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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의 자존심을 간직한 신성한 동물, ‘칡소’
도깨비뉴스
[2008.10.20 14:22] 조회 209

토종의 자존심을 간직한 신성한 동물, ‘칡소’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칡소.

 소슬바람을 맞은 잠자리처럼, 소가 주저앉는다. ‘광우병 걸린 소’라는 코멘트가 오버랩된다. mbc ‘pd수첩’의 팩트(fact)가 틀린 보도는 한국인이 미국을 바라보는 이중적 감정에서 부정의 측면을 부추기며 나라를 소용돌이로 내몰았다. 광우병 괴담의 허무맹랑함을 꾸짖으면서 협상의 잘못을 질타한 중간자의 목소리는 스크린의 현란함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 [화보] 토종의 자존심 ‘칡소’ 모습 구경하기!
 
 볼이 바알개진 숫총각처럼, 소가 일어선다. 바람은 깊고, 하늘은 맑다. 도둑처럼 온다는 “가을이 개같이 쳐들어왔다”(최승자 시인). 목초를 맛보는 혀가 분주하다. 겨울을 견디고자 폭식한다. 소에게도 가을은 살찌는 계절. 일어선 소는 젖을 늘어뜨린 암소다. 암소가 암소의 엉덩이 위에 올라탄다. 녀석들은 암수를 구별하지 못한다.

 
 암컷이 발정 난 암컷의 냄새를 맡고 일어선 것이다. 그렇다고 동성애는 아니다. 수컷은 사람의 기준으로는 부실하다. 생식기가 따뜻해지자마자 방사를 마무리한다(돼지 수컷은 사람이 손으로 성기를 꽉 쥐면 사정한다). 수컷의 생식기에 따뜻한 콘돔을 끼우면 수컷은 암컷이건 수컷이건 가리지 않고 올라타 정액을 내뿜는다.
 


▲소는 암수를 구별하지 못한다.
 
한우는 본래 ‘먹는 소’ 아닌 ‘일소’
 지리산 바래봉이 암컷들의 장난질을 내려다본다. 봉우리가 가을 햇살을 받아 눈부시다. 소(牛)는 소목(偶蹄目) 솟과의 포유류. 한우 같은 가축을 포함해 물소, 들소, 야크, 가우르, 가얄, 밴팅이 모두 소다. 몸은 건장하고 머리는 낮다. 암수가 모두 뿔을 가졌다. 뿔은 마디 모양의 융기가 없고 뱀처럼 사리 틀거나 꼬이지 않는다.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소를 생구(生口)라고 불렀다. 생구는 집안의 종을 일컫는 말. 사람 대접하던 소가 죽으면 장사 지낸 뒤 먹었다. 소는 뜯어먹히면서 사람에게 귀속한다. 머리는 국밥으로, 내장은 탕으로, 피는 선지로, 꼬리는 찜으로, 고기는 구이로서 사람의 몸으로 옮겨져 근육을 이루고, 피로 흐르며, 뼈를 세운다.

 한국뿐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가 자국 소를 사랑하는 까닭은 등에 일을 업고 살다가 몸을 통째로 사람에게 귀속하는 숙명 덕분이 아닐까? 원래 한우(韓牛)는 ‘먹는 소’가 아닌 ‘일소’다. 일소가 천수를 누린 뒤 죽으면 사람이 먹는 것일 뿐. 소를 잡아먹는 걸 금지하는 법을 어겼다가 처벌받은 일화를 조선왕조실록은 전한다.
 
 한우는 유럽원우(bos primigenius)와 인도혹소(bos indicus)의 잡종이 기원전 어느 때 한반도에 정착한 뒤 번식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우는 본래 고기가 질기고, 체구가 작다. 먹을거리로는 약점이 많았다. 체구가 커지고 살코기가 물렁해진 오늘의 한우는 개량한 것이다. 전두환 정권 때 덩치를 더욱 키우자며 외국소와 섞은 일도 있다.

 한우가 외국소와 뒤섞인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일 때문에 “한국에 더 이상 한우는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한우만큼 조상들이 부리던 동물의 dna를 몸으로 오롯이 운반해온 가축은 없다. 우리가 먹는 돼지와 닭은 뼛속까지 외래종. 토종 돼지는 덩치 큰 녀석이 몸무게 80kg가량으로 식용 가축으로 삼기엔 경제성이 떨어진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국가의 핵심 자산이요, 군수물자였다. 일제는 한국의 소를 약탈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150만 마리의 한우를 일본과 중국, 러시아로 반출했다. “재래종(일본 토종소는 한우보다 덩치가 작다)보다 골격이 큰 데다 온순하면서 영리해 일소로는 최고다. 거친 사료도 잘 먹고 환경 적응 능력이 뛰어나다”면서.

 
 일제가 한우에게 저지른 만행은 또 있다.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한우는 적황색 털을 지닌 소가 전체의 87%, 털이 검은 흑우가 8%, 칡소가 3%였다. 그런데 일제가 1938년 한우 심사표준을 만들면서 ‘한우의 모색을 적갈색으로 한다’는 규정을 집어넣어 털색을 통일하면서 흑우와 칡소가 거의 사라졌다. 일제의 규정이 광복 후에도 이어지면서 현재는 흑우 100여 마리, 칡소 200여 마리가 남아 있다.

