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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사이에 원균처럼 망령된 이가 없을 것"
난중일기에서 빠진 32일치의 새로운 내용 밝혀졌다.
 
편집부 기사입력 :  2008/04/0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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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2일 현충사 유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충무공유사(재조번방지초)를 번역한 결과 기존의 난중일기에 없는 32일치의 새로운 내용이 밝혀졌다고 밝혔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의 친필인 난중일기 초고본과 조선시대 정조의 명으로 편찬된 이충무공전서 등이 있다. 이번 충무공유사(재조번방지초)의 번역으로 난중일기에서 빠진 새로운 내용이 밝혀짐에 따라 귀중한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문화재청에서 난중일기 초고본과 이충무공전서의 내용 중 빠진 부분을 보완하고자  2006년말 번역사업을 실시하게 되었고, 이번에 새로 밝혀진 일기내용을 통해  이충무공의 인간적인 모습과 전란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구성은 1.재조번방지초, 2.정읍사상랑문, 3.춘추제향문, 4.삼도회문, 5.상소문, 6.일기초, 7.임란에 참가한 장졸의 명단, 8.중국장수가 준 물품목록, 9.기타 정운과 송희립의 자손명단으로 되어 있다.
 
충무공유사(재조번방지초)는 충무공 종가에서 보존되어 온 고문서이며 난중일기의 주요부분을 발췌․정리한 것으로서 연도나 작자는 미상이다. 1968년도 난중일기 도난 사건 발생 후, 도난과 훼손에 대비해 난중일기와 함께 50부가 영인되어 주요 기관 및 도서관 등에 배포된 바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번역된 자료는 물론 충무공유사(재조번방지초)에 수록된 내용 중 난중일기 이외의 기록 자료에 대해서도 판독 및 번역사업을 계속해서 실시하고, 그 결과를 현충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일반에 제공할 예정이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과 관련된 기존 기록들을 뽑아 필사한 17세기의 문서 ‘충무공유사(忠武公遺事·재조번방지초)’는 지금까지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일기 32일치를 담고 있다. ‘충무공유사’의 탈초(脫草·초서로 된 글씨를 풀어 씀)와 완역 작업을 수행한 노승석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대우교수의 번역을 토대로, 새로 발굴된 기록들 중 주요 내용들을 뽑아 소개한다.

●1595년(을미년) 정월 10일

순천 부사(=이순신의 부하 장수인 권준·權俊)도 공사(公私)간의 인사를 하려는 것을 잠시 보류했다가 조금 뒤에 불러들였다. 이들과 함께 좌석에 앉아 술을 권할 때 말이 매우 잔혹하고 참담했다.

順天公私禮, 姑留之, 而有頃招入, 同坐饋酒之際, 言辭極兇慘.

(이번에 발굴된 일기에는 부하 장수인 권준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이순신의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기존의 ‘난중일기’에선 찾기 어려운 부분이다. 당시는 전선이 교착 상태인 채 강화 회담이 전개되고 있었고,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은 군량 확보에 노력하면서 다시 닥칠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다.)

●정월 12일

삼경(자정쯤)에 꿈을 꾸니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오셔서 분부하시기를 “13일에 회( ·이순신의 맏아들)를 초례(醮禮·전통 혼례)하여 장가보내는데 날이 맞지 않는 것 같구나. 비록 4일 뒤에 보내도 무방하다”고 하셨다. 이에 완전히 평소와도 같은 모습이어서 이를 생각하며 홀로 앉았으니, 그리움에 눈물을 금하기 어려웠다.

三更夢先君來敎, “十三日送醮,  往似有不合. 雖四日送之無妨”爲敎. 完如平日, 懷想獨坐, 戀淚難禁也.

(돌아간 아버지 이정·李貞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기존 ‘난중일기’에는 전쟁 중에도 수시로 사자를 보내 어머니의 안부를 대신 묻게 하는 등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을 적은 부분이 많지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쓴 부분은 거의 없었다.)



▲ 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 월전 장우성 화백의 1953년 작품이다. /조선일보 db
●정월 15일

우후(虞候·수군절도사 밑에 두었던 무관직) 이몽구와 여필이 왔다. 이 편에 “이천주(李天柱)씨가 뜻하지 않게 갑자기 죽었다”는 말을 들으니, 경탄함을 이기지 못했다. 천리 밖의 땅에 던져진 사람이 만나보지도 못하고 갑자기 죽으니 더욱 애통과 슬픔이 심했다.

虞候李夢龜及汝弼來, 聞李天柱氏, 不意暴逝云. 不勝驚嘆, 千里投人, 不見而奄逝, 尤極痛悼.

(‘이천주’란 인물은 이순신의 지인으로 추정된다. 전란 중 벗을 잃은 애절한 심정을 표현했다.)

●정월 27일

오늘이 바로 (맏아들) 회( )가 혼례를 올리는 날이니, 걱정하는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장흥 부사가 술을 가지고 왔다. 그의 서울에 있는 첩들을 자기의 관부(官府)에 거느리고 왔다고 하니, 더욱 놀랍다.

乃 奠雁之日, 心慮如何? 長興佩酒來, 其京妾亦率來于其府云, 尤可駭也.

(전란 중에 혼례를 올리는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당시 관원들의 행태를 기록했다.)

●2월 9일

꿈을 꾸니 서남방 사이에 붉고 푸른 용이 한 쪽에 걸렸는데, 그 형상이 굴곡져서 내가 호로 보다가 이를 가리키며 남들도 보게 했지만, 남들은 볼 수 없었다. 머리를 돌린 사이에 벽 사이로 들어와 그림 용이 돼 있었고, 내가 한참 동안 어루만지며 완상하는데 그 빛과 형상이 움직이니 특이하고 웅장하다 할 만 했다.

