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출도로 사람 차별하는 좌파?
진중권이 나의 글에 대해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듣보잡의 글을 게재하는 조선일보가 가엾다” 표현했다. 물론 이 글은 진보신당의 게시판에 적은 글이므로 크게 의미를 부여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이런 잡글을 크게 대서특필하는 데일리서프를 비롯한 언론사의 젊은 기자들이다. 지금 나의 글은 진중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 젊은 기자들이 이념을 떠나 취재원의 멘트를 어떻게 판별하여야 하는지, 그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진중권은 나에 대해 듣보잡이라 불렀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이 나보다 더 유명하다는 것이고, 다르게 표현하면 언론 노출도가 높았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386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의 수준이다. 누가 누가 언론에 많이 나왔냐 가지고 서열 가르고 계급 가르겠다는 이 발상, 수구세력들도 하지 않는 짓이다. 언론 노출도로 계급을 갈라버리는 정신상태이니, 학력과 학벌로 사람 차별하는 거야 오죽 하겠는가?
사실 좌파 386세대들 중에서도 언론노출도를 갖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진중권만의 독특한 행태이다. 왜 그럴까? 진중권 스스로 학벌과 전문성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대 출신이기는 하지만 미학 분야에서 그다지 뛰어나지도 않은 독일의 자유베를린 대학에서조차 박사 학위 취득에 실패했다. 미학분야에서 독일이나 유럽권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넘쳐난다. 진중권은 이 부분에서 처절하게 실패했기 때문에 학력 가지고 말빨 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중권이 내세우는 것은 대중성, 즉 언론노출도이다. 진중권의 눈에는 누가 어떠한 비전을 갖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누가 tv에 많이 나왔느냐, 혹은 신문에 칼럼을 많이 썼느냐만 갖고 사람을 판단한다. 진중권 눈에는 내가 자신에 비해 tv와 신문에 많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것이 듣보잡이라는 표현으로 돌아왔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벌써 3년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고정칼럼을 쓰고 있고, 그 이전에는 한겨레와 경향에도 칼럼을 써왔다. 신문의 영향력으로 볼 때 진중권이 쓰는 마이너 잡지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진중권이 자신이 유명하다고 우겨댈 수 있는 유일한 매체는 tv이다. 나야 방송개혁의 선두에 서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tv든 라디오든 출연을 거부하고 있는 형편이다. 진중권의 놀이터나 다름없는 3류 저질프로인 <100분토론>은 일찌감치 출연 거부를 선언했다.
최소한 좌파 지식이라면서 누가 tv에 자주 나왔느냐 갖고 우열을 가르자는 태도, 이게 진짜 좌파의 모습이라면 대한민국 우파들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없을 것이다. 이들은 tv에만 내보내주면 좋다고 대한민국 만세 불러댈 수준이니, 좌익 혁명 우려할 게 뭐가 있는가?
나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 진중권은 좌파가 아니다. 유학실패에 따른 콤플렉스를 대중매체의 노출도를 통해 보상받으려는 방송 비즈니스맨일 뿐이다. 오히려 우리가 걱정해야할 점은 진중권이 끼치는 젊은 세대에 대한 악영향이다.
진중권, 강의석 따라 알몸 시위할지도
진중권을 보면 딱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최근 알몸 시위로 386세대 좌파들에게 집중 공격을 받은 23살의 청년 강의석이다. 이상하게도 386세대 지식인과 언론인들은 강의석 하나만을 타겟으로 언론노출증 환자라 공격했다. 물론 그 비판에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보자. 강의석과 진중권을 비교해보라는 것이다.
인맥도 학맥도 아직 갖추지 못한 청년 시민운동가가 있다. 정석대로라면 최소한 한두 분야라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실력을 쌓는 게 맞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좌파진영에서 그렇게 해서 성공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미 실력없는 386들이 다 장악한 판에서 평생 따까리로 살다 묻혀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래서 강의석이 택한 방식이 선의의 언론플레일 거라 추측한다.
벤치마킹 대상은 누구였을까? 진중권 아니었을까? 도대체 진중권의 전문분야가 무엇인가? 남들 다 하는 박사학위조차 실패했으니, 미학은 분명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미학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부지기수이다. 지금 진중권이 교수인 척 하지만 실제로는 미학도 아니고 철학도 아닌 중앙대 독어과 강사에 불과하다. 실제로 진중권은 친노무현 인사들의 빽인지, 한국예술종합대학에서 그가 단 한번도 공부한 적 없는 현대철학을 강의하다 학생들로부터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그 와중에 역시 한예종에서 국민세금 30억원으로 컴퓨터 아트 분야 프로젝트를 시도하다 중단되었고, 이런 혈세낭비에 대해 역시 한예종의 학생들이 인터넷미디어협회에 제보를 하기도 했다.
