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에 빠진 유근일 칼럼
유근일씨는 김대중 고문과 함께 조선일보의 양대 산맥이다. 김대중 고문의 글이 포먼의 펀치와도 같은 중후함을 자랑한다면, 유근일 실장의 글은 검객을 연상시키는 예리함을 생명으로 한다. 그들의 이름은 대한민국 언론을 대표하며, 따라서 그들의 글 또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춰야 함은 물론 일정한 수준과 격을 유지하여야 한다. 5월 13일자 조선의 유근일 칼럼 "어떻게 되찾은 세상인데"는 그런 점에서 매우 유감이다. 이 글 전반부는 예의 날카로움과 직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글 후반부에서 갑자기 논리와 방향성을 잃고 삼천포에 빠져 버렸다. 이 칼럼이 보여 주는 오류와 곡필을 하나하나 짚어 보자.
제목부터 사고의 경직성과 우파 선동가적 모습을 노정하고 있다. "어떻게 되찾은 10년만의 대한민국"이라니 10년 좌파 정권이 나라를 팔아먹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들의 대북정책이 상당한 과속과 일방통행의 측면이 있고 이념과잉이 경제의 정체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나라를 빼앗기거나 팔아넘긴 수준은 아니었다. 더욱이 부패구조의 현저한 개선 등 나름의 성과를 인정해야 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좌파는 이상하게 생긴 괴물이거나 쳐부수어 없애야 할 공산정권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독재와 사회적 모순이 낳은 필연적 귀결로서 그 독재와 모순구조를 극복하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10년만에 대한민국을 되찾았다"는 선동적 표현을 서슴지 않는 것은 사실의 의도적 왜곡이거나 사고의 심각한 경직성을 보여주고 있음에 불과하다. 독자들에게 노무현 김대중 정부를 마치 김일성왕조에 버금가는 있어서는 안될 정부로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도록 암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흐름은 글 후반부에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이렇듯, 무임승차로 땡잡은 범집권측은 진짜 절실한 싸움을 회피하면서 땅 따먹기나 하고 있다." 진짜 절실한 싸움이란 무엇을 말함인가? 이 글 다른 곳에 그 해답의 단초가 마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반이명박 촛불 문화제를 통해 대중들의 투쟁에 불을 붙인다. 5.31에 전국 각지에서 투쟁을 폭발시켜 이 흐름으로 이명박 정부를 쓸어버리고 6.15에 민족대축전을 성사시킨다는 일부의 계획서는 이념인가 아닌가?" 아마도 그런 계획서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엎으려는 주사파와 같은 극렬 좌익분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안의 본질과 핵심이 아니다. 사회가 건강하다면, 정부가 일을 제대로 하고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는다면 그들 극좌세력은 숨쉴 공간이 없게 되고 종내에는 제풀에 질식사 하게 되어 있다. 반대로 그들의 계획이 실현되고 먹혀 들어간다면 그건 우리 사회가 심각히 병들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극도로 허약한 정부가 극좌의 온상이라는 말이며, 이것이 사안의 본질이자 핵심인 것이다.
따라서 진짜 절실한 싸움은 유근일이 주문하는 '이제나 저제나 기회를 엿보는 극좌세력과의 싸움'이 아니라 어떻게 10년만의 보수 정부를 '건강한 정부, 성공하는 정부'로 만드느냐의 싸움이어야만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유근일이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도 않을 뿐더러 진짜 절실한 싸움을 할 이유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유근일은 글 전반부에서 예의 날카로움으로 이명박 정부를 질타하고 있다. "(이명박은) 언행의 즉흥성, 경박성도 드러냈다. (중략). 이명박 진영의 이런 죽쑤기의 뿌리는 과연 무엇일까? (그 뿌리는) 한마디로 철학과 인문적 소양이 없는 실용주의, 몰가치적 실용주의라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를 '재주만 있으면 된다'로 잘못 해석한 것 같다. (중략). 일 잘하고 재주는 있지만 利를 위해선 그 어떤 구속력에도 얽매이지 않는 인물들. 이명박 정부와 보수에는 이런 유형의 인물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무원칙한 기회주의 보수로는 목숨을 던지는 좌파와 게임이 될 수 없다. 그들은 보신과 영달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자들일 뿐이다." 유근일은 그런 정신나간 이기적 보수라 하더라도 좌파보다는 덜 나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보수라면 수백만을 굶겨 죽이는 김일성부자와 다를게 무엇인가? 그가 만일 주사파가 등장한 역사적 환경을 알고 있다면, 10년 좌파정권이 출현한 이유를 반추한다면, 그의 주문과 결론은 달라졌어야 한다. 박근혜, 이회창에게 "우리 사회의 주전선이 어디 있는가"를 제대로 인식하여 좌파와의 '진짜 절실한 싸움'에 몰입할 것을 주문할 일이 아닌 것이다.
당연히 그의 예리한 필봉의 칼끝을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한 조건의 지적에 집중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말이란 참 묘한 구석이 있다. '그녀는 예쁘지만 머리가 비었어'라는 표현과 '그녀는 머리는 비었지만 참 예뻐'라는 표현은 완전히 내용이 다르다. 전자는 욕이지만 후자는 칭찬인 것이다. 유근일은 아마도 이런 효과를 의도적으로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부족함을 질타하고 있지만, 어느덧 글을 다 읽고 나면 이명박정부의 잘못에 대립각을 세우는 박근혜등을 나무라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5월 5일자 김대중고문의 칼럼과 근본적으로 궤를 같이한다. 정부가 잘못을 저지르든 말든, 나라가삼천포로 빠지든 말든 보수이니까, 좌파는 죽어도 싫으니까, 이명박 정부에 협력하라는 주문인 것이다. 사전 검열이 엄격했던 전두환 시절에도 조선의 정신은 나름대로 살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 필자는 조선의 이명박 감싸기의 진정한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수만 명의 국민들이 촛불을 드는 것은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건 방송의 과장보도 탓도 아니며, 좌파의 기획과 선동 때문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이명박의 졸속과 공명심을 탓하는 것이며, 정부를 믿지 못하는 불신에 기초한 것이다. 그 불신은 대선 기간 내내 보여주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화려한 말 바꾸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박근혜에게 "당의 구심점이 되어 달라"는 내용 없는 사탕발림이나 늘어놓으며 이 혼란을 미봉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는 수일이 지나지 않아 박근혜측을 비난하는 적반하장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운영의 묘안을 찾지 않고 땅따먹기에 열중하는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조선일보는 여론의 도도한 흐름을 의도적으로 거스르거나, 국민의 생각을 조선의 생각대로 이끌어 가겠다는 환상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명박 띄우기에 성공한 경험이, 그래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성공경험이 조선을 자만에 빠져 있게 해서는 안된다. 그건 나라에도 불행이지만, 조선일보에도 이로울 게 없다. 눈치와 지각이 있다면 민심의 참다운 흐름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서재영의 블로그 (http://blog.daum.net/ksmn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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