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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편지 ① 딱정벌레에 미친 청년
"다윈, 원숭이가 조상이라 한 적 없다" /연합뉴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  2009/02/12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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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기획 / 다윈의 편지 ① 딱정벌레에 미친 청년 [중앙일보]

연재를 시작하며

2월 12일은 찰스 다윈(1809~82)의 생일입니다. ‘종의 기원’을 밝히는 인류의 여정이 200년 전 이날, 평생 병치레를 했던 병약한 갓난아이로부터 시작됐죠.다윈은 일생 동안 2000여 명의 인물과 1만500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는군요. 남아 있는 편지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그가 12세 무렵에 쓴 글이랍니다. 10대 초반에 시작된 편지는 1882년 4월 17일까지 이어집니다. 놀랍게도 그가 숨을 거두기 이틀 전이네요. 매년 24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셈입니다.

본지는 다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다윈의 편지’를 소개하는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아직까지 한국에 번역·소개된 적이 없었던 다윈의 편지 중에서 의미 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골라 번역하고 그 의미를 밝히는 일입니다. 과학과 역사,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횡단의 글쓰기’를 선보여 온 주일우(42) 박사가 매주 목요일 글을 싣습니다.

다윈이 젊은 시절 품었던 곤충과 자연사에 대한 열정, 실연으로 끝나버린 첫사랑, 자녀들에 대한 애정, 일찍 세상을 뜬 딸에 대한 아픈 마음, 그로 인한 격한 종교적 번민, 주식 투자를 잘못해 투자금이 반 토막 난 이야기 등 인간적 면모가 편지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다윈의 편지들은 지적으로 풍성했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 지성계의 풍경을 보여주는 값진 자료이기도 하지요.

다윈의 서신 네트워크엔 빅토리아 시대 영국 최고의 지성인과 명사들이 망라됐습니다. 다윈이 당대 최고 명문가 집안에 속했기 때문이죠. 할아버지 에라스머스 다윈은 영국 국왕 조지 3세로부터 ‘왕실 의사’ 직위를 제의받기도 한 명사였다지요. 다윈의 부계가 명성 높은 학자 집안이라면 모계는 산업 자본가 집안입니다. 외할아버지 조시아 웨지우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웨지우드 도자기’의 창업자랍니다(250년을 이어온 이 기업은 지난달 청산절차에 들어갔네요). 다윈을 통해 당대 영국 상류층이 누렸던 귀족적 삶의 모습도 엿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다윈의 편지’와 함께 19세기 서구의 지적 풍경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 시작됩니다.

배노필 기자

친애하는 폭스 형,

곤충에 대해서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 죽을 지경이야. (…) 케임브리지에서 돌아온 다음 무지무지하게 게으른 생활을 했어. 곤충들을 보면서 휴식을 취했지. 하지만 아주 흥미로운 곤충 몇 마리를 잡기는 했어. 누나가 내가 잡은 곤충 중에 세 마리를 대충 그려줬어. 첫 번째 그림에 있는 것은 퀸스 칼리지에 다니는 호어가 버드나무에서 잡았던 그 곤충인 것 같아. 갈란드도 무엇인지 몰랐던 그놈 말이야. 울타리 나무껍질 밑에서 발견했는데 끊임없이 움직이고 모양도 특이하지. 세 마리를 잡았어. 이건 정말로 큰 수확이었어. 두 번째 그림은 쇠똥구리 중에서 아주 흔한 녀석이야. 형은 이름을 알겠어? 세 번째 것은 아주 아름다운 하늘소인데, 아마 북방꽃하늘소가 맞을 거야. (…) 무당벌레도 세 종류나 잡았어. 하나는 호어가 늪지에서 잡았던 것과 같아. 그때 형이 아주 희귀한 녀석이라고 이야기했었어. 다른 놈은 등껍질에 흰점이 7개 있어. (…) 혼자 좋아서 떠든 것을 용서해 주길 바라. 하지만 나는 형의 제자니까 용서해 줘야 해. (…)

