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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수용한 유방(劉邦)
끝까지 자기 자랑하다 죽은 항우(項羽)
 
[ 對중국 단파라디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기사입력 :  2009/12/3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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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수용한 유방(劉邦)
 | 2009-12-29 10:26:13 인쇄하기


▲ 한고조 유방(劉邦)
[soh] 한고조 유방은 가장 강한 세력이었던 항우를 제압하고 천하를 통일하였다. 유방이 통일 전쟁에 뛰어든 지 4년만의 일이었다. 드디어 낙양에 있는 남궁(南宮)에 술자리를 마련하고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열후(列侯)들과 장수들은 숨김없이 말해 주시오. 내가 천하를 갖게 된 까닭과 항씨(項氏)가 천하를 잃은 까닭은 무엇이오?’
 
이 말을 들은 고기(高起)와 왕릉(王陵)이 그럴 듯하게 대답하였다.
 
‘폐하께서는 사람을 부려서 성을 공격하고, 땅을 경략하고난 후 나누어 주어 천하와 더불어 그 이로움을 같이 하였지만 항우는 그렇지 아니하였습니다. 공로를 세운 사람이 있으면 그를 해치고 똑똑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의심하였으니, 이것이 그가 천하를 잃은 까닭입니다.’
 
훌륭한 대답이었다. 더 이상 유방을 추어주는 대답이 없을 듯하였다. 하지만 유방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공(公)은 그 하나는 아는데 그 둘은 모르고 있소. 무릇 궁전 안에서 주판을 움직이고, 천리 밖에서 벌어질 일을 결판 짓는 것에서는 내가 자방만 못하오.’
 
자방은 장량을 말하는 것이다. 이어서 말하였다.
 
‘국가의 속을 가득 채우고, 백성을 어루만지며 군량을 공급하고 양도(糧道)를 끊기지 않게 한 것에서는 내가 소하(蕭何)만 못하고, 백만의 무리를 연합하여 싸우면 꼭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는 것에서는 내가 한신만 못하오. 이 세 사람은 인걸(人傑)인데 나는 이들을 채용할 수 있었으니, 내가 천하를 얻게 된 이유이오. 하지만 항우에게는 범증 한사람이 있었지만 채용할 수 없었으니 이것이 나에게 패배한 까닭이요.’
 
유방은 자기와 자기의 상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유방이 진의 도읍인 함양에 들어갔을 때에 그 호화로움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곳에 머물러 살고 싶었지만 ‘겨우 부잣집 영감이 되고자 하느냐?’고 말하면서 물러나기를 권고한 장량과 번쾌의 충고를 들었다.
 
그러나, 항우는 홍문(鴻門)의 모임에서 유방에게서 좋은 구슬 한 쌍을 받고나서 유방을 죽여야 한다는 범증의 강력한 권고를 못 들은 체 했다.
 
범증은 개인적으로 항우가 아부(亞父)라고 높여 부르는 사람이지만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는 항우를 보고 유방이 보내온 옥두를 땅에 놓고 칼로 깨뜨려 버리고 떠났다. 떠나면서 항우와 유방을 평가하였다.
 
‘에이! 이 녀석은 함께 모의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구먼! 천하를 빼앗을 놈은 패공이고, 우리 편은 모두 그의 포로가 되겠군!’
 
항우는 초(楚) 지역 명문(名門) 항씨의 후계자였고 유방은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평민 출신이었지만, 항우는 결국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많고 강한 군사를 가지고도 해하에서 사면초가가 되어 도망하다 옛 부하의 쫓김을 받고 자살하였다. 무엇 때문일까? 유방이 말한 대로 능력 있는 사람을 수용할 수 있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이 이야기는 비록 2천 2백 년 전 중국에서 벌어진 이야기이고, 비록 유방은 그 후에 모든 것을 다 잘 처리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후대의 중국 사람들에게 중국을 하나라고 하는 인식을 심어 준 한(漢)왕조 고조의 면모를 보여, 중국을 만든 사람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비록 진(秦)이 전국칠웅을 통일하였지만 그 기간이야 겨우 15년이었고, 그 후에는 여전이 6국의 전통을 살리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한(漢)왕조가 건설되어 전∙후한 400년을 유지하면서 천하는 유씨(劉氏)의 천하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였다. 전∙후한이 끝난 다음에도 유비는 자기가 유씨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천하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였고, 오대에도 한(漢)을 내세운 왕조가 있었으며, 또 오늘날까지도 중국어를 한어(漢語)라고 하고 있으니, 중국을 만드는데 그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짐작할 수 있다.

[ 對중국 단파라디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끝까지 자기 자랑하다 죽은 항우(項羽)
 | 2009-12-22 13:19:01 인쇄하기


▲ 항우
[soh] 한(漢) 고조 유방을 말할 때면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항우(項羽)다. 그는 초(楚)의 귀족 출신이었고, 기원전 3세기에 중국 정치를 주도한 인물이며, 끝내 유방에게 패배하였던 인물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패왕별희(覇王別姬)’라고 하여 패왕이 예쁜 희첩(姬妾)과 이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영화, 연극, 경극 등으로 각색되어 오늘날에도 인기있는 이야기 거리이다. 여기서 패왕은 바로 초패왕 항우이며, 희첩은 그의 우(虞)라고 알려진 미인이었다.

