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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道는 어정쩡한 절충이 아니다/변희재
진정한 중도는 새로움과 단호함
 
동아일보 기사입력 :  2009/06/2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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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변희재]道는 어정쩡한 절충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제사 관련 책에는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 사이에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이 배치돼 있다. 밀에 대해 후학들은 ‘중도(道)’ 또는 ‘중용’이라는 평가를 한다. 실제로 밀은 자유방임시장의 원리를 인정했지만 현실로 존재한 19세기 자본주의의 폐단까지 옹호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그는 19세기 유럽 자본주의 아래서 나타난 사회적 불평등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몽상적 사회주의자로 돌아서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그의 발언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그는 현실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치열한 성찰을 통해 섬세하고도 점진적인 대안을 내고자 고민했다. 이러한 밀의 태도에 대해 마르크스는 “논리적 일관성 또는 실천적 가능성도 없이 좋은 것은 모두 끌어모은 잡탕”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나 밀은 어정쩡한 절충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진리라고 확신하는 것에 대해서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실천했으며 불완전한 진리에 대해서는 토론과 성찰을 통해 보완해나갔다. 그가 가장 위험하게 본 것은 군중심리에 야합하는 일이었다. 그는 영국의 한 유권자단체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받고는 “지역 주민의 이익을 위해서는 시간을 쓸 수 없다” “선거운동 비용을 한 푼도 쓰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놀랍게도 그는 이 조건을 지키고서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좌파 택시, 우파 택시는 없다

그는 잘못된 법과 관습이 개인을 억압하는 데 분개했다. 그렇다고 법질서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개인과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실천 방안을 찾아냈다. 그는 25세 때 만난 유부녀를 사랑했지만 관습을 깨뜨리지 않고 무려 20년을 기다려 그녀의 남편이 죽은 뒤 결혼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밀의 사상과 삶의 방식을 보고 후학들이 ‘중도’라는 표현을 쓴 것이지, 그 스스로 중도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는 열심히 공부했고 옳다고 믿는 바를 실천했을 뿐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중도 실용주의를 내걸고 있다. 이념으로 구분할 필요조차 없는 절대 다수의 선량한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뜻이라면 환영할 일이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와 김지하 시인도 중도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강 교수는 “진영(營)논리에서 벗어나 국민을 상대로 발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한민국 직업군(群) 중에서 정치적 발언을 가장 많이 하는 택시운전사의 견지에서 생각해 보자는 말도 했다. 노무현 정권 때든 이명박 정권 때든 민생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는 택시운전사를 놓고 좌파 택시와 우파 택시로 구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김 시인은 “중도는 좌도 아니고 가운데도 아니고 융합과 초월의 정도(道)”라며 중도의 역동성을 강조한다. 중도는 사안에 따라서 좌의 모습으로도 우의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도의 가치를 정부와 시민사회세력이 직접 실천하려면 남북이 치열하게 대치하고 좌우갈등이 극단화된 2009년 대한민국의 현실까지 고려해야 한다.

첫째, 중도는 선언이 아니다. 김 시인에 따르면 중도는 올바른 길이므로 중도를 선언한다는 건 “나는 올바르다”는 뜻 정도가 된다. 중도는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나 세력에 대해 제3자가 역사로서 평가해주는 것이다.
둘째, 중도는 대한민국 헌법과 법질서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한데, 전체 국민이 합의한 기준은 헌법과 법질서이다. 어떤 법이 잘못되었다면 정당한 법절차를 거쳐 개정하면 된다.

셋째, 중도는 이념이 아니라 태도이다. 중도는 좌와 우의 가운데 이념이 아니라 올바른 길을 찾아 나서기 위한 진지한 태도이다. 애국우파 진영 혹은 좌파 진영에서 실천하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반대파까지 최선을 다해 성실히 설득하려는 태도가 곧 중도라는 것이다.

진정한 중도는 새로움과 단호함

넷째, 중도는 곧 새로움이다. 김 시인은 ‘동아시아의 허브, 붉은악마, 한류, 디지털 신세대’ 등이 중도의 흐름을 불러왔다고 보고 있다. 남북보다는 몽골코리아 연합론이, 대기업 논란보다는 청년기업 활성화 방안이, 신문 방송 겸영보다는 젊은 영상세대 지원 방안이 주요 사회적 이슈가 되면 자연스럽게 중간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 중도는 단호함이다. 이념적으로 극단적이더라도 해당 정책에 절대 필요한 사람이라면 대중에게 욕먹을 각오를 하고 기용하는 것이 중도이다.

여섯째, 중도는 그 자체로 실용이다. 중도라는 단어가 정치적으로 오염되어 오히려 사회갈등을 더 격화시킨다면 과감하게 중도라는 단어를 폐기처분하는 것이 진짜 중도이다.

변희재 객원논설위원·실크로드ceo포럼 회장

pyein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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