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김일성 생일 100주년을 맞아 만수대언덕에 김정일 동상(사진 오른쪽)이 세워졌다. 김정일 동상은 2013년 2월 코트 차림에서 점퍼 차림으로 바꿨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은 지난 2월 ‘아버지라 부릅니다’라는 제목의 노래를 발표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를 믿고 따르라는 찬양 일색의 노래다. 김정은 우상화는 이에 앞서 ‘청년대장’ ‘포병술의 대가’ ‘희세의 전략가’ 등으로 이미 시작됐다. 하지만 우상화로 북한을 통치했던 김일성· 김정일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동상을 살아있는 수령으로 간주 김씨 정권 유지 통치수단으로 이용 흡연 등 불미스러운 행동하면 처벌
청소해야 하는 근처 주민은 곤욕 “죽은 김일성이 산 사람 잡아” 불평 동상 기술 수출 유엔 제재로 막혀
김정은은 자신의 우상화와 함께 선대의 우상화 정책을 계승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정은은 2013년 7월 ‘젊은 김일성 동상’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설치했다. 자신의 모습을 빼닮은 젊은 김일성의 모습을 부각해 주민들로부터 충성심을 끌어내려는 시도였다. 그해 11월 ‘워터파크’인 평양시 문수물놀이장에 김정일의 컬러 석고상을 설치했다. 그동안 석고상은 흰색이 전부였다. 젊은 김정은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다. 북한 미술 최고의 집단인 만수대창작사 조각창작단이 동상 제작을 전담했으며 밀랍인형 수준의 채색과 정교함이 두드러졌다. 평양자동화기구공장에서 근무한 탈북민 이정수씨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는 김정은 정권을 정당화시키고 북한 주민 생활을 가장 강력하게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상화의 수단은 사적지·혁명관·초상화·배지 등으로 다양한데 하이라이트는 단연 동상이다. 전국적으로 현재 김일성 동상만 4만여 개가 보급돼 있다. 전신 동상이 약 70여 개 있으며 나머지는 반신 석고상이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북한에서 도시를 계획하거나 어떤 특정 지역에 특별히 시설물을 건축할 때는 건축법상으로 중심부에다가 모든 인민이 바라볼 수 있는 상징물을 세우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생일(4월 15일) 등 주요 명절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김일성 동상에 헌화하는 것이다. 지난달 14일 동해로 발사한 중장거리미사일 ‘화성-12형’ 개발자들도 나흘 뒤 김일성 동상을 찾았다. 평양전동기공장에서 근무한 탈북민 박옥경씨는 “김일성 생전에는 신(神)처럼 생각해 진심으로 헌화했지만 사망 이후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의례적인 행사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시초는 1948년 10월 만경대혁명학원에 세워진 김일성 동상이다. 북한이 47년 10월 평안남도 대동군에 세운 평양 혁명자유가족학원을 현재의 평양시 만경대구역으로 옮기고 만경대혁명학원으로 개명하면서 김일성 동상을 설치했다. 그 이후 60년대 김일성이 자신의 권력 기반을 위협하는 세력을 숙청하고 1인 지배체제를 확립하는 시기에 대량으로 전국에 동상을 세웠다. 동상 건립은 소련과 중국을 따라한 것이다.
중·소는 마오쩌둥·스탈린 사후 우상화 중단
1948년 만경대혁명학원을 건립하면서 최초로 세운 김일성 동상. [사진 화보집 만경대]
과거 소련과 중국도 각각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의 우상화를 펼쳤다. 소련은 1929년 12월 스탈린의 50회 생일에 찬양 보도를 하면서 우상화를 시작했다. 호수·광장 등 주요 시설에 스탈린의 초상화·동상·찬양문구 등을 설치했다. 하지만 스탈린이 53년 사망한 이후 3년 뒤에 열린 제20차 당대회부터 스탈린 비하 운동이 전개되면서 스탈린 우상화는 중지됐다. 중국은 마오쩌둥이 45년 10월 공산당 주석이 된 이후 대중노선을 강조했고 49년 10월 천안문 광장에 초대형 초상화를 설치하면서 우상화가 시작됐다. 중국 돈 위안화 지폐에 마오쩌둥의 초상을 넣거나 광장에 동상을 세웠다. 하지만 76년 그의 사망으로 더 이상 우상화는 진행되지 않았다. 소련·중국이 북한과 다른 점은 최고지도자가 사망한 이후 우상화가 단절됐고 후계자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일성 동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김일성 60회 생일인 72년 4월에 평양 만수대언덕의 조선혁명박물관 앞에 세워진 동상이다. 높이가 23m다. 이 동상은 김일성 생일 등 주요 기념일에 많은 주민들이 헌화하고 참배하도록 관리되고 있다. 평양에 도착한 외국인들이 제일 먼저 가는 곳도 만수대언덕에 있는 김일성 동상이다.
김일성 동상의 높이는 공개하지만 무게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탈북민 박씨는 “동상 안내원에게 무게를 질문했더니 ‘남북한 8000만 명의 몸무게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무게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동상의 성분 분석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귀뜸했다.
