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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 뒤지는 배고픈 시민들… 복지 포퓰리즘 부메랑
“한국, 그리스처럼 될 수도…복지 포퓰리즘의 덫 옥죄어 올 것”
 
동아일보 기사입력 :  2015/04/1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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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 뒤지는 배고픈 시민들… 복지 포퓰리즘 부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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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특파원
 
 
입력 2015-04-15 03:00:00 수정 2015-04-15 09:08:30
[‘경제위기 8년’ 그리스를 가다]
[‘피폐해진 삶’ 현지 르포]<상>무너진 사회 안전망


 

 
 

무료 급식 긴 줄 동방정교회 부활절인 12일 그리스 아테네 외곽의 한 군부대 막사 앞에서 주민들이 공짜로 나눠 주는 음식을 받아 가고 있다(위쪽 사진). 굶주린 아테네 시민 일부는 쓰레기통을 뒤질 정도(가운데 사진)로 생활고가 심각하다. 건강보험 혜택에서 배제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생겨난 무료 진료소(아래쪽 사진)에서 병을 치료하고 있다. 아테네=AP 뉴시스·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2010년 그리스 재정위기가 시작된 지 5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부터 따지면 8년간 경제위기를 겪고 있지만 그리스 경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2008년에 비해 국민총생산(GDP)이 25%가 줄었고 노동력 인구의 26%(약 150만 명)가 실직 상태다. 청년 실업률은 60%가 넘는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무장관 협의체 유로그룹의 회의가 열리는 24일은 그리스에 매우 중요한 날이다. 그리스가 제출한 개혁안을 검토해 구제금융 분할금 72억 유로(약 8조4000억 원)를 지급할지 말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현금이 바닥난 그리스로선 한 푼이 아쉽지만 채권국들이 요구하는 추가 긴축 조치는 불가하다며 버티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긴급 구제 자금을 지원받지 못한다면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13일 파이낸셜타임스)이다. 그리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위해 아테네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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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안전망 붕괴… 시민들 사회연대로 버틴다

“아내가 5일 전에 아기를 낳았습니다. 아기를 먹일 분유가 없나요?”

아테네 시청 인근 재래시장 뒷골목의 한 건물 3층. ‘자선을 위한 무료진료소(KIFA)’에 그리스인 부부가 다급하게 찾아왔다. 부인은 아직 아랫배가 약간 불러 있을 정도로 산후 회복이 덜 돼 보였다. 진료소에 있던 자원봉사자는 “이곳에는 분유가 없다. 다른 곳에 알아볼 테니 내일 다시 오라”며 돌려보냈다.

 
2010년 그리스 재정위기가 시작된 지 5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부터 따지면 8년간 경제위기를 겪고 있지만 그리스 경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2008년에 비해 국민총생산(GDP)이 25%가 줄었고 노동력 인구의 26%(약 150만 명)가 실직 상태다. 청년 실업률은 60%가 넘는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무장관 협의체 유로그룹의 회의가 열리는 24일은 그리스에 매우 중요한 날이다. 그리스가 제출한 개혁안을 검토해 구제금융 분할금 72억 유로(약 8조4000억 원)를 지급할지 말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현금이 바닥난 그리스로선 한 푼이 아쉽지만 채권국들이 요구하는 추가 긴축 조치는 불가하다며 버티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긴급 구제 자금을 지원받지 못한다면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13일 파이낸셜타임스)이다. 그리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위해 아테네를 찾았다.


○ 사회 안전망 붕괴… 시민들 사회연대로 버틴다

“아내가 5일 전에 아기를 낳았습니다. 아기를 먹일 분유가 없나요?”

아테네 시청 인근 재래시장 뒷골목의 한 건물 3층. ‘자선을 위한 무료진료소(KIFA)’에 그리스인 부부가 다급하게 찾아왔다. 부인은 아직 아랫배가 약간 불러 있을 정도로 산후 회복이 덜 돼 보였다. 진료소에 있던 자원봉사자는 “이곳에는 분유가 없다. 다른 곳에 알아볼 테니 내일 다시 오라”며 돌려보냈다.