1828년 6월 12일

찰스 다윈, 슈루즈베리

 오늘은 찰스 다윈의 200번째 생일이다. 그는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연을 이해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진화론을 주창한 대학자지만 시작은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다윈은 눈에 띄는 식물마다 모두 이름을 알아내려고 했고 조개·도장·서면·동전·돌조각 따위를 모으는 수집벽이 있었다. 과일 서리를 즐기던 장난꾸러기 꼬마 다윈은 사냥·낚시 등에 열중했다. 동네의 기숙학교에 다녔지만 거기서 배운 라틴어를 비롯한 고전 교육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형 에라스머스와 어울려 정원의 공구 창고에 화학실험실을 차려놓고 실험에 열중하는 일이 잦았다. 아니면 『세계의 불가사의』 같은 책들을 읽고 그 신기함과 놀라움에 빠져들었다.

다윈이 숨을 거두기까지 40년 간 살았던 ‘다운 하우스’의 서재. 다윈은 청년 시절 비글호에 올라 ‘지구 끝’까지 항해했지만 귀국 뒤 단 한 차례도 영국을 떠난 일이 없다. 다운 하우스를 벗어난 일도 거의 없다. 이 서재 안에서 ‘은둔의 학자’가 펼친 이론이 인류의 기원을 바꿔놓았다.

집안의 기대는 할아버지·아버지·삼촌에 이어 다윈도 의사가 되는 것이다. 별 뜻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의학 공부를 하러 에든버러로 갔다.

할아버지·아버지·삼촌·형이 모두 그곳 출신이라 입학은 수월했지만 역시 의학은 다윈과 궁합이 맞지 않았다. 마취제로 클로로포름이 사용되기 전이라 고통을 참아야 하는 환자들의 비명으로 가득 찬 수술실은 끔찍했다. 큰삼촌이 에든버러에서 시체 해부를 하다 얻은 패혈증으로 스무 살에 세상을 떠난 기억은 아버지와 다윈에게는 악몽이었다. 그들은 피를 극도로 싫어해 생각만 해도 치를 떨었다. 다윈은 고민했다. 여러 정황을 볼 때 아버지가 편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을 남겨 줄 것이라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는 두 해 남짓 만에 의학 공부를 그만두었다. 다시 케임브리지의 크라이스트 칼리지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다윈은 그 공부에도 관심이 없었다. 케임브리지에서는 무엇보다도 딱정벌레에 열중했다.

이번 회 편지에서 언급된 딱정벌레 그림. 다윈의 누나가 직접 그려줬다고 한다.

열아홉 다윈을 딱정벌레의 세계로 인도한 사람은 네 살 많은 육촌형, 윌리엄 다윈 폭스(1805~1880)였다. 함께 학교를 다닌 폭스와 다윈, 그리고 친구 몇몇은 어울려 다니면서 곤충을 잡았고 그것을 두고 열띤 토론도 했다. 그 시절, 다윈이 얼마나 딱정벌레에 열중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하루는 다윈이 오래된 나무껍질을 벗기다가 희귀한 딱정벌레 두 마리를 발견했다. 얼른 양손에 한 마리씩 잡았는데 다른 종류의 딱정벌레가 어슬렁거리며 등장했다. 다윈은 급한 마음에 한 마리를 입에 집어넣고 손을 뻗었는데 입 속의 딱정벌레가 독한 분비물을 내서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세 마리 다 놓쳤다.

딱정벌레에서 시작한 곤충학적 훈련은 이후 다윈이 자연학자로 성장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그 열정과 지식이 고스란히 비글호를 타고 여행했던 바다와 대륙에서 보았던 생명체들을 분류하고 이해하는 데 사용되었다. 다윈은 새로운 종의 출현이라는 당시로는 혁명적인 생각을 했고 결국 그 이유를 설명할 방도를 찾아냈다.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주일우(42) 박사는=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과학사를 전공한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환경사학으로 박사학위을 받았다. 현재는 문지문화원 ‘사이’의 기획실장으로 과학·문화·예술을 아우르는 기획과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편집한 책으로 『지식의 통섭』, 번역한 책으로 『다윈의 대답(4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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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원숭이가 조상이라 한 적 없다` [연합]

로잔대교수 `진화론은 당시 충격적`

"다윈은 '사람의 조상은 원숭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로잔대학의 다니엘 셰릭 교수(생태.진화 전공)는 찰스 다윈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12일 "그것은 다윈의 이론을 완전히 잘못 해석한 것"이라면서 그 같이 밝혔다고 스위스국제방송이 전했다.

