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총선을 앞두고 깊은 내홍에 휩싸여 있다. 이상득과 이재오의 갈등, 후보 55인의 이상득 용퇴 요구, 그리고 박근혜의 지도부 책임론과 유세 거부 등으로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권 출범 두 달이 못된 시점에서 연출되어서는 안 될 혼란상이다. 정권말기에나 있을법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기획재정부 업무보고 3월 10일 ⓒ 청와대 사진 | |
이 혼란의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이재오, 이방호, 강재섭, 이상득 등의 이름들이 거론된다. 박근혜를 비난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그런것들은 지엽말단에 불과하다. 혼란의 핵심에는 대통령의 기업가적 인재 등용 스타일과 사고방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군부대를 시찰하는 자리에서 군의 지휘관들에게 "ceo 의식"으로 무장할 것을 주문했다. 기업경영적 가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탈여의도 정치를 주창하기도 했다. 박정희 시대에 우리나라 최고의 선진 조직과 일류 엘리트가 군부였듯이 이 시대 최고 선진조직과 엘리트는 기업이라 할만하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주문은 타당한 측면이 있고, 국민들에게 긍정적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글로벌 기준에 적합한 ceo를 전제할 때 설득력이 있다. 지금 최고 기업 삼성이 특검을 받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기준에 삼성이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우리 기업 풍토에서 핵심 요직은 가족이거나 그에 준하는 가신이 차지하는 게 상례이다. 유일한이 문국현에게 ceo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글로벌 기준이라면 우리의 보편적 행태는 가족 중심이라는 구태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이른바 족벌경영체제이다.
오늘의 혼란은 바로 대통령이 나라를 족벌체제로 운영하고자 한데서 기인한다. 이미 내각구성에서 그러한 모습의 일단을 노출한 바 있다. 강부자, 고소영이란 신조어는 대통령이 각 방면의 최고 엘리트를 폭넓게 찾아 국정을 맡기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신뢰할 만한 사람에 비중을 두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소망교회에서 장관을 발탁한다는 것은 하나회보다 더 퇴행적이다.
대통령은 그와 같은 사고방식을 국회공천에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장관이 부사장이라면, 국회의원은 전무, 상무 정도로 보고 있으며 그들을 자기 사람으로 채워 일사불란한 지도력을 발휘해 보고자 했을 터이다. 그리고, 그들을 관리하는 수장에 형님 이상득이 있을 터이다. 공천이 청와대가 아닌 공심위의 작품이라는 반론은 겉으로 드러난 형식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배운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자기 경험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대표적 족벌기업인 현대에서 기업경영을 배운 대통령이 나라를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이끌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추론할 수 있는 일이다.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말이다.
집권당이 잘못가고 있으면 바로 잡아야
그런 방식은 나라는 물론이거니와 기업에서 조차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낡은 방식이다. 특검을 받고 있는 삼성이 이를 계기로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경영체제로 거듭나야 하듯이, 이명박 대통령 또한 이 의식과 시스템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 태어나지 않는 한 나라와 정권의 미래는 없다. 이 혼란을 자성과 재건의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일찍 맞는 매를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박근혜의 기자회견을 두고 조선일보는 "한나라당 안에서 한나라당에 전쟁선포한 박근혜" 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를 박근혜 개인의 원한을 푸는 것으로 격하하고 있다. 제목 자체가 박근혜를 파렴치범으로 매도하기 위한 고심의 역작이다.
그러나 이는 진실을 보지 못하는 우매함이거나 알고서도 외면하는 파렴치함이다. 인터넷의 무명논객인 필자보다 많이 배우고 수십년간 언론에 종사했으며 영향력이 백배나 강한 대조선의 논설위원이라면 그런 논조를 펴서는 안된다. 언론의 책임과 사명을 생각한다면 그래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분명 표면적으로 볼 때, 박근혜가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박근혜연대"라는 친박신당을 "고무격려"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언필칭 대한민국 최고의 신문이라면, 이같은 표피적 분석과 비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사태의 내면에 천착해야 하는 것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변호할 것이 아니라 나라의 장래를 염려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날, 민한당이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여당의 2중대에 머물러 있을 때, 김영삼과 김대중은 이민우라는 대리인을 내세워 새 정당을 총선에 임박하여 출범 시켰고 단숨에 제 1 야당으로 부상하였다. 그건 국민이 그들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참다운 야당의 역할을 다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라는 말이다.
더구나 지금은 집권당이다. 집권당 역할의 중대성은 야당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 집권당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당연히 문제를 제기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산으로 가지 않는다.
집권당의 국회의원을 기업의 전무, 상무쯤으로 인식하여 일사불란한 줄세우기를 기도한 작금의 공천결과에 침묵하는 것은 국민에게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비겁함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그 일을 당내에서 할 방법이 없다면 탈당을 해야 마땅하지만, 그 길을 교묘한 방법으로 막아놓은 것은 한나라당이다. 박근혜가 탈당했다면? 조선 등의 비판 수위가 지금의 몇 배에 달할 것임은 안 봐도 비디오이다.
그걸 극복하고 뜻을 관철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조중동 연합"에 맞서 이길 정치인은 없다. 정치인이 지는 것이야 별것도 아니지만 그 정치인이 추구하는 가치와 뜻이 죽는 것은 국민적 불행이다. 정치인은 사라져도 그만이지만 가치와 정의는 시퍼렇게 살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의 실현은 부득이 정치인을 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통령을 뽑는 일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국회의원 선거이다. 집권당이 파행을 보여 주고 있다면, 언론이 제 역할을 외면하고 있다면, 국민이라도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한다. 지엽말단의 형식논리에 얽메일 것이 아니라 나라와 역사를 생각하는, 정의와 가치가 살아 있는 국민의 선택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라는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