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뿐인가? 당시 제 입으로 제2의 이완용을 자처하고 독도를 차라리 미군 폭격으로 없애 버리자는 따위의 그야말로 망발을 자행한 매국행위의 수괴급 장본인이면서 결코 난세의 간웅조차 못되는 난신적자 김종필 따위가 아직도 두 눈 시퍼렇게 살아 온갖 권세를 누리고 갖은 술수를 부리며 정치를 농단하고 그것도 부족하여 지금도 거리낌없는 친일 행각을 보란 듯이 하고 있는 것이 이 땅의 현실이다.
- 난신적자(亂臣賊子) 김종필
독도가 결코 근년에 갑자기 불거진 문제가 아니며 이미 35년전에 박정희, 김종필 등의 친일 매국노 일당이 우리의 동쪽 바다를 대폭 축소하여 저들 일본에 갖다 바치면서 그때 이미 전혀 문제될 것 없는 독도가 문제 아닌 문제가 되도록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또 어디 그뿐인가? 알량한 청구권 자금, 경제 협력 자금 유, 무상 합해서 몇 억 불 받은 댓가로 지난 35년 동안 줄잡아 수천 억 달러의 대일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니, 한 마디로 우리 국민 전체가 일본인들의 가마우지 노릇을 하면서 전세계에서 뼈빠지게 피땀흘려 번 돈을 몽땅 일본인들에게 갖다 바쳐 온 것에 다름 아니며, 그러고도 이러한 불균형 상태가 언제 끝날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 문제를 일으킨 자들은 항상 극소수였다.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을 비롯한 상당수의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일본 내에도 양심적인 혹은 양식 있는 사람들이 각계에 상당수 있고 시대가 이미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시대이니 만큼 독도 문제 같은 한·일 문제를 너무 우려하거나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고들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자는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먼 옛날은 그만두고라도 소위 명치(明治) 이래 일본에서 양심적이거나 양식 있는 세력이 집권하거나 일본사회의 주류를 형성한 적이 있는가?
또 혹은 앞으로라도 일본 내의 양심적인 소수 집단이 세력을 형성하여 집권하거나 일본사회의 리더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19세기말 소위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자들이나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일본 전체 국민의 천분(千分)의 일, 만분(萬分)의 일도 채 안 되는 극소수 군벌과 군국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왜 간과하는가?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독일 역시 그러하다. 히틀러가 언제 국민투표를 거쳐서 유럽 각국을 침공한 적이 있는가?
일본이나 독일 뿐 아니라 인류 역사상의 어느 침략전쟁도 국민 전체의 뜻이거나 다수결에 의해서 이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사실을, 특히 일본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비양심적이며 편협한 국가라는 사실을 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가?
- 일본 열도에 에너지가 넘쳐나고 있다.
역사 이래 일본 내부의 혼란이 정리되거나 일본 열도의 에너지가 넘쳐날 때마다 저들은 반드시 대륙 침공을 꾀해 왔고 그때마다 필연적으로 가정 먼저, 가장 크고 직접적인 피해자는 우리 한국민족이었으며, 그것은 앞으로도 지구가 존재하는 한, 결코 변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숙명이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일본 열도의 에너지가 저들 민족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넘쳐나고 있는 시기이며, 따라서 저들은 군사적 침공보다 오히려 무서운 경제적, 문화적, 정치외교적 수단을 총동원한 침략을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했고 우리는 참으로 어리석게도 그렇게도 수없이 당하고 겪고서도 또다시 저들 일본의 침략을 자초하고 있으며, 심지어 방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왜 직시하지 못하는가?
- 우리가 일본에 뒤떨어지는 까닭
우리가 무려 수천년 동안이나 허구헌 날 일본에 당하기만 해온 까닭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근대 이전에는 우리가 늘상 당하면서도 곧죽어도 우리는 군자국(君子國)이요, 저들 일본은 섬나라 오랑캐, 왜구(倭寇)에 불과하지만 수없이 베풀고 용서하면 그래도 은혜를 알겠거니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저들을 과소평가해 온 것이다.
이미 임진왜란 때 그렇게 호되게 당하고서도 우리는 시혜국(施惠國)이며, 일본은 수혜국(受惠國)인 것으로 행세를 해 온 탓에 19세기 말까지도 당연히 그런 것으로 착각한 우리 탓이기도 한 것이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특히 근대 이후 이 날 이 때까지도 우리가 일본에 뒤처지다 못해 또다시 제 밥 그릇조차 못찾아 먹을까 전전긍긍하게 된 가장 중요한 까닭은 결코 일본 민족이 우리 민족보다, 일본 국민이 우리 국민보다 잘나고 우수해서가 아니라, 저들 일본의 지도층이 우리 한국의 지도층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영악하고, 강인하고, 현명하며, 애국적이기 때문인 것이다.