자치통감에는 항우가 유방에게 쫓기어 해하(垓下)에 도착하였으나, 이미 한군(漢軍)에게 포위되니 800여 기(騎)를 데리고 포위를 뚫었지만 길을 잃었고, 농부가 그를 늪으로 들어가게 하였고, 겨우 이를 벗어나니 겨우 28기만 남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고 깨닫고, 마지막 용맹을 떨치려고 말하였다.

‘내가 군사를 일으킨 후 8년 동안 70여 번 전투를 했지만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오늘 통쾌하게 싸워 세 번을 이겨서 제군들로 하여금 나를 망하게 한 것이 하늘이지 싸움을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겠다.’

정말로 그는 적은 수의 군사를 이끌고 용감하게 싸워 이겼다. 그 뒤를 좇던 한의 장수 양희(楊喜)는 항우가 눈을 부릅뜨자 말을 타고 몇 리나 도망가버렸다. 그는 이제 부하들에게 자랑하였다. ‘어떠한가?’ 기병들이 모두 말하였다. ‘대왕의 말씀대로입니다.’ 정말로 싸움에서는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하늘이 자기를 망하게 한 것이라고 믿었다.

이윽고 항우가 오강(吳江)을 건널 즈음, 정장(亭長)은 배까지 준비해 놓고 강을 건너 강동(江東)에서 왕노릇을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를 거절하고, 옛날 자기의 부하였던 여마동(呂馬童)이 자기를 잡으려고 온 것을 알고 자기 목을 가져다가 출세하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목을 베어 죽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읽으면 항우는 참으로 멋진 대장부로 보이고, 속이기를 잘하는 유방보다 사나이다운 면모를 보이는 듯하다. 비록 그는 패자이기는 하지만 인간적인 심금을 울리기에 알맞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膾炙)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 국가를 만들려면 한 개인의 장기만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양자(揚子)는 그의 저서 법언(法言)에서 이 사건을 평론하였다.

‘한(漢)은 여러 정책을 다 하여 여러 힘을 다 하게 하였고, 초는 여러 정책을 싫어하여 자기 한 사람의 힘만 다하였던 것이다. 다른 사람을 다하게 하는 사람은 이기고, 스스로를 다하는 사람은 지는데, 하늘이 무슨 상관이랴?’

사마광은 항우가 진 이유를 그의 부도덕에 돌리고 있다. 의제(義帝)를 내 좇고 자립하였으며, 옛 것을 스승으로 삼지 않고 그 사사로운 지혜를 떨치려 하였으며, 힘으로 천하를 경영하고자 하였고, 죽으면서도 스스로에게 책임을 돌리려 하지 않고 하늘이 자기를 망쳤다고 외쳐 댔으니 어찌 잘못이 아닌가라고 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항우의 멋진 행동에 감동한다. 애마(愛馬)인 추(騶)를 자기에게 강동왕이 되라고 하면서 배를 준비해 준 정장에게 주었고, 차마 사랑하는 희첩 우미인과는 이별을 못하여 눈물을 흘렸으며, 자기 옛 부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었으니, 감동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은 필부(匹夫)의 용기이고, 필부의 행동이었지 천하를 구할 인물의 행동은 아니었다. 천하를 구할 인물은 참지 못할 것을 참을 수 있고,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힘으로 공로를 이루려고 하지 자기 혼자의 힘으로 업적을 세우려고 하지 않는다. 소인과 대인의 차이는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생각의 크기의 차이인 것이다.
 
[ 對중국 단파라디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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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와 유방 독서 메모

2009/10/21 13:16



복사 http://blog.naver.com/kwansooko/50074219695



두 사람(항우와 유방)이 봉기하기에 앞서 진시황의 행차를 각기 다른 곳에서 구경한 적이 있다. 화려하고 장엄한 진시황의 행차를 본 두 사람의 반응이다. 

먼저 항우는 "저 놈의 자리를 내가 빼앗아야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깜짝 놀란 숙부 항량이 항우의 입을 재빨리 틀어막으며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한편 유방은 "사내 대장부가 저 정도는 돼야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의 각기 다른 반응은 중요한 차이를 보여준다. 
유방은 현상을 인정할 줄 알았다. 
통일 제국의 황제인 진시황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유방은 이처럼 포용력 있고 유연했다. 
하지만 원한과 시기에 사로잡힌 항우의 반응은 자신의 상황을 좀처럼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 외고집과 폐쇄적인 기질을 반영한다. 
- 김영수 <난세에 답하다> (426쪽)

연전연패에 도망만 다니던 촌동네 건달 유방이 천하의 주인이 되고, 
유방과의 싸움에서 질 줄을 모르던 항우가 단 한번의 패배로 완전히 무너져버린 이유를 사마천 (또는 김영수)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늘만 원망했던 항우. 
그에게는 애당초 난세의 주인이 될 자질이 없었던 것일지 모른다. 

불평불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출처] 항우와 유방|작성자 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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