夢西南間, 赤靑龍掛在一方, 其形屈曲, 余獨觀之, 指而使人見之, 人不能見. 回首之間 來入壁間, 因爲畵龍, 吾撫玩移時, 其色形動搖, 可謂奇偉.

●3월 24일

(전라)우수사(右水使=이억기)는 앉을 대청을 개수(改修)해 세우는 것을 나쁘게 여기고 헛소리를 많이 하며 보고해 왔다. 매우 놀랍다.

右水使以坐廳改立爲惡, 多費辭報來, 可愕可愕.

(‘우수사’는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이던 시절 함께 해전에 참가해 전공을 세웠고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했다. 새로 발굴된 부분에서 이순신은 세 번에 걸쳐 이억기에 대해 못마땅한 심정을 적었는데, 역시 기존 ‘난중일기’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이다.)

●4월 30일

아침에 원수(元帥=도원수 권율·權慄)의 계본(啓本·임금에게 제출하는 문서 양식)과 기(奇)·이(李)씨 등 두 사람의 공초(供招·죄인의 진술)한 초안을 보니 원수가 근거 없이 망령되게 고한 일들이 매우 많았다. 반드시 실수에 대한 문책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데도 원수의 지위에 둘 수 있는 것인가. 괴이하다.

朝見元帥啓本及奇李兩人供草, 則元師多有無根妄啓之事, 必有失宜之責. 如是而可置元帥之任乎! 可怪.

(무척 당혹스런 기록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전체를 통솔했던 도원수는 다름아닌 ‘행주대첩의 영웅’ 권율 장군이었다. 그는 당시 이순신 장군의 상관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각각 육군과 수군의 총사령관이었던 권율 장군과 이순신 장군 사이에 이와 같은 갈등이 있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순신의 일기가 대단히 솔직한 기록이었음을 알 수 있다.)

●7월 1일

내일은 아버지의 생신인데, 슬픔과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다.

明日乃父親辰日, 悲戀懷想, 不覺涕下.

●8월 22일

강을 건너 주인집에 갔다가 그 길로 체찰사(體察使)의 하처(下處·임시 숙소)로 가니 먼저 사천현에 와서 자고 있었기 때문에 맞이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우습다.

渡江入主人家, 因到體察下處, 則以先到泗川縣宿, 而不爲迎命爲言, 可笑.

(기존 ‘난중일기’에는 이 내용의 앞부분에 ‘오후에 진주 남강가에 이르니 체찰사가 이미 진주에 들어왔다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체찰사는 비상시에 임시로 지방에 파견해 군대를 지휘 통솔하는 역할을 맡은 관직이다. 고위 관료의 행태를 비웃는 자세가 보인다.)

●10월 3일

오늘은 (맏아들) 회( )의 생일이다. 그래서 술과 음식을 갖춰 주도록 예방(禮房)에 당부했다.

乃 生日, 故酒食備給事, 言及禮房.

●10월 21일

정사립(鄭思立·이순신의 비장)을 통해 들으니 “경상수백(慶尙水伯=권준)이 모함하는 말을 거짓으로 꾸미는데 내키는 대로 문서를 작성하고, 문서로 적게 되면 오로지 알려지지 않게 했다”고 했다. 매우 놀랍다. 권 수사의 사람됨이 어찌하여 그처럼 거짓되고 망령된 것인가?

因思立, 聞“慶水伯飾誣陷辭. 倚指成文之, 而文之則專不聞”之云. 可駭可駭! 權水之爲人, 何如是誣妄耶?

●10월 28일

초경(밤 8시쯤)에 거센 바람과 폭풍우가 크게 일었다. 이경(10시쯤)에 우레가 치고 비가 와서 여름철과 같으니 변괴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初更狂風驟雨大作, 二更雷雨有同夏日, 變怪至此.

●11월 1일

조정에서 보낸 편지와 원흉(元兇·경상우수사 원균을 매우 낮춰 표현한 것)이 보낸 답장이 지극히 흉악하고 거짓되어 입으로는 말할 수 없었다. 기만하는 말들이 무엇으로도 형상하기 어려우니 하늘과 땅 사이에는 이 원균(元均)처럼 흉패하고 망령된 이가 없을 것이다.

朝報及元兇緘答則極爲兇譎, 口不可道. 欺罔之辭, 有難形狀. 天地間無有如此元之兇妄.

(이순신·원균 두 사람의 관계가 좋지 않았음 기존 ‘난중일기’에서도 드러나지만, 이처럼 커다란 혐오감을 보인 대목은 없었다.)

●11월 4일

우리 나라의 병사들이 쇠잔하고 피폐한데 이를 어찌하랴.

我國兵殘力疲, 奈如之何?

1598년(무술년) 7월 24일

복병장(伏兵將) 녹도 만호 송여종(宋汝悰)이 전선(戰船) 8척을 거두다가 적선 11척을 절이도(折爾島)에서 만나 6척을 통째로 포획하고 적군의 머리 69급(級)을 벴으며 용기를 발휘해 진영에 돌아왔다.

伏兵將鹿島萬戶宋汝悰, 斂戰船八隻, 遇賊舡十一隻于折爾島, 全捕六隻, 斬首六十九級, 賈勇還陣.

(전쟁 막바지에 조선 수군이 거둔 승리인 ‘절이도 해전’에 대한 기록이다. 절이도는 지금의 전남 거금도다. 이 승전은 지금까지 ‘선조실록’과 이순신의 조카 이분의 ‘행록’ 등에 단편적으로 등장했을 뿐 정작 ‘난중일기’에는 그 내용이 없었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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