다. 어선에서 생산물의 20% 정도 뜯어내고, 안 주면 출항시키지 않는다. 그러니 해안경비대에 가면 최소한 영양실조에 걸릴 가능성은 낮다. 부모는 자식을 이런 부대에 보내기 위해 온갖 연줄을 다 동원한다. 그런데 편제 정원이 넘친다는 것은 언제든 전투부대로 쫓겨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좋은 부대에서 쫓겨나면 ‘데꼬당했다’고 한다. 좋은 부대 가려고 뇌물을 쓰고, ‘데꼬’ 당하지 않으려 뇌물 쓰다 보니 병사들부터 돈에 환장해 있다.
지난해 탈북한 한 군관은 이렇게 말했다.
“대다수 북한 병사들이 전쟁을 원합니다. 죽든지 살든지 이 힘든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거죠. 하지만 충성심이나 애국심 따위는 머릿속에서 날아간 지 오랩니다. 부하들에게 전쟁이 벌어지면 뭘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남쪽에 가서 은행을 털겠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은행은 국가가 해먹을 거니 나는 집집을 돌며 냉장고를 훔쳐 땅에 묻었다가 전쟁이 끝나면 집에 가져가겠다는 병사도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군인과 마적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물론 남북의 압도적 전력차를 감안하면 냉장고를 훔친다는 북한 병사의 ‘소박한’ 욕심은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런 와중에 김정은은 최근 군에 “10월까지 미국과 전쟁할 준비를 마치라”는 지시를 하달한 뒤 부대를 돌며 “미제와 추종세력들을 걸레짝처럼 만들겠다”고 기세등등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서울 사는 나도 아는 북한군의 속살을 김정은은 알고나 있을까.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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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 뒤져 옥수수알 찾아 먹고…” 탈북女 인권 실태 증언이샘물 기자 입력 2015-03-03 16:06:00 수정 2015-03-03 16:08:41 “북한에 살 때 배급이 안 나와서 굶어보신 분 손들어보세요.”
“부모, 형제, 친척이 굶어서 죽어가는 모습 목격하신 분 손들어보겠습니다.”
3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 이소연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가 청중석을 보며 이같이 묻자 앉아있던 탈북여성 50여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이 대표는 말했다.
“북한여성들이 왜 부모·자식과 생이별하면서 탈북을 선택하는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꽃제비가 되고, 탈북이라는 길을 선택하고, 인신매매라는 치욕을 감당하고, 평생을 원망하며 살아야 합니까?”
탈북여성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뉴코리아여성연합은 이날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북한여성들의 인권 실상을 알리고 인권개선 및 그 가해자 처벌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탈북여성 송경옥 씨(28), 김은미 씨(33), 안혜경 씨(39)가 나와 본인이 직접 경험한 인권침해 사례를 생생히 증언했다. 이 단체에서 탈북여성의 사례를 모아 실태를 알린 적은 있지만, 당사자들이 기자회견에 직접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송 씨는 어릴 때부터 꽃제비 생활을 했다. 부모가 아이들이 배를 곯지 않게 해달라고 밤마다 기도를 했는데, 북한당국이 이를 이유로 정치범으로 몰아 잡아갔기 때문이었다.
졸지에 송 씨는 부모를 잃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생활을 시작했다. 먹을 게 없어서 개똥이나 거름을 뒤져 그 속에 든 옥수수 알을 씻어 먹기도 했다. 독이 든 풀을 먹고 온 몸이 붓고 앓아누운 적도 있다. 송 씨는 ‘죽을 때 죽더라도 먹고 싶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2004년 탈북했고, 건강이 쇠약해진 상태로 2008년 한국에 왔다.
김 씨는 2006년 탈북해 브로커를 통해 수차례 인신매매를 당했다. 그는 “중국에 가면 돈을 벌고 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얘기에 목숨을 걸고 탈북했다. 저도 여러분처럼 눈코입 다 있는 사람인데 물건취급을 받으면서 인신매매를 당해 팔려다녔다”며 울먹였다.
브로커들은 김 씨를 중국 산둥(山東) 성과 랴오닝(遼寧) 성 등에 사는 나이 많은 중국 남성 등에게 수차례 팔아넘겼다. 밤에 줄행랑을 친 적도 있지만 붙잡혔고, 남자 셋이 빗자루와 장작개비 등을 들고 김 씨를 때렸다. 아파서 소리를 지르자 그들은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남성들은 김 씨가 죽은 줄 알고 헌 이불로 둘둘 감아놓은 상태였다. 온 몸엔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무의식중에 오줌을 지렸는지 바지가 젖어있었다.
그는 어렵사리 탈출해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무보수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걸핏하면 “너네같은 거지들이 무슨 할 말이 있느냐. 전화 한통이면 북송시켜버릴 수 있다”는 협박을 당해야 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일념으로 우여곡절 끝에 2010년 한국에 왔다. 안 씨는 북한 제567군부대 간호중대 사관장 출신으로, 2006년 탈북해 2010년 한국에 왔다. 그는 북한에서 군복무를 하며 목격한 여군 인권유린 실태를 털어놓았다. 북한 여군들은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기 위해 상관에게 성상납을 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상관들이 ‘몸을 안 주면 입당 안 시켜준다’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성 노예’가 되는 경우가 빈번했지만, 근무환경이 열악해 생리주기가 일정치 않고 성교육도 제대로 돼있지 않아 배가 부른 뒤에야 임신사실을 아는 경우가 많았다.
안 씨의 친구도 이렇게 성상납을 하다가 임신을 하게 됐다. 군은 강제로 낙태를 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안 씨를 불러 군인들 앞에서 “친구 얼굴에 침을 뱉으라”고 시켰다. 안 씨가 머뭇거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를 채근하는 듯이 머리채를 잡았다. 친구는 아무 말 없이 ‘그냥 빨리 시키는 대로 하고 나를 보내달라’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안 씨는 결국 침을 뱉고야 말았다. 그는 “친구를 지켜주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 대표는 “이달 중으로 북한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각국 주한대사관에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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