일본뿐인가? 어떤 지도층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시대 민족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동서 고금의 역사가 웅변하고 있지 않는가?
베트남을 보라. 분명히 같은 민족인데도 남쪽은 그렇게도 허약하고 북쪽은 그렇게도 강인했던 것은 남과 북을 리드해 나가는 지도층의 자세가 그만큼 너무도 달랐기 때문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 일본보다 오히려 한국 사회 내부가 더 문제
사리와 사실이 이토록 명명백백한 데도 한일협정은 그대로 둔 채로 우리 사회에서 따지고 보면 그나마 소수에 불과한 애국심 있는 한국인들이 이제 와서 고작 독도 수호를 외쳐 대는 것조차 남의 일 보듯 시큰둥해 하거나 심지어 노골적으로 못마땅해 하는 세력이 적지 않은 세태와 나라 꼴이 한심해도 너무 한심하고 썩어도 너무 썩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필자가 이미 인터넷 상으로 여러 번 주장한 바와 같이, 독도는 결코 한·일 문제의 본질이 아니며 한·일 협정을 전면 개정하지 않고서는 악순환만 끝없이 되풀이될 뿐, 한·일 문제는 결코 청산될 수도 해결될 수도 없다. 한·일간의 진정한 선린우호(善隣友好)를 위해서도 한·일협정은 반드시 전면 개정되어야 한다.
- 일본은 능히 잡을 수 있다.
사실은 남북이 뭉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적어도 친일 군사정권의 맥이 끊기고 종식된 시점인 90년대 초중반 무렵(김영삼 정권)에 이미 한·일협정의 전면 개정을 강력히 요구했어야 하는 것이다.
필자가 북일 수교 문제와 한·일 협정 전면 개정을 하나로 묶어 남북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장차 하나가 되고 말 우리의 반쪽이 북쪽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순리에 합당할 뿐 아니라,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일 뿐이며 한·일 협정의 전면 개정은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관철해야 할 그야말로 원초적 본질적 문제인 것이다.
- 남북이 뭉치면 일본은 반드시 굴복한다.
저 가없이 높고 푸른 하늘(蒼天)에 떠 있어 만물을 비추이는 해와 달(日月) 만큼이나 분명한 사실은 이 나라의 지도층이 이제라도 각성하고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겨레의 만년대계(萬年大計)를 위하여 진실로 투철한 애국심과 단호한 의지를 보인다면 일거에 능히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으며, 총성 한 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일본쯤은 능히 제압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민족이 비록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오그라들고 쪼그라들어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지만, 우리 겨레의 본질과 저력은 일본인들 따위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우리가 일본의 실체와 국력을 무시할 수 없듯이, 일본 역시 우리를 결코 무시할 수 없으며 더욱이 남북 공동의 단호한 요구를 일본은 결코 묵살하지 못한다.
- 남북 공동 특별 기구 설치해야
따라서 이제 우리는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 준 절호의 기회인 북일 수교 문제와 한일 협정 전면 개정 문제를 하나로 묶어 남북이 공동 대응할 것을 세계 만방에 엄숙히 선언해야 하며 「대일(對日) 문제 청산에 관한 남북 공동 특별 기구」를 조속히 구성해야 한다.
- 약소국 근성, 패배주의 떨쳐내야
이제 또 한 번의 통한(痛恨)과 오욕(汚辱)의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우리의 후손에게 두고두고 참으로 어리석고 못난 조상으로 기억되고 말 것인가?
굴욕을 단호히 거부하고 치욕과 통한의 근대사를 일거에 청산하고 온 겨레의 자주와, 나라의 존엄과 긍지를 되찾는 영광의 역사를 창조해 나갈 것인가? 선택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최소한 對日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어떤 열강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으며, 확고한 의지와 자신감을 가져도 좋은 것이다. 역사적 유래와 명분과 사유가 너무도 뚜렷하므로 미국을 비롯한 어떤 강대국도 우리 민족의 역사적 결단과 의지를 감히 훼손하려 들지 못하며, 우리는 능히 그들을 적절히 상호 견제토록 할 수 있는 것이다.
- 백, 천 개의 노벨상보다 가치로운 자주통일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일본에 대한 강력하고도 엄숙한 자주 외교는 단순히 한·일 관계의 재정립에 그치지 않고 백 년 전의 그때보다 오히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과 패권주의 구도 전체를 우리가 능동적으로 요리하고 대응할 수 있는 권능을 우리 스스로 확고히 담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백, 천 개의 노벨상보다 겨레의 자주 통일이야말로 훨씬 소중하고 가치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단기 4333(서기 2000)년 10월 23일
일본을 경계하는 한국인 회의 김 기 백(金 淇 白) 02]447-1986
이어진 기사 : 자주통일(自主統一) 정녕 꿈인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