북한은 왜 이렇게 동상에 집착할까? 재미 교포 김모씨는 북한 고위층에서 들은 얘기라며 이렇게 전했다. 김씨는 “미국은 성경, 일본은 천황 등 국가마다 정신적 구심점이 있는데 북한은 김일성 동상이 그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김일성 동상은 김일성을 숭배·신격화하기 위해 북한 주민들의 이성과 감성을 자극시켜 정치권력을 유지하는 통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김정일은 “동상을 모시는 사업에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충성심이 반영되게 하고 그들의 충성심을 더욱 높이는 계기로 삼으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이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 만수대언덕에 있는 김일성 동상은 청동으로 만들어졌지만 금불상처럼 금(金)을 입혔다. 사용된 금은 37kg 정도다. 현재 시세로 따지면 16억4000만원에 달한다. 김정일은 당시 “최대의 성의를 다해 웅장하고 정중하게 모셔라”라고 지시했다. 김정은도 김정일이 사망(2011년 12월)한 이후 2012년 4월 김일성 생일 100주년을 맞아 김일성 동상 옆에 비슷한 비용을 들어 김정일 동상을 세웠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제막식에서 “김정은 동지가 만수대창작사와 동상건립 전투장을 여러 차례 찾아 세부적인 형상부터 동상 조명효과에 이르기까지 동상 건립과정을 구체적으로 지도했다”고 밝혔다. 김영남은 이어 “불과 100여 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최상의 수준에서 건립될 수 있었다”고 자랑했다. 김정일 동상은 이에 앞서 두 달 전인 그해 2월 김정일 생일 70주년을 맞아 만수대창작사 내에 김일성과 함께 기마동상으로 세워졌다.
청천강화력발전소에 근무한 탈북민 김영철씨는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사용된 금을 모두 모으면 상상을 초월한 액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씨는 “동상은 살아 있는 수령과 다름없이 간주돼 건립장소까지 운반하는 동안에 국가보위성(국가정보원)·인민보안성(경찰청)에서 나와 차량 및 보행자들을 단속하고 설치하는 동안 보행자는 형상물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상에 사용된 금 모으면 상상 초월 액수”
북한은 2012년 2월 만수대창작사에 말을 탄 김일성과 김정일의 동상을 세웠다. 만수대창작사는 김일성?김정일의 동상을 제작한 곳이다. [사진 화보 조선]
김일성 동상은 세우는 조건이 있다. 김정일은 78년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해 “동상은 혁명업적이 깃들어진 전적지에 세워야 하며 동상 색깔이 어두워서는 안되며 풍치도 좋아서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높일 수 있도록 설치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하지만 김일성·김정일 동상이 북한에서 무엇보다 신성한 존재이지만 동상 근처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평생 괴롭히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매일 당번을 정해 청소를 해야 하며 ‘충성심의 표현’이라며 하루의 시작을 동상 청소부터 해야 한다. 게다가 동상 주변의 보도블록을 방보다 더 깨끗이 물청소를 해야 하며 겨울에는 눈까지 치워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김정숙평양방직공장에 근무한 탈북민 임현숙씨는 “죽은 김일성이 산 사람을 잡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소에 공을 들여야 하며 이를 소홀히 하면 매주 토요일에 있는 생활총화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털어놨다. 임씨는 “가끔 지방에서 온 손님들은 속도 모르고 자기들은 충성을 하고 싶어도 김일성 동상이 가까이 없어 못한다며 우리를 부러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2013년 11월 워터파크인 평양 문수물놀이장에 김정일 컬러 석고상을 설치했다. [사진 화보집 문수물놀이장]
흡연자에게 지나칠 정도로 관대한 북한이지만 동상 근처에서 흡연은 어림도 없다. 아울러 동상 주변에서 불미스러운 행동을 하다가 적발되면 처벌을 받게 된다. 임씨는 “동상 근처에서 싸울 경우 노동단련소에 끌려가 무급 노동을 1주일 정도 한다”며 “동상 근처에는 초소가 있어 관리요원이 24시간 감시한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들 가운데 입은 옷이 허름할 경우 동상을 바로 못 지나가고 멀리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동상 관리는 당 선전선동부 사적과가 당 정무국(과거 비서국)의 동의로 결정된 사항을 하부 당조직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
북한은 정교하게 동상을 만드는 기술을 한동안 해외에 수출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전문가 패널에 제출된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이 적어도 15개 국가에 동상 등을 수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북한이 동상의 수출을 통해 연간 수천만 달러(수백억원)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나미비아의 초대 대통령인 삼 누죠마의 동상과 앙골라의 기념탑, 보츠나와의 ‘3명의 족장상’, 콩고공화국의 로렌트 카빌라 전 대통령 동상 등을 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30일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321호에 따라 동상도 수출 금지 품목에 포함됐다. 따라서 북한은 동상 수출에 따른 쏠쏠한 ‘재미’를 제재가 풀리기 이전까지는 볼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