셰릭 교수는 "다윈은 오히려 사람과(科)에 속한 두 종(種)이 서로 연관이 있으며, 그들이 공동의 조상을 가졌던 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면서 "그런 발언들은 서로 전혀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종의 기원'이 출간된 1859년 당시는 "인간이 어떤 동물 종에 비해서도 우월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기였다"면서 "다윈이 인간과 동물의 친척관계를 지적한 것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셰릭 교수는 일반인들이 통상 가지고 있는 다윈에 대한 이미지도 틀렸다고 지적했다.

셰릭 교수는 "하얀 턱수염을 지닌 지혜로운 노인이라는 다윈에 대한 이미지는 잘못된 것"이라면서 "비글호를 타고 항해를 떠날 때 다윈은 불과 22살의 나이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윈은 혁명적인 아이디어들을 대담하게 내놓는 열정적인 젊은 자연주의자였다"고 말했다.

또한 셰릭 교수는 "다윈을 고무해 '종의 기원'을 출간하도록 했던 중요한 인물을 우리는 잊고 있다"면서 "다윈보다 14살이 어렸던 영국의 자연주의자 리처드 럿셀 월리스는 다윈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인 연구를 통해 동일한 결론을 얻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진화란 수 천년 혹은 수 백만년 걸리는 무작위 돌연변이들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함으로써, 다윈과 월리스는 당대에는 정말로 센세이셔널한 가설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지배적이었던 기독교 중심의 '창조론'과 관련해, 그는 "그런 무비판적인 사상에서부터 종(種)들은 변하지 않으며 지구는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교황청, 다윈의 진화론 수용적 입장 [연합]

교황청 성직자들과 학자들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더 타임스 인터넷판이 11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교황청 문화평의회를 이끌고 있는 지안프란코 라바시 대주교는 다윈의 진화론이 기독교 신앙과 양립할 수 있다면서 생물학적 진화와 교회의 창조론은 상호 보완적인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것.

그는 교회가 진화론에 대해 적대적이었다는 점을 시인하면서도 진화론을 공식적으로 비판한 적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라바시 대주교는 교황 비오 12세가 1950년 진화론을 인간의 발전에 대한 유용한 과학적 접근이라고 언급하면서 다윈의 복권은 시작됐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진화론을 "가설 이상의 것"으로 평가한 바 있음을 상기시켰다.

교황청 부속기관인 로마 산타 크로체 대학의 신학자인 주세페 탄젤라-니티 교수도 진화론은 4세기에 활동한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작에서도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진화론이라는 용어 자체를 몰랐지만 생물의 형태가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변화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도 중세에 이와 유사한 관찰을 보고했다는 것.

탄젤라-니티 교수는 지금은 과학자들은 물론 신학자들도 유전자 암호의 비밀, "생물의 다양성이 종의 경쟁 혹은 협력의 산물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시기라면서 "진화론은 기독교 신학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레고리안 대학의 자연철학자인 마르크 르클레르크는 찰스 다윈의 탄생 200주년에 무관심한 학자는 있을 수 없으며 틀림없이 이를 축하할 것이라고 말하고 교회가 다윈에 대해 단호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르클레르크 '지적 설계론'을 주장하는 사람과 창조론자를 포함한 다윈의 적대 세력 다수가 진화론을 종교적 세계관과 전적으로 화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교황청은 다음달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다윈 탄생 150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회의 주최측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적 설계론'을 옹호할 의도로 학술회의를 마련한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주최측은 처음부터 이번 회의는 '지적 설계론'이 "빈약한 신학, 빈약한 과학'이라고 비판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며 '지적 설계론'은 과학이나 신학적 관심사가 아니라 단순한 '문화현상'으로서 주변적 의제로 취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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