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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한국사람 솔직하지 않더라
 
한겨레 기사입력 :  2009/04/0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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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한국사람 솔직하지 않더라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미수다’ 대구 아가씨 캐서린
한겨레 권은중 기자
» 대구 홍보대사로 1년을 맞은 것을 계기로 만나본 <미녀들의 수다> 출연자 캐서린은 뜻밖에도 한국 방송의 시청률지상주의와 한국 사회의 편견을 잘근잘근 해부하는 날카로운 비판을 들려줬다. 대구 아주머니에 반해 대구를 고향으로 삼았다는 그는 대구 술 금복주마저 좋아한다고 한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무섭지만 정많은 홈스테이 주인 ‘한국엄마’
내게 감동줬던 대구서 할매 때까지 살래요
 
 
한국방송2텔레비전 인기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에서 구수하고 화통한 대구 아가씨 모습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뉴질랜드 처녀 캐서린 베일리(27)를 만나러 대구 계명대로 찾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대구에선 이미 만개했을 벚꽃을 만난다는 설렘에, 남자를 능가한다는 주량에 대구의 대표 안주 막창을 가장 좋아한다는 캐서린과 혹시 취중 인터뷰도 가능할까 즐거운 상상도 떠올렸다.

그러나 벚꽃이 활짝 핀 계명대 교정에서 만난 캐서린씨는 텔레비전에서 보던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체격이 당당해 보였던 화면과 달리, 키도 아주 크지 않았고 얼굴도 갸름했다. 평범한 얼굴도 큰바위 얼굴로 둔갑시킨다는 카메라의 착시 효과를 실감했다.

그러나 착시 효과는 외모만이 아니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신변잡기를 떠들던 ‘미수다’ 속 캐서린은 없었다. 그는 시청률에 목매 여성들의 섹시함만 강조하는 방송을 인터뷰 내내 비판했다. 또 내적인 만족보다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중시하는 한국 사람들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돈만 벌고 떠나면 그만이 아니라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비판을 한다는 캐서린과의 인터뷰는 ‘미녀의 수다’가 아니라 ‘미녀의 경고’에 가까웠다.

­실물과 화면이 다릅니다. 죄송합니다만 화면보다 체구가 작으시네요.

“많이 다르죠? 저는 사실 상당히 여성적인데 방송에선 터프하게 나와요. 방송에서 편집이 얼마나 중요하고 힘이 센지 알게 됐습니다.”

­편집을 많이 하나요?

“솔직히 말할게요. 미수다 녹화를 대여섯 시간을 합니다. 그런데 편집을 하면 우리가 한 중요한 말은 다 빠집니다. 제가 미수다를 1년 반 출연했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잘하고 싶었죠. 그런데 가보니까 피디나 작가들이 원하는 게 있습니다. 제작진은 ‘네가 성공하려면 이렇게 말해’라고 요구합니다. 원하는 이야기 아니면 편집에서 빼죠.”

­아무래도 방송을 하려면 편집은 불가피하지 않을까요?

“시청률 때문이죠. 한국 텔레비전은 시청률에 너무 민감합니다. 외국에서도 시청률 조사하지만 그냥 참고만 합니다. 그러니까 외국인 여성은 섹시해야 하고, 연애 이야기나 야한 이야기를 끌어내려 하는 거죠. 우리도 싫어해요. 미수다 출연자들 대부분 학생이거나 선생이에요. 다들 순진합니다. 코미디언이나 배우가 아니거든요. 그런 사람에게 압력을 주는 것은 물에 놀던 물고기를 사막에 데려다 놓는 것과 비슷한 거겠죠. 방송이라면 공익적인 잣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국 <비비시>(bbc)처럼 그런 기준이 명확해야죠.”

­그럼 미수다에서 말한 것처럼 막창을 좋아하시는 것도 아니에요?

“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2003년 한국 왔을 때 먹었지 지금은 잘 안 먹어요. 막창이라는 말을 제작진이 좋아해서 자꾸 하는 것뿐이죠.”

