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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904년 양민학살 자행 외교문서 공개
독일 공사 “농민 3명 철도물자 훔쳤다고 총살” 보고
 
한겨레 기사입력 :  2008/09/0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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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8일(월) 오후 9:31 [한겨레신문]


[한겨레] 독일 공사 “농민 3명 철도물자 훔쳤다고 총살” 보고

“정치적 동기 없는데도 재판 회부 않고 처형” 지적



한일합방 전인 1904년, 일본군들이 철도 물자를 훔쳤다는 이유로 조선인들을 정당한 재판 없이 잔혹하게 총살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과, 일본군의 이런 부당한 처형이 전국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다고 지적한 당시 독일 정부의 외교문서가 발견됐다.

정상수(44)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8일 “지난달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보관소에서 1904년 9월 말 일본군들이 3명의 조선인을 총살한 것과 관련된 8장의 사진과 함께, 이 총살이 잘못된 것임을 본국에 보고한 조선 주재 독일 변리공사 콘라트 폰 잘데른(konrad von saldern)의 보고서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 사진들 가운데 총살 장면을 담은 5장은 1904년 12월 프랑스 주간지 <라 비 일뤼스트레>에 실린 것이 2005년 확인됐으나, 총살장으로 끌려가는 장면 등을 담은 사진 3장과 총살의 부당성을 지적한 외교문서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잘데른 공사는 1904년 10월22일 사진 8장과 함께 본국 외교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1904년 9월 말 일본군이 함경도 지역에서 철도 물자를 훔쳤다는 이유를 들어 농민들을 붙잡아 본보기 처형을 하고 있는 장면”이라는 사진 설명을 남겼다. 그는 “일본군은 국제법상의 전시권에 따라 적국의 첩자로 행동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중립국(조선) 국민이라도 처벌할 수 있다는 근거를 내세웠으나, 처형된 사람들은 정치적 이유(러시아에의 협력)가 아니라 생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저지른 행위”라고 밝혔다. 당시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위해 함경도 지역에서 군정을 실시하고 있었다고 잘데른 공사는 덧붙였다.

그는 “아무런 정치적 이유없이 국내 재판에 회부하지도 않고 농민을 총살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그 몇 주 전 방문한 평북 안주에서도 일본군 전신선을 잘라 간 농민을 처형한 것을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잘데른 공사는 이어 “전국 곳곳에서 진행된 이런 양민학살에 대해 형식적인 통치권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제국 정부가 항의를 제기했지만 3만명의 병력을 주둔시킨 실질적인 지배자 일본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양민학살을 자행했다”고 밝혔다.

정상수 교수는 “1910년 한일합방이 이뤄지기 전에 이뤄진 일본의 이런 행위는 국내법은 물론이고 국제법에 위배되는 사례로 보인다”며 “1965년 한일협정에서 정한 식민지배 배상(대상기간 1910~45년)과는 다른 차원에서 배상 요구가 가능한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정상수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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