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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광복운동을 촉발한 순종황제 붕어(崩御)
 
김민수 기사입력 :  2009/06/1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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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대한광복운동을 촉발한 순종황제 붕어(崩御)



서양식 황제정장 차림의 순종황제

1874년 고종과 명성황후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1875년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황태자로 격상되었다.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일제와 친일매국노의 강박으로 고종이 강제로 제위에서 물러나자 이어 제위에 올라 연호를 융희(隆熙)라 하였다.

일제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한반도에서 다른 제국주의 열강 세력을 몰아내고 대한제국의 이른바 후견국을 자처하면서 대한 병탄의 발판을 공고히 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 안중근에 의해 하얼빈에서 저격당하였다.

1910년 일제는 순종에게 대한국을 불법 병탄하는 경술늑약에 공식적으로 서명할 것을 강요하였으나 순종은 조약 늑결에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으며, 총리대신 이완용이 이에 대신 서명하였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일제에 불법 병탄되었으며,순종황제는 1926년 붕어(崩御)하였다.


고종황제 國喪 당시의 순종황제<중앙이 순종황제이다>

6·10 대한광복운동은 1926년 6월 10일 대한제국의 2대 황제 순종의 인산(因山)일을 기해 일어난 3·1 대한광복운동을 잇는 거국적·범민족적인 대한광복운동으로,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그러나 일제는 3·1 대한광복운동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하여 철저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연희전문의 이병립, 박하균, 중앙고보의 이광호, 경성대학의 이천진, 천도교의 박내원, 권동진, 사회주의계의 권오설, 김단야, 이지탁, 인쇄 직공 민창식, 이용재는 10만장에 달하는 격문을 준비하여 순종의 상여가 지날 때 일제히 만세를 부르고 격문(檄文)을 살포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호응했다.
 
 

대한제국 선포 이전 왕세자시절의 순종<오른쪽>과 고종황제

격문의 내용은 "일본 제국주의 타도," "토지는 농민에게," "8시간 노동제 채택," "우리의 교육은 우리들 손에" 등이었다. 6월 10일 순종의 인산에 참가한 학생은 2만 4000여 명이었다. 군중의 호응으로 대한광복운동이 확대되었으나 조직 사이의 유대 결여,민족진영의 조직 약화,사회주의계열의 사전 체포 등으로 6·10 대한광복운동은 일제에 저지당하였다.

6·10 대한광복운동은 곧 전국으로 번져, 고창, 원산, 개성, 홍성, 평양, 강경, 대구, 공주 등지에서 대규모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천여 명이 체포, 투옥되었으며, 1927년 신간회·근우회의 조직과 1929년 11·3 대한광복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고종 황제 일가족 사진-중앙에 앉아 있는 노인이 고종황제이고 그뒤 군복차림의 소년이 일본에 볼모로 끌려갔던 영친왕이고 그 옆이 순종황제이고 그옆에 칼을 짚고 서있는 이가 의친왕이고 순종황제 앞에 앉아있는 아기가 덕혜옹주이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 황제유언
2006.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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