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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거 100년] 명성황후 시해 등 15가지 죄상 거론
나는 이래서 이토를 죽였다" 의사 아닌 장군, 블록경제 주창자"
 
연합뉴스 기사입력 :  2009/10/2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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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거 100년] 나는 이래서 이토를 죽였다

  • 연합뉴스

<※편집자주 = 오는 26일은 1909년 10월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지 꼭 10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날이다. 더불어 내년 3월26일은 안 의사가 순국한 지 100년이 되며, 8월29일에는 경술국치 100년을 맞이한다. 100년전 한반도를 둘러싸고 숨가쁘게 전개된 이런 역사적 흐름에서 안 의사의 의거는 어떤 의미를 지니며, 그 현장은 어떻게 변모했고, 의거 당시 상황은 어떠했으며, 우리 사회가 안 의사를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10회에 걸친 특집으로 마련한다.>


▲ 1909년 10월 20일, 이토 히로부미와 일행이 뤼순 이룡산(二龍山)에 올라 러시아군 전몰자의 무덤에 참배한 후, 산꼭대기에서 기념 촬영한 모습. 저격 6일 전이다. 처음 공개되는 사진으로 러일전쟁의 격전지인 203고지에서 촬영한 것이라고도 한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개최하는 안중근 특별전에 선보인다. / 연합뉴스

명성황후 시해 등 15가지 죄상 거론
“의사 아닌 장군, 블록경제 주창자"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26일 하얼빈 역두에서 한국침략의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총살ㆍ응징하였다.”

안중근 의거 96주년을 앞둔 지난 2005년 학술대회에서 한국 근대사 전공인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가 다소 흥분에 차서 했던 ’선언’이다. 그의 의거는 그만큼 통쾌한 일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안중근은 왜 이토를 총살ㆍ응징했을까?

안중근은 심문 과정에서 이토를 죽일 수밖에 없던 죄상으로 모두 15가지를 들었다.

그 첫번째와 두번째로 각각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고종 황제를 폐위시킨 죄를 거론한 것으로 보아 이 두 가지가 다른 무엇보다 안중근을 격분케 한 사건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명성황후 시해가 당시 조선인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안중근보다 4살 연상인 백범 김구에게서도 발견된다.

그의 회고록인 백범일지를 보면 곳곳에서 자신이 항일투쟁에 나서게 된 계기 중 하나가 국모(國母), 즉, 명성황후 시해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항일투쟁은 이에 대한 복수임을 주장하는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상황을 재현한 모형. 하얼빈 조선족 문화예술관 내에 마련된 안중근 의사 기념실에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안중근은 또한 이토가 정미7조약 등을 강제로 체결했으며,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했고, 정권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철도ㆍ광산과 산림ㆍ천택(川澤)을 강제로 탈취했고,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도 용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군대를 해산한 죄, 교육을 방해한 죄, 한국인의 외국 유학을 금지한 죄, 교과서를 압수해 불태워버린 죄,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를 속인 죄, 한국과 일본 사이에 싸움이 그치지 않아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 동양 평화를 파괴한 죄도 이토를 죽일 수밖에 없는 죄상 목록에 올렸다.

이런 죄상 목록은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중근은 일본 천황, 즉 당시 메이지(明治) 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孝明) 천황을 이토가 죽였다는 사실도 거론했다.

물론 안중근이 거론한 이토의 죄상 중 사실과 명백히 다른 것도 있고, 이토가 관여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경우도 있다.

어떻든 안중근 의거의 의의를 논할 때면, 학계건 일반이건 대체로 열 네번째, 즉, 동양평화를 파괴한 죄를 많이 주목한다. 이 항목은 나중에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고 형 집행을 기다리는 동안 집필한 ’동양평화론’이라는 논설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안중근을 가장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대표적인 역사가로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있다. 그는 안중근에 대한 호칭을 의사(義士)에서 ’장군’으로 바꿔야 하며, 그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은 세계 최초의 블록경제론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중근은 일본이 러일전쟁의 전리품으로 획득한 뤼순항을 중국에 돌려주고 이를 개방항구로 삼아 이곳에 동양평화회의 본부를 두고 은행을 설립하며, 또 3국의 주요 지방에 은행지점을 내어 공용화폐를 널리 보급하여 산업발전을 함께 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목을 주시하면서 이 교수는 “안중근이야말로 세계사적으로도 가장 앞서는 블록 경제론을 주창한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더불어 안중근이 일본 관동도독부 뤼순지방법원 법정에서 자신은 대한독립의군의 참모중장으로서 적장을 사살한 것이므로 자신에게 적용할 법은 일본제국은 물론이고, 대한제국이나 대청제국의 법도 아니며, 오로지 1899년 제1차 만국평화회의에서 정한 ’육전(陸戰)에서의 포로에 관한 법’이라고 주장한 점을 들어 안중근은 의사가 아닌 장군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물론 안중근에 대한 지나친 영웅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예컨대 소설 ’안중근 불멸’을 조선일보에 연재 중인 소설가 이문열(61)씨는 ▲일본 제국주의 ▲공화주의자 ▲민중주의자 ▲가톨릭 ▲혁명론자 ▲독립운동의 각 노선 ▲민족주의자라는 7가지 세력이 안중근의 진면목을 해쳤다고 주장한다.

그가 그리는 안중근이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그렇게 그려낸 안중근이 역사적 실체로서의 안중근에 근접할지 확실치는 않지만, 각 ’세력’이 그들의 입맛에 맞게 안중근을 ’변질’시킨 것은 아닌지 음미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심문에 응하는 안중근(오른쪽에서 네번째)>>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9/10/21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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