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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문 열어준 ‘고구려 역적’ 묘지 발견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등장하는 고구려 소장(小將) ‘요묘(饒苗)’.
 
문화일보 기사입력 :  2009/10/2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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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문 열어준 ‘고구려 역적’ 묘지 발견
김영관 관장, 묘지명 첫 공개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지난 2007년 12월 발견된 뒤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고구려 유민 고요묘 묘지’의 개석(덮개돌) 탁본. 김영관씨 제공
서기 668년 9월 평양성을 포위한 당나라군과 내통해 성문을 열어준 반역자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등장하는 고구려 소장(小將) ‘요묘(饒苗)’. 그는 이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현재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황제를 호위하고 궁정을 수비하는 종3품 고위 무관직인 좌령군(左領軍) 원외장군(員外將軍)에 올랐으나 673년 젊은 나이에 고구려 유민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고대사 연구자인 김영관 청계천문화관장은 지난 2007년 12월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서 새로 발견된 ‘대당고좌령군원외장군고요묘묘지(大唐故左領軍員外將軍高金+堯苗墓誌)’를 분석한 결과, 지석에 나오는 요동인(遼東人) 고요묘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요묘’가 동일 인물임을 확인했다고 21일 밝혔다. 김 관장에 따르면, 고구려인 가운데 ‘요(饒)’라는 성을 사용한 기록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삼국사기’의 인명표기 방식에 삼국 모두 왕성(王姓)을 가진 인물들은 성씨 표기 없이 이름만 기록된 예가 매우 흔하다는 점에서 고구려 소장 요묘는 고요묘일 가능성이 높다. ‘요’자가 각각 ‘배부르다’는 뜻의 ‘요(饒)’자와 ‘군대에서 쓰는 징’이라는 뜻의 ‘요(金+堯)’자로 다르지만 글자의 모양이 비슷한데다 발음(중국어)도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현재 시안의 비림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고요묘 묘지명은 지금까지 중국에서 알려진 고구려 유민 묘지명 중 20번째. 청석(靑石)으로 네모 반듯하게 만든 개석(蓋石·덮개돌·가로 57×세로 57×두께 7.5㎝)과 지석(誌石·가로 56.6×세로 56.4×두께 11.5㎝)이 한 세트를 이루고 있다. 지석에는 해서체로 1행 당 평균 15자씩 모두 173자가 음각돼 있다.

지석에는 특히 고요묘의 죽음에 대해, “집안의 대문에 붙어사는 여러 귀신들이 재앙을 내려 (673년 11월11일) 갑자기 사제(私第)에서 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김 관장은 “병사(病死)나 전사(戰死) 등 죽음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다른 묘지들과 달리 사실대로 밝힐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약 3만호(15만∼20만명)에 달했던 중국에 끌려왔던 고구려 유민이나 부흥운동세력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오는 24일 오후 2시 서강대에서 열리는 한국고대사탐구회(회장 이종욱) 월례발표회에서 이 묘지에 대해 소개하는 논문을 발표한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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