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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축구대표팀도 김정운 지칭 '발걸음' 불러
<탈북자가 전하는 북한의 실상>
 
연합뉴스 기사입력 :  2009/07/0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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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축구대표팀도 김정운 지칭 '발걸음' 불러>
후계자 알리기 상당히 진행된 듯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 북한 축구대표팀이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전 때 종종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운을 가리키는 '김대장'을 따르자는 내용의 노래 '발걸음'을 부른 것으로 확인돼 불러 후계자를 알리는 북한의 작업이 전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지난 3일 북한 조선중앙tv가 방송한 44년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 축하 프로그램에서 대표팀의 박철진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비겨 본선 진출이 확정된 뒤 "경기를 마치고 숙소까지 오는 데는 한 30분 걸렸는데 그때는 격정이 너무 커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며 "그래서 '애국가',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발걸음', '그리움의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도 6일 이 프로그램 소식을 전하면서 "선수들은 외국경기에 나갈 때마다 노래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발걸음'을 불러 힘을 냈다"고 소개했다.





   '발걸음'은 후계자 김정운에 대한 첫 찬양가요로 북한 최고의 작곡가라는 보천보전자악단의 리종오가 작사와 작곡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3절로 이뤄진 '발걸음'은 '척척 척척척 발걸음/ 우리 김대장 발걸음' 식으로 김정운을 지칭하는 '김대장'의 표현이 매절에 들어가 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월 생일을 염두에 둔 '2월의 위업 받들어' 등의 표현으로 후계자 결정을 암시하고 있다.

   이 노래는 또 '앞으로 척척척/ 발걸음 발걸음 힘차게 한 번 구르면/ 온 나라 인민이 따라서 척척척' 등의 가사로 김정운을 중심으로 한 북한사회의 단결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온라인 북한 소식지 '열린북한통신'은 지난달 '평양 내부소식통'을 인용, 북한 내부에서 "김정운의 위대성과 그의 혁명 활동에 대한 집중 학습이 전 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소식지는 또 북한 당국은 김정운이 북한의 체육발전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하고 있다면서 "이번 월드컵축구 본선에 참가하게 된 것도 김정운의 체육부분에 대한 세심한 지도와 배려에 의해 이루어진 큰 성과"라고 선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jyh@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king21c/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9/07/06 16:5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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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가 전하는 북한의 실상>
北 민둥산에 세워진 선전 구호
(투먼=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 중국 투먼에서 바라본 북한 함경북도 회령 에 세워진 김정일 국방위원장 찬양 구호. 땔감과 식량 해결을 위해 정상까지 벌목과 개간이 이뤄진 민둥산이 나무가 우거진 중국 땅과 확연히 비교된다. 2009.6.28.  pjk@yna.co.kr

(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 "더 나빠질 것도, 기대할 것도 없으니 전쟁이 나든, 김정일 일가가 몰락하든 빨리 끝장이 나기를 바라는 게 북한사람들 심정입니다."
최근 60살의 노모와 20대 남동생과 함께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넘어 중국 땅을 밟은 김모(35)씨가 전한 북한의 실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참혹했다.

   장거리 로켓발사에 이어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국제사회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북한이 '선군정치'를 기치로 2012년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 누구도 이를 믿지 않고 있다고 김씨는 털어 놓았다.

   "한국 등에서 지원해주는 쌀은 모조리 군부대로 들어갑니다. 배급조차 끊겨 인민들은 강냉이 밥을 지어 겨우 끼니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앉아 기다리다 굶어 죽으나 전쟁이 나 죽으나 매한가지니 무슨 일이든 빨리 벌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지원되는 식량은 원산항에서 내려지자마자 어김없이 자강도 군수기지로 들어간다고 김씨는 전했다.

   "외부 세계를 속이기 위해 군부대 차량이 민간 번호판을 바꿔달고 군인들은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 입고 실어 나르지만 인민들에게 나눠지는 쌀은 한 톨도 없습니다. 후방 군부대에도 배급되지 않기는 매 한가지여서 민가의 가축이며 쌀 등을 빼앗아 갑니다. 식량난이 최고조에 달했던 1994년에는 사람도 잡아 먹었다는 얘기가 나돌았습니다"
유엔 등에서 확인차 나올 때는 배급 받는 장면을 '연출'하지만 감시단이 돌아가면 그 순간 배급이 중단된다는 것이 김씨의 전언이다.

   일터에 나가도 일감이 없고, 배급이 나오지 않은지도 오래됐다. 그럼에도 통제를 위해 출근을 엄격히 체크하기 때문에 밥벌이를 위해서는 뇌물을 주고 2--3일 휴가를 내 장사를 하거나 파지나 고철을 주워 팔아야 한다.

   농촌의 협동농장 역시 오래 전에 배급이 끊긴 대신 수천㎡의 땅을 떼어주고 식량을 해결하도록 하면서 한 달 2-3일 쉬는 날에는 온 가족이 이 밭을 가꾸는데 매달린다.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넉넉지 않은 비료 확보 경쟁을 하다 보니 비료 값이 쌀 값 수준까지 치솟았다.

   외신에 보도되는 평양 주민들의 '부유한 생활'에 대해 김씨는 "평양 주민 상당수가 외국 주재원으로 나가는데 할당된 달러만 바치면 얼마를 벌어와서 어떻게 쓰든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특히 군수품 공장 일꾼들에게는 매일 쌀과 고기는 물론 김치까지 나눠주고 있으니 평양은 북한에서는 별천지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탈북을 결심하게 된 것은 재일교포로 1960년대 북송선을 탔던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었다.

   초단파 라디오로 남한과 북한의 실상을 잘 알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임종을 앞두고 '북한은 더 이상 희망이 없으니 무슨 수를 쓰던 북한을 떠나라'는 말을 남겼다.

   원산에서 살던 김씨는 이때부터 접경지역인 두만강으로 가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감자를 훔쳐 먹고 물건을 훔쳐 장마당에 팔아 노자를 마련, 노모와 동생을 데리고 지난해 어렵사리 백두산 부근에 도착해 발전소 공사 돌격대에서 수개월을 일하며 기회를 봤다.

   돌격대 역시 대대장과 반장, 후방참모 같은 윗선에서 배급 식량을 빼돌리는 바람에 한 겨울에도 꽁꽁 언 보리밥 한 끼로 버텨야 했고 동상으로 퉁퉁부은 발 때문에 한동안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이렇게 사느니 잘못되면 차라리 죽는게 낫다'는 말로 탈북을 주저하는 노모를 모시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밤을 택해 탈북에 성공했다는 그는 "일만 하면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이제야 사람이 된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의 남은 소원은 한국에 가서 부지런히 돈을 벌어 북한에 남아 있는 여동생도 빼내오는 것이다.

   pjk@yna.co.kr
http;//http://blog.yonhapnews.co.kr/haohao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9/07/02 13:5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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