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괴짜 장군’ 패튼… 그는 편견의 함정도 이겼다
■ 전쟁과 경영… 명장의 리더십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미국의 조지 스미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미국 조지 스미스 패튼 장군이 1945년 1월 15일자 라이프지의 표지 인물로 등장한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
| 패튼 장군은 1943년 3월 튀니지에서부터 주목받았다. 당시 그는 미 2군 사령관으로 취임했다. 바로 한 달 전 전투에서 2군이 참패를 당했는데 이로 인해 패튼 장군이 지휘봉을 넘겨받은 것이다. ‘캐서린 패스의 전투’로 불리는 한 달 전 전투는 미군이 독일의 로멜 전차군단을 상대한 첫 교전이었으며, 당시까지 미군이 해외에서 당한 최악의 패전으로 기록됐다. 미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프랑스와 영국군을 휩쓴 ‘롬멜 공포증’이 번져가고 있었다. 먼저 미군의 사기를 되살리는 게 시급했다.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패튼 장군은 “철모와 넥타이와 각반을 항시 착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위반자에겐 장교 50달러, 사병 25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병원의 간호사나 작업병도 예외가 없었다. 자동차 수리공도 철모를 쓰고 차 밑으로 기어들어가야 했다. 군복 안에는 모직셔츠를 받쳐 입고 넥타이를 매야 했다. 패튼이 시도한 또 하나의 군기쇄신책은 시도 때도 없는 연설이었다. 그의 연설은 온갖 저속한 욕설과 험악한 말로 채워졌다. 욕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피’와 ‘내장’이었다. “독일군의 내장을 뽑아 기름을 짜서 윤활유로 사용하자” “피 묻은 내장을 기름걸레로 써라” 등. 패튼 스스로 자기 연설의 효과를 ‘피와 내장의 효과’라고 불렀다. 튀니지 전투에서 패튼은 자신에게 숨어 있던 장점을 보여주었다. 어떤 지도자라도 피해가기 쉽지 않은 인간 내면의 본성 중 하나가 편견이다. 누구나 지식의 불완전성과 자기 경험에서 오는 편견을 갖고 있다
오마 브래들리 장군의 회고에 의하면 패튼은 이런 한계를 극복했다. “비록 기병 출신이었지만 패튼은 보병들의 모습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평생 기병으로 살아온 그였지만 그는 잘 훈련된 보병의 진가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더 심한 편견은 인물에 대한 평가에서 나타난다. 더욱이 패튼처럼 자아도취에 빠져 사는 사람이라면 인간형에 대한 편견은 극도로 심한 편이다. 그러나 실전 상황에 이르렀을 때 패튼은 이 장벽도 넘어섰다. 1사단장 테리 앨런은 매우 신중하고 차분했다. 패튼이 좋아하지 않을 타입이었다. 유독 1사단에 독일 전투기의 공습이 잦았다. 사단장과 장교들은 적기의 공습에 대비해 본부 주변에 개인별로 꼼꼼히 참호를 파 두었다. 사단을 방문한 패튼은 참호를 보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이건 겁쟁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앨런 장군의 참호로 가더니 오줌을 누었다.
이처럼 공개적 모욕을 줄 정도로 패튼은 앨런을 싫어했다. 하지만 동시에 앨런의 진가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도 패튼이다. 앨런의 차분한 성격 탓에 대부분의 상급 지휘관들은 그가 무능하다고 생각했다. 시칠리아에서도 1사단이 혁혁한 공을 세우자 소심한 지휘관을 교체하면 더욱 굉장한 사단이 될 것이라 여긴 지휘부는 앨런을 해임했다. 당시 1사단 장병들이 그 소식을 듣고 모두 울었을 정도로 잘못된 결정이었다. 그런데 이 결정에 끝까지 반대했던 인물이 패튼이었다. 임용한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 - 괴짜 장군의 군기 잡기 ‘롬멜공포증’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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