경제위기가 장기화되면서 그리스에서는 인구 1100만 명의 3분의 1인 약 310만 명이 건강보험을 잃었다. 실직 뒤 3∼6개월이 지나면 건강보험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병원을 가지 못하는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무료 진료소를 열었다.

이곳의 무료 진료소도 사람들이 집에 있던 약들을 기부하면서 2013년에 문을 열었다. 실제로 진료소 약국에 들어가 보니 상자에 손때가 묻은 약들이 가득했다. 병상과 의자도 은퇴한 의사의 병원에서 통째로 얻어 온 것들이다. 현재 그리스 전국에 있는 70여 곳의 무료진료소에서는 약 750명의 약사와 의사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무료 진료소를 찾는 사람들은 대체로 평범한 시민이었다. 오토바이 헬멧을 들고 있던 요로구스 아구메노스 씨(37)는 “3년 동안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계속 집에만 있었더니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며 “7개월 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이곳에서 상담을 받고 매주 약을 받아 가고 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 치과의사인 콘스탄티노 바나키오토플로 씨(28)는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것을 꿈꿔 왔는데, 아테네 시내 한복판에서 하게 되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천혜의 기후와 낙천적인 국민성으로 그리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자살률을 기록해 온 나라다. 그런데 2010년 재정위기 이후 1만2000명 정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자살률이 45%나 급증했다.

사회 안전망에 구멍이 뚫린 것은 병원만이 아니었다. 특히 배고픈 시민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며 음식물을 찾는 장면은 그리스인들에게 충격을 던져 주었다. 기자도 아테네 주택가 재래시장에서 한 모녀가 비닐봉지를 가져와 시장바닥에 떨어진 채소 부스러기를 주워 담는 모습을 목격했다. 생선가게 주인은 “생선을 팔고 남은 머리나 꼬리 같은 찌꺼기 부위, 심지어 알이라도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실직과 월급·연금 삭감에 직격탄을 맞은 시민들의 생존 노하우는 ‘물물교환’이었다. 지난해 경영난 끝에 레스토랑 문을 닫은 에반젤리아 트리포나 씨(59)는 요즘도 매일 빵을 굽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 있는 음식을 가져와 빵과 바꿔 가기 때문이다. 그는 “과일이나 냄비에 담긴 달걀수프, 가끔 생선도 가져온다”며 “그 덕분에 배고프지 않고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이달 초 아테네 시내의 한 광장에 ‘모두를 위한 음식(Food for All)’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1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가스 불을 켜고 수프를 끓이고 마카로니 스파게티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부받은 음식을 조리해서 실업자나 노숙인들과 함께 나눠 먹기 위해서다. 시민단체 ‘소셜 키친’의 콘스탄티노스 폴리크로노풀로스 대표(50)는 “가끔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는다며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정작 사람들이 쓰레기통에서 음식을 뒤지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전직 기자인 크리스토스 알레판티스 씨는 ‘서스펜디드 커피’라는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노란색 ‘서스펜디드 커피’라는 로고가 보이는 커피숍에 들어갈 경우 내가 마실 커피 외에 남을 위한 한 잔의 값을 더 계산해 주는 운동이다. 점원은 바 뒤의 칠판에 분필로 기부받은 커피를 표시해 두기 때문에 돈이 없는 사람도 당당히 커피를 주문할 수 있다.

알레판티스 씨는 “실업자들이 수년 동안 아파트 안에만 머물며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며 “그들이 커피숍에서 친구와 이웃을 만나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도록 이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스펜디드 커피’에 참가하고 있는 카페 여주인 엘레니 야노풀로 씨(43)는 “불쌍한 사람을 돕는 자선이 아니라 ‘신뢰의 위기’에 빠진 그리스에서 함께 고통과 소외를 극복하고자 하는 연대(Solidarity)”라고 말했다.