미학 분야에서 돌파가 안 되기 때문에, 이슈만 터졌다 하면 주로 유명 인물들을 짓밝으며 언론의 조명을 받아 대중성을 확보했다. 대한민국에서 진중권만큼 남을 밟아서 성공한 사례가 또 있는가? 그래놓고서 남이 자기를 비판하면 “떠보려는 수작”이라 길길히 뛴다. 자신의 없는 실력을 감추기 위해 남의 비판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수구세력도 이런 수구세력이 없다.
진중권은 sf영화를 공부하지 않고 <디워>를 논하고, 인터넷 정책을 공부하지 않고 인터넷법률 문제에 뛰어든다. 실제로 내가 진중권과 인터넷 관련 토론할 때, 인터넷 관련 법률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느라 시간을 다 빼앗긴 바도 있다. 공부하지 않고도 공개 토론회에 참가할 수 있는 그 용기, 그거 하나만큼은 진중권의 미덕일까?
더구나 진중권은 이런 언론노출도를 갖고 사람을 차별하니, 젊은 좌파들이 뭘 보고 배우겠냐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386좌파들 중 그 누구 하나도 진중권의 전문 실력 부족을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386패거리들의 힘이다.
앞서 말했듯이 언론이 불러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생산적인 대안을 내세우지 못하는 진중권의 선택을 비판할 바 아니다. 진중권은 진중권만의 살 길을 찾았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이 이러한 진중권의 방식을 그대로 배운다거나, 혹은 진중권의 차별의식 탓에 억압을 받는다면 이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다.
젊은 기자들은 낡은 진중권을 버리고 젊은 전문가를 찾아라
이 지점에서 각 언론사의 젊은 기자들의 역할이 나온다. 대중문화 분야라면 이문원이 있고, 사회분야라면 새사연의 황진태가 있고, 인터넷분야라면 이준희 인터넷기자협회 회장이 있다. 다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최소한 386 이하의 젊은 기자들이라면 새로운 전문가들을 발굴해야지, 기사 쓰기 편하다고 실력없는 낡은 386의 언론플레이에 계속 이용당해도 되는 건가? 꼭 언론노출도 1위를 자랑하는 진중권으로 장사를 하겠다면, 차라리 진중권 현상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기사를 올려라. 바로 빅뉴스처럼 말이다.
진중권이 게시글을 쓰든 댓글을 쓰든 그건 그의 자유이다. 그러나 언론은 진중권의 출세 도구로 이용당해선 안 된다. 멘트 하나 인용하더라도 보다 전문가의 멘트를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그 멘트가 공적으로 의미가 있어야 한다. “변희재는 듣보잡이다” 이런 진중권의 멘트가 대체 무슨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인용하는가?
굳이 진중권 비판에 매진해야할 필요성도 없다. 어차피 대한민국 사회는 보다 전문화의 길로 접어들 것이고, 진중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차 사회의 외곽으로 밀려날 것이다. 그때도 진중권이 언론노출도를 기준으로 사람을 차별할지 기대해 본다. 아마도 1년 안에 진짜 듣보잡으로 몰렸을 때, 진중권이 어떻게 언론노출 비법을 새롭게 개발할지 그것도 궁금하다. 아마도 강의석처럼 알몸 시위라도 벌이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러한 흐름을 빠르게 할 수 있는 힘은 언론사의 젊은 기자들이 갖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미학조차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진중권의 386 권위에 주눅들지 말라. 진중권은 단 하나의 전문분야도 없이 댓글이나 쓰는 일반 네티즌일 뿐이다. 좌파매체에 있으면 젊은 좌파 전문가를 찾을 것이고 우파 매체에 있으면 젊은 우파 전문가를 찾아라. 이런 노력을 할 때, 젊은 실크세대가 바라는 좌우통합의 세상도 도래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진중권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전리품으로 전락될 것이며, 그때는 진중권의 댓글을 하나의 개그로 즐겨볼 수 있는 상황도 올 것이다. 마치 진중권이 개그맨 지상렬의 성인프로에 나와 히히덕거리는 걸, 웃어 넘겨 볼 수 있듯이 말이다.
물론 당부하고 싶은 바는 성인프로라면 성적인 쾌를 위해 시청하는데, 진중권 스스로 자문해보기 바란다. 자신이 성인프로에 나와서 시청자들에게 줄 수 있는 성적인 쾌를 지니고 있는지 말이다. 성인프로도 전문영역이므로, 지금부터라도 자신없으면, 불러준다고 함부로 나가는 버릇을 고쳐나가기 바란다. 어차피 조만간 아무도 안 부를 테니 말이다. / 변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