­그럼 대본도 있습니까?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캐서린이 방송에 대해 이렇게 할말이 많은 것은 그가 뉴질랜드에서 방송과 영화를 전공했고 한국에서도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주는 효과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그는 뉴질랜드에서 대학 재학중이던 2003년에 밤샘 작업이 많은 전공 특성상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어 생활비가 바닥나자, 대구에서 영어강사를 하는 어머니를 찾아왔다. 한국과의 첫 인연이었다.

­한국에서는 어떤 것을 공부하고 있습니까?

“학부에선 한국 문화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해요. 석사 공부는 집중이 필요한데 지난해 대구 홍보대사를 맡게 됐고 방송도 출연중이어서 일단 한 학기를 쉬고 있습니다.”

­대구 홍보대사를 1년 해보니 어떻던가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대구시를 알리거나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홍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구시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통역과 안내를 맡기도 합니다. 서울보다 외국인이 적은 대구에서 저처럼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이 있으면 대구를 찾는 외국인이 좀더 편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서울로 안 가고 대구에 정착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느 나라나 수도는 고향이라고 할 수 없죠. 제가 영국에서 자랐는데 런던이 고향이 되기는 어려웠습니다. 마음이 가는 곳이 고향이란 말이 있잖아요. 제게 감동을 준 사람이 있는 대구가 제 고향입니다. 서울은 공기도 나쁘고 사람도 억수로 많아서 못 살겠어요. 할매 때까지 대구에서 살 거예요.”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태어나 세계를 떠돌며 자란 캐서린이 대구를 고향으로 삼게 된 것은 대구에서 ‘제2의 어머니’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구에 정착한 캐서린은 돈을 벌어야 해 일을 하면서 한국말도 배우느라 처음에는 힘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몸이 아팠지만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비가 수백만원 든다는 소리에 버티다가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일이 벌어졌다. 그를 병원에 데려간 은인이 대구에서 처음 들어갔던 홈스테이 아주머니였다.

­대구 아주머니가 엄마가 되신거군요.

“절 살려주신 홈스테이 아줌마를 한국 엄마라고 불러요. 처음에는 너무 무뚝뚝했어요. 야단만 치고. 지금도 무뚝뚝하기는 마찬가지만 참 대단해요. 제가 힘들고 아프면 언제라도 달려와요. 속정 깊다고 하잖아요. 참 멋져요. 저도 한국 사람의 정이라는 것 배우고 싶어요.”

­‘정’이라는 말은 외국인들이 알기가 좀 어려운 단어일 텐데 잘 아시네요.

“저는 외국 사람이 한국에 정착하려면 꼭 홈스테이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홈스테이를 하면 한국 가정과 한국 사람 본모습을 볼 수 있죠. 한국 사람들 집 안하고 집 밖에서 표정부터 달라요.”

­어떻게 다르죠?

“한국 사람들 일본 사람 비판할 때 ‘겉 다르고 속 다르다’고 하죠. ‘웃으면서 칼로 찌른다’ 이런 말도 하는데 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 비판할 때도 똑같은 말을 해요. 그래서 1년도 안 돼 한국 떠나는 외국인이 많아요. 외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접근할 때 느끼는 벽이 있는데 홈스테이를 하면 그 벽을 넘어설 수 있죠. 집 안에서 얼굴 부대끼고 살면 한국 사람들을 깊게 이해할 수 있어요. 밖에서 살면 그 벽을 넘기 어렵죠.”

공부·돈에 목매고 ‘과시’를 행복이라 착각
일본에 겉과 속 다르다지만 한국도 같아

» ‘미수다’ 대구 아가씨 캐서린
캐서린도 이 벽을 쉽게 넘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2003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에서 부닥치는 각종 스트레스와 싸워야 했다는 것이다.

­공항에 도착해서 받은 한국의 첫인상은 어떠했나요?

“솔직히 어떻게 이런 데서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됐어요. 공기가 너무 나빴어요. 대구 공기가 서울보다 엄청 좋죠. 하지만 대구에서는 서양인이 많지 않아 저를 보는 시선이 고민거리였어요. 문화의 차이도 엄청났구요. 한국말도 못하고, 일은 해야 하니 엄청난 스트레스였죠. 그러니까 자동으로 병에 걸린 거죠. 다른 외국인들도 비슷해요.”