○ 가난한 서민을 구제 못하는 ‘보편적 복지’

아테네 인근 피레우스 항구 주변의 산기슭 빈민촌에서 스피로스 씨(52)를 만났다. 그의 가족 6명은 한 달에 400유로(약 48만3500원)가량 되는 할머니의 연금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전기요금을 체납해 1년 반 동안이나 전기가 끊긴 채 살아야 했다. 그는 “아이들이 촛불을 켜고 공부하고 한겨울에도 난방 없이 지냈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리스 시민들 중에는 전기가 끊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30만 가구가 넘는다. 보통 6개월∼1년 전기료(약 500∼1500유로)를 내지 않으면 전기가 끊긴다. 지난해 크레타 섬에서는 전기가 끊긴 집에서 중풍 환자가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어 여론이 들썩이기도 했다. 요즘 그리스에서는 국민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세금 납부를 거부하는 불복종 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그리스는 1980년대부터 초중고교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유럽 수준의 복지정책을 펼쳐 왔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유럽연합(EU) 회원국 어느 국가보다 더 많은 교육비를 지출한다. 무료인 공공교육의 질이 낮다 보니 사교육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무상의료도 마찬가지다. 더 나은 진료를 받으려면 의사나 간호사에게 별도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스의 ‘보편적’ 복지 혜택은 빈곤층보다는 부유층이 더 큰 혜택을 보게 됨으로써 빈곤 완화를 위한 효율성 측면에서는 유럽 최하위 수준이다. 아리스티데스 하지스 아테네대 교수는 “그리스에서는 최상위 10% 계층이 최하위 10% 계층보다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그리스의 ‘보편적 복지’는 정치권력과 공공노조, 부유층 같은 힘센 사람들의 전리품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복지가 정작 서민들을 보호하지 못해 아프리카 국가도 아닌데 그리스에서 시민들이 굶주리고, 전기가 끊기는 ‘인도주의적 위기’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아테네=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기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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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8년’ 그리스를 가다]<하>두 석학의 진단과 해법


전승훈특파원

입력 2015-04-17 03:00:00 수정 2015-04-17 14:14:47
하치스 아테네 국립대 교수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이 그리스 망쳤다”
“재정위기 탈출 유일한 길은 구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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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시위대에 점거당한 아테네 법대. 동아일보DB


 “정치의 실패가 그리스를 망쳤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만난 지식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지금 그리스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 시리자당조차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 사분오열된 양상이다. 일부 정치 세력은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과 협상하겠다는 치프라스 총리의 결정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으며 점거 농성까지 벌이고 있다. 그리스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나라에서 대표적인 석학으로 꼽히는 두 사람을 인터뷰해 해법을 들어 봤다. 》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테네 국립대 캠퍼스는 무척 낡아 보였다. 건물 곳곳이 낙서로 가득했고 청소도 제대로 되지 않아 지저분했다. 기자가 “학교가 너무 지저분하다”고 했더니 하치스 아테네 국립대 교수(법경제학·48·사진)는 “재정이 부족해서 청소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며 “교수는 그나마 공무원 신분이라 민간 부문처럼 구조조정당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자조 섞인 농담을 던졌다.

그는 그리스 문제를 보는 객관적 시선을 담은 칼럼을 써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의 단골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하치스 교수는 “그리스 정부가 유로존에 진 빚을 갚고, 국민에게 다시 연금을 제대로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구조 개혁을 계속하는 것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치프라스 총리는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이 외국계 은행만을 구제했지 그리스 국민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며 채무 탕감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는 사실이다. 2010년 그리스에 대한 첫 구제금융은 결과적으로 프랑스와 독일 은행을 구제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리스 은행도 구제됐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만일 그때 구제금융이 없었더라면 그리스의 모든 금융과 기업 활동은 붕괴됐을 것이다. 그리스가 앞으로 개혁을 지속한다면 채무 지불 만기 유예, 이자율 인하와 같은 채무 구조조정은 가능하다고 본다.”

 

―모든 부분을 쥐어짜는 긴축정책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긴축정책으로 위기가 증폭됐다. 가장 큰 문제는 형평성이다. 부유층이나 공공부문은 놔두고 더 짜낼 것이 없는 중하층 국민만 극단으로까지 몰아붙였다. 여기서 나온 결과가 극단주의 정치 세력의 출현이다. 어떻든 정권을 잡은 급진 좌파 성향의 시리자당마저 실패할 경우 그리스인들이 다음엔 신(新)나치주의 극우 정당인 ‘황금새벽당’을 집권당으로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그리스가 경제 위기로 민주주의를 위협받고 있다.”

