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선거경제/복지미디어전쟁국제정치.경제민족/통일사회/사법군사/안보문화/스포츠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전체기사보기 교육/과학   고대사/근현대사   고향소식/해외동포   포토/해외토픽   자유게시판  
편집  2019.12.09 [18:02]
고대사/근현대사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항일지사냐 친일파냐 ‘필체는 알고 있다’
 
문화일보 기사입력 :  2009/02/28 [20:59]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밴드
<주말 포커스>
항일지사냐 친일파냐 ‘필체는 알고 있다’
글씨 크기·형태·유연성·속도서 큰 차이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3·1절 90주년을 맞아 항일지사와 친일파의 글씨를 치밀하게 분석한 책이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 항일지사와 친일파가 남긴 서예글씨와 간찰 등 묵적(墨跡)을 비교한 결과 글씨 크기와 형태, 유연성, 속도 등에서 현격한 차이가 발견된다는 것.

최근 출간된 ‘필적은 말한다’(중앙북스)의 저자 구본진 법무연수원 교수는 27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0여년간 항일지사의 글씨 600점과 친일파의 글씨 300점을 수집, 이를 분석한 결과 항일과 친일의 자취를 글씨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며 “항일지사와 친일파의 글씨는 서체, 행간, 자간, 형태, 크기, 그리고 글씨에서 느껴지는 풍모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강력부 검사 출신의 구 교수는 “한마디로 필적은 말을 한다”며 “이는 검사생활 20년, 글씨 수집 10년 동안 내 뇌리에 새겨진 말”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유묵(遺墨)의 진품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것과 유사하다”며 “수많은 살인사건을 수사한 경험이 유묵의 진품 여부를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구 교수에 따르면, 항일지사의 전형적인 글씨체는 작고, 정사각형 형태로 반듯하며, 유연하지 못하고, 각지고 힘찬 것이 많다. 글자 간격은 좁고, 행 간격은 넓으며, 규칙성이 두드러진다. 반면 친일파의 전형적인 글씨체는 크고, 좁고, 길며, 유연하고 아래로 길게 뻗치는 경우가 많다. 글자 간격이 넓고, 행 간격은 좁으며, 규칙성은 떨어진다. 특히 일부 친일파는 극도로 불안정한 필치를 보인다는 것.

구 교수는 “한마디로 항일지사의 글씨는 바름의 글씨요, 친일파의 글씨는 기이함의 글씨”라며 “항일지사의 전형적인 글씨체에는 안중근 나철 김구 이상룡 김창숙 민필호 박은식 곽종석 이붕해가 속하고, 친일파의 전형적인 글씨체에는 조민희 김대우 조중응 권갑중 윤영구가 속한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백범의 서풍(書風)에선 웅혼한 기상과 강인함, 철옹성 같은 기세, 웅장함이 느껴진다는 것. 반면 이완용의 글씨는 꾸밈이 많고, 가벼움이 무거움을 억누르며, 경박함이 미적 표현을 압도한다고 구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이어 “글씨는 가벼운 듯 무거워야 하는데 이완용의 글씨는 가벼움이 우세하고, 누워 있으며 비뚤다”며 “그래서 촘촘하게 들여다보면 단정치 못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친일파의 거두 박영효의 글씨는 어떨까. 둘 다 서예에서 일가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지만 글씨에선 판이한 모습을 보인다. 안중근처럼 강직한 필체인 안진경체를 따른 이승만은 외형적 꾸밈이나 필획의 교묘함보다는 선비적 기품을 잘 살리고 있다. 항일지사 필체의 전형적 특징을 보이며, 보수적이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또 글자의 세로 길이가 매우 긴데 “이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대중 앞에서도 자신감을 드러낼 줄 아는 사람임을 말해준다”고 구 교수는 설명했다. 이에 비해 박영효는 솜씨가 있지만 흐름이 매우 빠르고 선이 무너져 있다는 것이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9-02-28
 
||||||||||||||||||||||||
 
 
고종황제- 장례식 외 역사, 사건등 실황영상 2007.08.04 17:20 편안한 휴식처



고종 황제 장례식과...

고종황제


 
고종황제


고종황제
 
 
 
 
 
 
 
 
 

고종황제


고종황제
 
 

고종황제


고종과 순종.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가 입었던 붉은색 곤룡포 차림으로 1890년무렵의 모습이다. 아직 국호가 대한제국으로 바뀌기 전이라, 고종이 황제가 아니기 때문에 황룡포가 아닌 홍룡포 차림이다

고종황제와 신하들의 모습.


1910년 한일병탄 직후 덕수궁 석조전 앞에서 자리를 함께 한 조선총독부 고위관리들과 대한제국 황족들. 앞줄 가운데 모자를 벗은 사람이 고종 황제이고, 그 오른쪽이 순종, 고종의 왼쪽은 영친왕이고, 그 옆은 데라우치 초대 조선총독.

고종이 대한제국 초기 러시아 황제에게 보낸 국한문친서. 고종은 1909년 초 국외망명을 시도할 정도로 일제의 한국침략에 강경하게 맞선 군주였다.

 

일본 관리들이 쓰는 모자와 의상을 입고 궁궐을 나선 고종. 왕의 행차때 사용하는 일산을 받쳐들고 있지만 어가를 매고 있는 사람들은 일본인들이다. 1919년 촬영.

1919년 집무를 보기 위해 겨울옷을 입고 선원정에서 인정전으로 나서고 있는 고종황제의 모습
 

러시아 공사관 내 고종 황제 거실. 황제용 더블 베드-황태자용 싱글 베드-응접 세트가 전부였고, 옆 방에서 상궁 둘이 번갈아 기거하며 수발을 들었다.


고종이 파천해 집정할 당시의 러시아 공사관.

 

고종황제의 후궁 양씨(1882년생, 덕혜옹주의 생모).



엄황귀비. 명성황후의 상궁으로 있다가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고종황제를 모셨고, 이어 왕자 은(영친왕)을 낳았다. 1906년에 진명여학교를 설립, 한국 근대교육사업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권오창화백이 그린 명성황후 진영.



1903년 11월 29일자 [보스턴 선데이 포스트]지에 보도된 고종황제와 미국인 에밀리 브라운양 결혼 기사. [유일한 미국인 황후 어떻게 대관했는가]라는 제목으로 브라운양의 클로즈업된 모습과, 고종과 브라운 양이 일산(日傘)으로 가린 연(輦.임금의 수레)을 타고 궁을 나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대한문 앞을 지나고 있는 고종황제의 국상행렬.


고종황제 국장때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고종황제 국상 전날의 대한문 앞 모습.


1921년 고종황제 제사때의 모습. 중앙이 순종황제이다
 

고종황제의 장례식



러일전쟁시 일본군 경성에 진입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



조선물자를 일본으로 옮겨가기위해 들어온 화물선 (죽일놈들)
역사, 사건등 실황영상' 카테고리의 다른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민족신문
 
 
주간베스트
  개인정보취급방침광고/제휴 안내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대표전화 :010-6432-7771
Copyright ⓒ 2007 인터넷 민족신문. All rights reserved.
Contact baek43333@hanmail.net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