 칡소가 바래봉을 바라보면서 앞발로 흙먼지를 일으킨다. 거친 표정엔 힘이 넘치고 강한 근육은 출렁거린다. 화가 이중섭이 화폭에 옮긴 소가 그림에서 걸어나온 듯하다. 이중섭의 소가 바로 칡소.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정지용 시인)이라는 절창에 등장하는 ‘얼룩빼기 황소’도 칡소다. 박목월의 동요 ‘얼룩송아지’도 젖소가 아닌 칡소가 주인공.
 


▲칡소
 

▲이중섭의 소 


 일제가 퇴출시킨 칡소는 맛이 좋아서 임금 상에만 올랐다는 말도 있다. 고구려 벽화에도 칡소가 등장한다. 그 칡소가 부활을 예비한다. 멸절을 막으려고 dna를 보관해온 농촌진흥청 가축유전자원시험장이 복원, 양산에 나서기로 했다. 칡소끼리 교배해도 누런 송아지가 나올 만큼 불완전하지만 연구를 계속해 후대로 이어질 칡소 dna를 확보하고자 한다.

 일제가 한우 색을 하나로 통일한 이유는 일본산 와규(和牛)의 털이 검기 때문이다. 조선소 = 적갈색, 와규 = 흑색으로 구분한 셈이다. 일제가 수탈한 한우 가운데 와규로 정착한 품종도 있다고 한다. 와규는 육질이 연하고, 기름기가 많다. 햇볕을 쏘이지 않고 키운 소로 똑바르게 걷지 못할 만큼 약하다. 곰국을 끓이려고 다리뼈를 망치로 두드리면 바스러진다.
 
토종 자존심 간직한 신성한 동물
 와규는 한우가 한국에서 그렇듯 일본의 자부심이다. 한국에서 팔리는 와규는 호주산. 도쿄에서 파는 와규도 호주산이 많다. 왜 이렇게 됐을까? 1997, 98년 일본의 실수 때문이다. 와규 정액 1만3000개 스트로와 생축 100여 마리를 미국에 수출한 것이다. 미국은 자국 소 개량에 이용한다는 명목으로 와규와 녀석의 정액을 수입했다. 그런데 미국이 정액과 소를 호주에 재수출했다. 호주는 와규를 이용해 교잡종과 순종을 증식했다. 그러고는 한국 일본으로 수출길을 텄다. 일본 농민들은 송아지값이 오르자 호주에서 송아지를 수입했다. “3개월 넘게 일본에서 사육하면 국산”이라는 일본의 규정을 이용한 것. 뒤늦게 일본 정부가 와규 유전자와 관련한 특허 획득에 나섰지만 시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와규는 달다. 입에서 녹는다. 그래서 비싸다. 한국과 일본에서 쇠고기는 마블링(지방과 단백질이 만든 띠)이 가득해야 고급육으로 친다. 한우는 미국소 호주소 뉴질랜드소 중국소보다는 마블링이 월등하지만 와규만은 못하다. 마블링이 아름다운 쇠고기가 몸엔 해롭다. 포화지방산이 많기 때문이다. 쇠고기 → 닭고기 → 오리고기 → 개고기 순으로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이 많다.
 


▲한우는 마블링이 아름다우면서도 불포화지방산이 적은 편이라고 한다.
 


 
 와규의 마블링이 아름다운 까닭은 외양간에 가둬 키우면서 옥수수 같은 곡식만 먹이기 때문이다. 한우도 그렇게 키우는 예가 많다. 초원에서 풀을 먹고 자란 소는 기름기가 적다. 호주와 뉴질랜드 농민들이 한국, 일본 수출용 소에는 곡식을 주로 먹이는 까닭이다. 풀이 주식이라면 곡식은 간식. 마블링이 아름다운 소는 ‘밥’ 대신 ‘초콜릿’만 먹은 소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한 대기업은 호주로 한우 수정란을 가져가 그곳에서 키운 뒤 한국으로 수입하는 비즈니스를 기획했다. 한우를 지키고자 눈을 벼려온 연구자들은 이 업체를 매국노 보듯 한다. 구상대로 사업을 진행하면 소비자는 값싼 한우를 먹겠으나, 한우시장도 와규시장처럼 회오리칠 것 같다. 연구자들은 보관 중인 한우의 정액을 신주처럼 다룬다.
 
 소설가 윤대녕은 “먹을거리로서의 소를 얘기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우선 초식동물이기에 그렇고, 집짐승으로서의 소는 더더욱 그렇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사람에게 소는 ‘신성한, 너무나도 신성한’ 동물이다. 오후 5시, 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소 풀 뜯어먹는 소리가 들릴 만큼 사위가 적막하다. 칡소가 일어선다. 땅을 박찬다. 흙먼지가 인다.
 
기사제공= 주간동아/ 송홍근 기자의 동물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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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10/20 [15:21]  최종편집: ⓒ 민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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