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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이 쓴 통한의 조선 망국 보고서
“나는 눈물이 눈썹에 넘쳐흐름을 금치 못하겠다. 이제 조선은 끝났다. "
 
한겨레 기사입력 :  2015/12/2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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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이 쓴 통한의 조선 망국 보고서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있는 황태자 영친왕. 이토는 헤이그 밀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을 물러나게 하고 순종을 세운 뒤, 초대 통감 자리를 내놓고 영친왕의 태사가 되어 마치 보모처럼 데리고 다녔다. 글항아리 제공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있는 황태자 영친왕. 이토는 헤이그 밀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을 물러나게 하고 순종을 세운 뒤, 초대 통감 자리를 내놓고 영친왕의 태사가 되어 마치 보모처럼 데리고 다녔다. 글항아리 제공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
최형욱 엮고 옮김
글항아리·1만5000원


“나는 눈물이 눈썹에 넘쳐흐름을 금치 못하겠다. 이제 조선은 끝났다. 지금부터 세상에 조선의 역사가 다시 있을 수 없고 오직 일본 번속 일부분으로서의 역사만 있을 뿐이다.”


눈물의 주인공은 조선 백성이 아니다. 눈물은 청나라 말기 변법유신파의 지도자였던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의 뺨에 흘렀다. 량치차오는 캉유웨이(康有爲)의 제자로서 무술변법운동(1898)을 주도했으며, 신해혁명과 5·4운동 등 중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장면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실천적 지식인이다. 신채호·박은식 등 조선의 애국계몽주의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왜 남의 나라 일에 눈물까지 흘리며 애통해했을까.
1910년 8월29일  일장기가 내걸린 경복궁 근정전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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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눈물은 언뜻 순수한 의미의 동정으로 보이지만, 실은 청나라의 속국이었던 조선을 일본에 빼앗긴 데 대한 상실감이 더 짙게 배어 있다. 량치차오는 톈진조약에 따라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이 아니라고 청나라 스스로 인정한 점을 가장 애통해했다. 또한 조선을 ‘기자의 후손들’이라고 일컬으면서 조선 사람 전체를 싸잡아 매도했다. 남에게 기대기 좋아하는 천성을 갖고 있고, 당장 배부르면 미래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으며, 모욕을 당하면 분노하지만 금방 식어버린다고 조롱했다.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를 읽는 것은 괴롭다. 조선에 대한 청나라 최고 지식인의 삐뚤어진 인식을 대하는 것은 분통스럽고, 일본 제국주의 아가리에 제 발로 걸어들어간 우리 선조들의 어리석은 작태를 되짚는 것은 쓰라리다. 그럼에도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세계 정세와 우리의 대응이 그때와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최형욱 한양대 중문과 교수가 이 책을 편역한 이유도 이것일 터다.


량치차오는 청나라 역시 곧 조선처럼 제국주의의 먹잇감이 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강한 위기감을 갖고 있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자신이 창간한 <신민총보> 등을 통해 잇달아 발표한 이유도 타산지석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인지, 조선의 망국 과정에 대한 그의 취재와 분석 자체는 상당히 정확하다.


량치차오(양계초). 글항아리 제공
량치차오(양계초). 글항아리 제공


한일병합 결정뒤 군신들 대연회
지도층과 양반의 사리사욕 개탄


그는 “조선 멸망의 최대 원인”이 궁정과 양반에 있다고 강조했다.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대규모 토목공사, 명성황후를 비롯한 민씨 일가의 전횡, 일본당과 중국당으로 나뉘어 외국 군대를 불러들여 서로 죽고 죽인 싸움 등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양반에 대한 서술이다. “사실상 조선국 내에서 자유의지를 가진 자, 독립 인격을 가진 자는 오직 양반뿐이다. 저 양반이라는 자들은 모두 높이 받들어지고 넉넉한 곳에 처하며, 교만하고 방탕하여 일하지 않고, 오직 벼슬하는 것을 유일한 직업으로 삼았다. 다른 나라에서 관리를 두는 것은 국사를 다스리기 위함인데, 조선에서 관리를 두는 것은 오직 직업 없는 사람들을 봉양하기 위함이었다.”


량치차오는 이른바 지도층이라는 자들이 사리사욕만을 챙길 뿐 국가에 대한 공적 관념이 희박한 점을 개탄했다. 가장 황당한 일화 중 하나는 일본 정부가 한일병합조약을 공포하기로 이미 결정했는데, 대한제국 정부가 순종 황제 즉위 기념일을 맞아 축하연을 연 뒤 발표하기를 청해 발표를 며칠 미룬 일이다. “이날 대연회에 신하들이 몰려들어 평상시처럼 즐겼으며, 일본 통감 역시 외국 사신의 예에 따라 그 사이에서 축하하고 기뻐했다. 세계 각국의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은 한국 군신들의 달관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보기에 조선은 안으로부터 무너져 내렸다. “조선을 망하게 한 자는 처음에는 중국인이었고, 이어서 러시아인이었으며, 끝은 일본인이었다. 그렇지만 중·러·일인이 조선을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조선이 스스로 망한 것이다.”


량치차오는 송병준이 이끄는 일진회가 한일강제병합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송병준과 이완용이 경쟁적으로 일본에 아부한 점, 일본이 이들 친일파에게 대대손손 유복하게 먹고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준 점 등을 여실히 적었다. 또한 일본이 이토 히로부미라는 영악한 인물을 앞세워 조선 황실과 고위 관리들의 마음을 놓게 한 뒤 조선을 실질적으로 장악해나가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한다.


조선인을 비웃던 량치차오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과, 국치의 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한 충청도 금산군수 홍범식에 앞에서는 옷깃을 여미고 찬양한다. “무릇 조선 사람 1000만명 중에서 안중근 같은 이가 또한 한둘쯤 없지는 않았다. 내가 어찌 일률적으로 멸시하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유의 사람은 본래 1억명 중에서 한둘에 지나지 않으며, 설령 한두 사람이 있더라도 또한 사회에서 중시되지 않는다. (…) 대체로 조선 사회에서는 음험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자가 (…) 번성하는 처지에 놓였고, 정결하고 자애하는 자는 (…) 쇠멸하는 처지에 놓였다.” 자,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다른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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