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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아찌아족(인도네시아 소수민족)에 문자 선물… "한글은 내 운명"
 
조선일보 기사입력 :  2009/08/2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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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이야기] 찌아찌아족(인도네시아 소수민족)에

문자 선물… "한글은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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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09.08.21 02:41

    ▲ 훈민정음학회 이기남(李基南) 이사장

    한글 보급하는 이기남 훈민정음학회 이사장
    일제강점 때 교사 아버지 한글 가르치다 면직당해
    건설업 승승장구하다가 어느날 문득 한글보급 작심
    "세계 문자 박물관 세울 것"

    1948년 6월 대구 중구 봉산동 대구초등학교 교정에 이 학교 6학년 50여명이 줄지어 섰다. 맨 앞줄 가운데 교장 선생님이 앉고, 그 옆에 교감과 담임 선생님이 앉았다. 담임교사는 눈매가 똘똘한 단발머리 소녀를 자기 옆에 앉혔다. 그 시절엔 6학년인데도 한글 읽기와 쓰기가 서툰 아이들이 많았다. 어려서 일본말만 배우다가 해방 후에야 한글을 익힌 탓이다. 소녀는 달랐다. 어려서부터 집에서 한글을 깨쳐 글을 술술 읽었다.

    이 소녀가 훈민정음학회 이기남(李基南·75) 이사장이다. 이 이사장은 최근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族)이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할 문자로 한글을 채택하는 데 기여한 '숨은 공신'이다. 찌아찌아족 학생들을 위한 한글 교재 '바하사 찌아찌아1'을 펴낸 서울대 언어학과 이호영(46) 교수는 "이번 일은 한글 세계화의 첫 성과"라며 "이 이사장의 재정적 도움이 없었다면 결실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이 한글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된 것은 아버지 원암(圓庵) 이규동(1905~1991) 선생 덕분이었다. 경북대 사범대 학장을 지낸 이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대구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몰래 한글을 가르치다 면직(免職)당했다.

    "아버지가 '비록 지금은 못 쓰지만 우리 말과 글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신문지에 '가나다'를 함께 쓰면서 아버지에게 한글을 배웠지요. 해방이 왔을 때 열한 살이었는데, 우리 말을 마음껏 쓸 수 있게 된다는 생각에 무척 들떴던 기억이 납니다."

    ▲ 이제 한글로 자신들의 언어를 기록할 수 있게 된 인도네시아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 어린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훈민정음학회 제공
    이 이사장은 1958년 경북대 사범대 가정교육과를 졸업한 뒤, 모교 부속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1960년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남편과 결혼했다. 남편을 따라 상경한 그는 건설업으로 재산을 모은 뒤 1980년대 중반 컴퓨터로 관심을 돌렸다.

    "지인이 갖고 있던 '개인용 컴퓨터'를 처음 보고 깜짝 놀랐어요. 문서 작성 등의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는 이 기계가 널리 쓰일 거라는 생각을 했지요. 화면에 나오는 언어가 영어뿐이기에 한글도 쓸 수 있냐고 물었더니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전부터 애정을 가지고 있던 한글과 관련된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는 '신명시스템즈'라는 회사를 차리고, 매킨토시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한글 서체 'sm폰트'를 개발했다. 매킨토시는 출판·인쇄 분야에서 주로 쓰인다.

    1993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 이사장은 2002년 아버지의 호를 따서 '원암문화재단'을 설립했다. 한글의 소중함을 강조했던 아버지의 뜻을 기리며 한글 세계화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선교사들을 개별적으로 후원했어요. 그분들을 만나러 네팔의 산간 동네, 인도네시아의 섬마을을 찾아가기도 했는데, 성과를 얻지 못했지요. 열정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더군요. 언어학 전문가들과 힘을 합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고향 대구 지역의 학자들을 만나 '문자가 없는 민족에게 한글을 보급하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이미 한글과 한국어를 연구하는 학회와 단체들이 있는데 굳이 또 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겠냐"고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이 이사장은 2007년 서울대 언어학과 김주원(53) 교수를 찾아갔다. 김 교수가 호응했다. 김 교수를 중심으로 뜻을 같이하는 학자들이 모였다. 그해 한글날(10월 9일) 훈민정음학회 창립식이 열렸다. 지난해에는 국제 학술대회도 열었다. 오는 10월에는 문자학을 다루는 국제 학술지 '스크립타(scripta)' 창간호를 발간할 예정이다.

    이 학회 총무이사를 맡은 서울대 이호영 교수는 "훈민정음학회는 '문자 없는 민족이 한글을 채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학회들과 구별된다"고 했다.

    이 이사장이 '한글 전파'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문자가 있어야 언어와 문화가 소멸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한글을 사용해서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할 수 있게 되면 소수민족들이 자기네의 고유한 역사와 전통을 기록할 수 있게 된다"며 "한글은 컴퓨터로 구현하기 편리한 데다 it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 소수민족이 역사를 기록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에 알맞다"고 했다.

    이 이사장의 다음 목표는 국내에 '세계 문자 박물관'을 세우는 것이다. 그는 "문자는 문화의 근간"이라며 "세계 문자의 기원을 밝힌 여러 자료를 집대성한 박물관을 만들면 전 세계 연구자들이 앞다퉈 한국을 찾지 않겠냐"고 했다.

    "한국은 힘으로 다른 나라의 유물을 빼앗거나 막대한 돈으로 사들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명확한 목적에 의해 창조된 문자를 가지고 있고요. 세계 문자 연구의 구심점이 될 박물관이 생긴다면, 한국이 최적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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