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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구걸말고 죽으라" 아들에 편지 안장군 모친
해군엔 ‘안중근 잠수함’이 있고 육본엔 ‘안중근 장군실’이 생긴다
 
[중앙일보] 기사입력 :  2010/03/1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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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장군은 살아 있다 [중앙일보]


2010.03.19 19:45 입력

해군엔 ‘안중근 잠수함’이 있고
육본엔 ‘안중근 장군실’이 생긴다
이젠 우리들 심장에서 되살릴 차례!

# 엿새 후인 26일은 안중근 장군 순국일이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이자 동양평화를 위협하던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후 현장에서 체포된 안 장군은 이듬해인 1910년 2월 14일 일제의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일본제국형법 제199조에 의거, 사형을 언도 받았다. 2월 7일 개시된 재판 이후 단 일주일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사형 언도 후 40일 만인 3월 26일 안 장군은 전격 처형됐다. 그만큼 일제는 바쁘고 급했다. 그 서두름과 초조함이 안 장군의 위력을 반증(反證)한다.

# 안 장군은 최후진술을 통해 끝까지 자신이 ‘대한의군 참모중장 겸 독립특파대장’의 신분이기에 일제 법정에서 재판 받는 것 자체가 원천무효임을 선언하고 전쟁포로로서 만국공법, 즉 국제법에 의해 재판 받아야 마땅함을 천명했다. 하지만 그는 죽고 사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장남의 사형 언도 소식을 들은 안 장군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역시 즉각 전갈을 보내 이렇게 당부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公憤)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실로 그 아들에 그 어머니였다.

# 3월 15일. 안 장군은 1909년 12월 13일부터 집필하기 시작한 자서전 『안응칠 역사』를 92일 만에 탈고했다. 연이어 『동양평화론』을 쓰기 시작했지만 너무나 급히 진행된 사형집행으로 인해 ‘서(序)’ 와 ‘전감(前鑑)’ 부분만 쓴 채 미완성으로 남았다. 안 장군은 사형선고일 이후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등 적잖은 유묵(遺墨)을 남겼다.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옴에도 안 장군은 그만큼 의연했다. 더구나 그의 유묵은 단순한 붓글씨가 아니다. 필묵으로 행한 또 다른 전쟁이었다.

# 3월 25일. 안 장군은 동생 정근과 공근을 마주한 자리에서 마지막 유언을 했다. “내가 죽은 뒤 내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뒀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100년이 되도록 안 장군의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통탄할 일이다.

# 3월 26일. 안 장군은 모친이 보낸 흰 명주 한복으로 갈아입고 형장으로 나갔다. 임형 직전 “나의 거사는 동양평화를 위해 결행한 것이므로 한·일 간에 화합하여 동양평화에 이바지하기 바란다”라고 말하고, 함께 ‘동양평화만세’를 외칠 것을 제의했지만 묵살됐다. 이에 안 장군은 몇 분간 묵도를 했다. 오전 10시4분쯤 안 장군의 목에 밧줄이 걸렸다. 의사가 안 장군의 절명(絶命)을 확인한 시각은 오전 10시15분이었다. 그날 오후 5시. 뤼순의 고등법원장 히라이시의 관사에서는 마나베 지방법원장, 미조부치 검찰관, 구리하라 형무소장, 미즈노 변호사 등 안 장군 재판 관련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음주와 가무를 곁들인 연회가 베풀어졌다. 안 장군의 죽음을 학수고대했다는 듯이.

# 육군은 육본 지휘부 회의실을 ‘안중근 장군실’로 새로 명명해 오는 25일 개관식을 한다. 안 장군이 순국 100년 만에 대한민국 육군의 최중심부에 자리 잡는 셈이다. 한편 해군엔 안중근함이 있다. 현대중공업에서 건조해 지난해 12월 1일 취항한 최신형 잠수함이다. 이렇게 장군은 되살아난다. 이제 우리의 심장에서 그를 살릴 차례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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