―그리스가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뭔가.

“한마디로 정치권이 만들어 낸 복지 포퓰리즘 때문이다. 1981년만 해도 나랏빚은 국내총생산(GDP)의 28%에 불과했다. 그때는 재정적자도, 실업자도 없었다. 이후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으로 세금을 제대로 걷지 못했다. 또 유로존 가입 이후 이자가 낮아지자 외국에서 돈을 마구 빌려 흥청망청 썼다. 재정위기란 것은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온다. 한국의 재정은 튼튼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긴장을 푸는 순간 언제든지 위기가 닥칠 수 있다.”


▼ 비트로스 아테네 경제대 명예교수 “개혁 가로막는 공공부문 비효율이 문제” ▼


비트로스 아테네 경제대 명예교수(75·사진)는 “그리스인들이 너무 일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워 문제가 발생한 거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펄쩍 뛰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건 오해다. 그리스의 민간부문 생산성은 독일에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2011년 민간부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만7000유로로, 독일의 7만2000유로와 비슷했다. 연평균 노동시간도 2037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짧지 않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라고 다시 묻자 그는 “비대한 공공부문의 ‘비효율’”이라고 답했다.

“그리스 공무원은 현재 67만 명가량인데 전체 노동 가능 인구의 16%를 차지한다. 이는 독일의 11% 수준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2010년 경제위기 초기에 독일 수준으로 공무원을 약 20만∼30만 명만 감축했으면 위기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정치권에서 개혁을 미룰수록 사회적 비용은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1950년부터 1974년까지 현재의 중국처럼 7%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1974년부터 2010년까지 그리스의 성장률은 0∼1%대로 뚝 떨어졌다. 이에 대해 비트로스 교수는 “1974년부터 중도 우파 신민당(NP)과 중도 좌파 사회당(PASOK)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서로 누가 국민에게 더 잘 보일까 하는 ‘포퓰리즘 경쟁’을 했다”며 “정치의 실패가 경제를 망쳤다”고 말했다.

비트로스 교수는 그리스 공공부문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경기장을 꼽았다. 그는 “올림픽 경기장이 10년간 방치돼 마치 고대 그리스 유적처럼 풀이 무성한 폐허로 변한 것은 공공부문의 주먹구구식 운영의 상징”이라며 “그리스의 모든 항구와 공공부문을 민영화하고 외국의 투자를 받아들여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테네=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기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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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리스처럼 될 수도…복지 포퓰리즘의 덫 옥죄어 올 것”


아테네=전승훈특파원
입력 2015-04-16 15:48:00 수정 2015-04-16 18:33:04
시위대에 점거당한 아테네 법대

 
《“정치의 실패가 그리스를 망쳤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만난 지식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지금 그리스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 시리자당조차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 사분오열된 양상이다. 일부 정치세력들은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과 협상하겠다는 치프라스 총리의 결정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으며 점거 농성까지 벌이고 있다.

그리스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나라에서 대표적인 석학으로 꼽히는 두 사람을 인터뷰해 해법을 들어봤다.》

○ 하치스 아테네 국립대 교수

아리스티데스 하치스 교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테네 국립대 캠퍼스는 무척 낡아 보였다. 건물 곳곳에 낙서로 가득했고 청소도 제대로 되지 않아 지저분했다. 기자가 “학교가 너무 지저분하다”고 했더니 하치스 아테네 국립대 교수(법경제학)는 “재정이 부족해서 청소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며 “교수는 그나마 공무원 신분이라 민간 부문처럼 구조조정당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자조 섞인 농담을 던졌다.