­극복한 비결이 있습니까?

“한국 친구들이 ‘고통을 참으면 어느 순간 시원해진다’ 그런 말을 많이 해줬죠. 침이나 부항이나 이런 거 하면 처음에는 고통스럽지만 점점 시원해지잖아요.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생각하면서 참았죠. 그랬더니 어느 순간 고통에서 벗어나고 한국 사회를 깊게 이해하는 계기가 왔어요. 저나 한국 사람이나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 깨달았고, 지금은 대구처럼 편한 곳이 없어요.”

한국 사회를 너무 잘 이해해서일까? 캐서린의 한국 사회 비판은 신랄했다. 영어강사로 유치원생부터 회사원까지 가르쳐봤던 그는 자신이 개띠여서 공격적이라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쓴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한국이 영어에 미쳐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교육열이 높은 것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공부를 안 하면 인생 성공할 수 없다 이렇게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토익 토플 공부하는 것은 인정하면서 미술 음악 공부는 인정 안 하죠. 배고팠던 시대의 추억이라고나 할까요. 지금 한국은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진짜 부자예요. 그런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돈 걱정을 해요.”

­그런 걸 보면 답답하겠어요?

“한국 친구들 보면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맞선 보고 결혼을 한다고 하죠. 또 다 쌍꺼풀 수술을 해요. 저는 무조건 말려요. 나중에 쌍꺼풀이 없는 게 유행하면 다시 수술할 건가요? 부자 나라지만 텅 비어 있는 삶이죠. 자기가 행복해야지 왜 남들의 눈치 보고 남들하고 비교하면서 사는지 이해가 안 돼요. 로봇처럼 살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매일 술 먹고 아픈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하죠. 슬퍼요. 정말.”

­한국 청소년들은 어떤가요?

“애들을 과외하면서 느낀 건데, 아버지가 없어요. 집안에서 아버지가 갖는 교육적 위치는 커요. 허용과 금지의 기준이 뭔지, 어른들과 애정 표현을 어떻게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죠. 그런데 한국 아이들에겐 아버지가 없어요. 밤에도 회사에 있죠. 그래서 아이들이 콤플렉스가 생기는 거예요. 자기가 가진 걸 못 보고 계속 밖에서 욕망을 갈구하죠. 그걸 물건과 음식으로 풀고, 집에 안 가고 거리에서 배회해요. 비만과 범죄가 늘죠. 가족이 흔들리면 나라가 흔들리는 거죠.

­서양은 그렇지 않습니까?

“서양도 1950년대까지는 일만 했어요. 남자들이 집에 안 가고, 술 마시고, 이혼율 높아지고, 결국 가정의 해체가 왔죠. 그래서 반성하고 5시에 칼퇴근을 시킨 거예요. 한국도 회식 같은 거 하면 안 돼요. 하려면 가족들 다 데리고 가야죠. 한국이 서양의 전철을 밟을지 극복하는 방향으로 갈지 갈림길에 서 있는 거죠. 늦기 전에 가정을 지키도록 한국 사회가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이런 부분에서 방송이 엄청 중요하죠. 엄청난 영향력이 있으니까요.”

­요즘 가족 해체를 다루는 ‘막장 드라마’를 혹시 보나요?

“아뇨. 저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요.”

­한국을 비판하는 말이 보도되면 악플에 시달릴지도 모릅니다.

“저는 서양인이니까 악플이 덜 한 편이죠. 일본 사람이나 중국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아마 난리가 날 거예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중국인 은동령씨가 미수다에서 ‘단오는 원래 중국에서 온 축제다’라고 말했다가 정말 끔찍한 악플에 시달렸어요. 일본 사람의 말 한마디에도 그렇죠. 은동령씨는 멜라민 파동 때 택시기사에게 ‘중국 사람들은 바퀴벌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서양인에게는 관대하면서 왜 같은 동양인들을 무시하는지 모르겠어요. 한국은 좀더 개방적이어야 합니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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