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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거 100년> 日 재평가 움직임 '꿈틀'
살아남은 자의 슬픔...백범이 단죄하고 싶어한 아들 안준생
 
연합뉴스 기사입력 :  2009/10/2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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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안중근 의거 배후로 고종 지목
안중근 의사의 동양 평화론
 
 
 
<안중근의거 100년> 日 재평가 움직임 '꿈틀'
암살자ㆍ사살자에서 과거사 해법의 열쇠로

(오사카=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의 유명 정치인을 쏴 죽인 테러리스트."
일본에서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인식은 존경받는 정치인에게 테러를 가한 암살범 정도의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이는 일본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안중근이 '암살자'(暗殺者) 혹은 '사살자'(射殺者)라는 꼬리표를 가진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의 일부 시민단체와 지식인들 사이에서 안중근을 재평가하려는 움직임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그 바탕에는 안 의사가 갖고 있던 동양평화사상에 대한 조명과 안 의사의 의거가 '한일합병'의 부당성을 증명하는 사건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日 역사교과서 속의 안중근 = 안 의사처럼 한국의 독립투사가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는 안 의사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인들에게 '거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토 히로부미는 하급 무사에서 총리대신까지 올라간 성공 신화를 가진 인물인 데다 일본 헌법을 기술하고 메이지 유신을 이끈 '근대화의 아버지'로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물론 안 의사에 대한 묘사는 하나같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암살자"라는 식의 부정적인 것들이다.

   교육출판의 중학교 교과서에는 "한국의 안중근이 총독부의 초대통감이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고 적혀 있으며 일본문교출판이 펴낸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는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암살자로 돼 있다"고 언급돼 있다.

   특이한 것은 비록 부정적인 단어와 함께 나오지만 안 의사의 의거 사실이 한국인들의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을 서술하는 부분과 함께 언급된다는 것이다. 한일합병의 부당성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는 셈이다.
일본서적이 펴낸 교과서의 경우 '한일합병'에 대한 설명이 10줄가량으로 짧은 중에도 절반가량을 할애해 안 의사 이야기와 함께 "일본의 침략에 대해 조선의 민중은 무기를 들고 각지에서 일어나 의병운동을 일으켜 저항했다"고 적었다.

  


◇꿈틀거리는 안중근 재평가 움직임 = 의거 100주년과 내년 한일합병 100주년을 앞둔 최근에는 안 의사를 다시 보려는 움직임도 지식인들 사이에서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다.

   한일 간 과거사 문제를 바로 알리려고 일본의 시민들과 학자들이 중심이 돼 발족한 '한국병합100년시민네트워크'(이하 시민네트워크)가 지난 3월 교토의 류코쿠(龍谷)대학에서 개최한 안 의사의 자료 전시회도 그런 움직임 중 하나다.

   이 전시회에서는 안 의사가 감옥에서 쓴 유묵(遺墨)과 처형 전 사진 등이 전시돼 일본 시민들을 만났다.

   전시회와 함께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안중근의 동양평화사상과 하얼빈 의거의 의미, '한일합병'의 부당성 등이 다뤄지며 안 의사에 대한 일본내 재평가 작업도 진행됐다.

   같은 단체가 지난 10일 교토에서 개최한 '한일합병 100년 전시회'에서도 안 의사의 사진자료는 관람객들로부터 가장 많은 관심을 모았다.

   전시회에서 만난 한 여대생은 "안중근(의사)에 대해서는 학창시절에 배워서 잘 알고 있었지만 전시회를 통해 한국의 입장에서 안 의사의 행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감상을 전했다.

  


◇안중근은 한일 과거사 해법의 '열쇠" = 안 의사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은 일찍이 안 의사의 정신에 감명을 받았던 일본 내 인사들의 이야기가 배경이 되고 있다.

   안 의사는 의거 후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을 일일이 열거하며 감옥 주위에 있던 일본인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했으며 죽음을 앞두고도 의연한 모습을 보이며 주위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줬었다.

   안 의사의 의거 당시 총알을 맞았던 남만주 철도의 간부 다나카 세이지로(田中靑次郞)는 훗날 "안중근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는 말을 남겼으며 당시 감옥을 감시하던 헌병 지바 도시지(千葉十七)는 안 의사의 인격에 감동을 받아 일본으로 돌아와 매일 안 의사의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난 3월 류코쿠 대학의 전시회에서 공개된 안 의사의 유묵을 보관하던 정심사(淨心寺)의 주지 마쓰다 가이쥰은 안 의사가 뤼순 감옥에 있을 당시 교화승으로 이곳에 파견됐다가 안 의사의 평화사상에 감동을 받아 유묵을 소중히 간직했다.

   시민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엄창준 리츠메이칸(정치학) 대학 교수는 "안 의사는 한국과 일본에서 공히 널리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정반대의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며 "그런 뜻에서 '한일합병'의 부당성을 증명해 줄 중요한 열쇠가 되는 인물이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일반 시민들에게 안 의사의 의거를 비롯해 100여년 전의 역사적 사실들을 제대로 알리는 일은 한일 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고 설명했다.

  
<사진 설명 = 안중근 의사에 대해 다루는 일본 역사 교과서들, 지난 10일 일본 교토의 류코쿠 대학에서 개최된 '한일병합 100년 사진전'에 전시된 안중근 의사의 사진, 지난 3월 일본 교토의 류코쿠(龍谷)대학에서 개최된 '안중근 유필, 관계자료전'에서 처음 공개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遺墨)(위부터)>
bkkim@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9/10/21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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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1909년 10월27일 촬영한 안중근 의사 가족.
부인 김아려 여사(왼쪽)와 아들 분도,준생의 모습이 담겨있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개최하는 안중근의사 의거·순국 100년 ‘안중근, 독립을 넘어 평화로’ 특별전에서 선보인다.전시회는 26일부터 내년 1월24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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