그는 그리스 문제를 보는 객관적 시선을 담은 칼럼을 써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파이낸셜타임스(FT)의 단골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하치스 교수는 “그리스 정부가 유로존에 진 빚을 갚고, 국민에게 다시 연금을 제대로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구조 개혁을 계속하는 것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치프라스 총리는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이 외국계 은행만을 구제했지 그리스 국민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며 채무 탕감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는 사실이다. 2010년 그리스에 대한 첫 구제금융은 결과적으로 프랑스와 독일 은행을 구제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리스 은행도 구제됐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만일 그때 구제금융이 없었더라면 그리스의 모든 금융과 기업 활동은 붕괴됐을 것이다. 그리스가 앞으로 개혁을 지속한다면 채무 지불 만기 유예, 이자율 인하와 같은 채무 구조조정은 가능하다고 본다.”

―모든 부분을 쥐어짜는 긴축정책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긴축정책으로 위기가 증폭됐다. 가장 큰 문제는 형평성이다. 부유층이나 공공부문은 놔두고 더 짜낼 것이 없는 중하층 국민만 극단으로까지 몰아붙였다. 여기서 나온 결과가 극단주의 정치 세력의 출현이다. 어떻든 정권을 잡은 급진 좌파 성향의 시리자당마저 실패할 경우 그리스인들이 다음엔 신(新)나치주의 극우 정당인 ‘황금새벽당’을 집권당으로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그리스가 경제 위기로 민주주의를 위협받고 있다.”

―그리스가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뭔가.

“한마디로 정치권이 만들어 낸 복지 포퓰리즘 때문이다. 1981년만 해도 나랏빚은 국내총생산(GDP)의 28%에 불과했다. 그때는 재정적자도, 실업자도 없었다. 이후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으로 세금을 제대로 걷지 못했다. 또 유로존 가입 이후 이자가 낮아지자 외국에서 돈을 마구 빌려 흥청망청 썼다. 재정위기란 것은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온다. 한국의 재정은 튼튼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긴장을 푸는 순간 언제든지 위기가 닥칠 수 있다.”


○ 비트로스 아테네 경제대 명예교수

게오르그 비트로스 교수


비트로스 아테네 경제대 명예교수는 “그리스인들이 너무 일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워 문제가 발생한 거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펄쩍 뛰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건 오해다. 그리스의 민간부문 생산성은 독일에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2011년 민간부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만7000유로로, 독일의 7만2000유로와 비슷했다. 연평균 노동시간도 2037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짧지 않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라고 다시 묻자 그는 “비대한 공공부문의 ‘비효율’”이라고 답했다.

“그리스 공무원은 현재 67만 명가량인데 전체 노동 가능 인구의 16%를 차지한다. 이는 독일의 11% 수준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2010년 경제위기 초기에 독일 수준으로 공무원을 약 20만∼30만 명만 감축했으면 위기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정치권에서 개혁을 미룰수록 사회적 비용은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1950년부터 1974년까지 현재의 중국처럼 7%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1974년부터 2010년까지 그리스의 성장률은 0∼1%대로 뚝 떨어졌다. 이에 대해 비트로스 교수는 “1974년부터 중도 우파 신민당(NP)과 중도 좌파 사회당(PASOK)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서로 누가 국민에게 더 잘 보일까 하는 ‘포퓰리즘 경쟁’을 했다”며 “정치의 실패가 경제를 망쳤다”고 말했다.

방치된 그리스 올림픽 경기장


비트로스 교수는 그리스 공공부문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경기장을 꼽았다. 그는 “올림픽 경기장이 10년간 방치돼 마치 고대 그리스 유적처럼 풀이 무성한 폐허로 변한 것은 공공부문의 주먹구구식 운영의 상징”이라며 “그리스의 모든 항구와 공공부문을 민영화하고 외국의 투자를 받아들여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경우 예측하지 못한 혼돈스러운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는 것은 가장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해법이 될 것이다. 그리스 화폐와 자산 가치가 폭락해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식량, 에너지, 의약품 등 생필품 가격이 폭등하고 사회는 대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또 금리가 크게 올라 부실 기업이 속출하고, 그리스 정부의 부채도 현재의 GDP 대비 175%에서 230%로 치솟을 것이다.”

아테네=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기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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