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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사 유해매장지 日 안다"···사료발굴 주력
`日, 안중근 수감시 경계강화' 문서발견
 
연합뉴스 기사입력 :  2010/03/2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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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구걸말고 죽으라" 아들에 편지 안장
"중국 청년들이여, 안중근을 닮아라!"
1909년 10월27일 촬영한 안중근 의사 가족.
 
 
<김 양 국가보훈처장 일문일답>
안중근 의사 등 독립운동가 관련자료 공개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김양 국가보훈처장이 22일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안중근 의사 및 독립투사들의 기록이 담긴 문서를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발굴, 공개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안 의사가 순국한 뤼순감옥을 관할하던 일제 행정기관인 관동도독부의 `정황보고 및 잡보' 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는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있던 것으로, 보훈처가 일본의 자료공개법 등을 활용해 전문가들과 함께 지난달 찾아내 복사해 국내로 가져온 것이다.   2010.3.22
jjaeck9@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 김 양 국가보훈처장은 22일 기자회견을 갖고 안중근 의사의 순국 전후의 상황을 담은 일제 행정기관의 외교문서와 안 의사에 대한 사형집행 명령기록 원문을 입수해 공개했다.

   김 처장은 이 자리에서 유해 행방을 포함해 안 의사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일본 정부의 성의있는 자세전환을 촉구하는 동시에 이 문제 해결 전에는 일왕의 방한을 반대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음은 김 보훈처장과의 문답을 간추린 것.

   --`관동도독부 정황보고' 문서 입수가 가지는 의미는.

   ▲우리가 그간 일본 정부에 안 의사 관련 자료를 수차례 요구했지만 자료가 없다고 답해왔는데 얼마나 무성의했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자료를 어떻게 입수했나.

   ▲공식채널로서 막혀서 비공식채널을 활용했다. 사학계의 권위자인 최서면 교수 등 학자들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 안 의사 유해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이다. 우리 공무원이 역사자료 직접 찾기는 어렵다.

   --일본의 외교사료관에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가.

   ▲일본 문서공개법에 의해 오래된 문서는 법적으로 공개되는데, 기밀자료는 승인을 받고 심사를 한다. 이번 자료는 기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해제된 것이다.

   --정부가 일본 정부에 공식적으로 안 의사 관련 자료를 요청할 계획은.

   ▲제가 부임해서 가장 먼저 한 게 그것이었다. 그리고 29일간의 뤼순 지역 발굴도 했다. 그때도 일본은 반응이 없었다.

   순국 100년이 지나고 당시 사진도 찍었었는데 사형 집행 뒤 유해를 어디에 어떤 식으로 매장했는지조차 협조를 못받고 있다. 우리가 촉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제 새로운 100년을 열어갈 시점이다. 일본도 아픈 역사를 감수하고 더 나은 100년을 펼쳐나가려면 정리할 건 해야한다.

   --새로 들어선 일본 정부가 전향적인 입장일텐데.

   ▲물론 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떼를 쓰는 듯한 모양은 좋지 않다. 우리의 자존심도 생각해야 한다.

   --안 의사 유해 문제 해결 전에는 일왕 방한을 반대했는데, 지금도 유효한가.

   ▲저는 국가보훈처장으로서 국가정체성과 애국심을 담당하고 있다. 정부 내 이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게 아니라 제 나름 생각에는 일본이 명성황후 시해부터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인정하자는 것이다. 일왕 방한 반대 생각은 변함없다.

   일본도 올해가 경술국치 100년이라는걸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여기서 일본의 자세 변화를 요청하는 것이다.

   --안 의사 유해발굴과 관련한 향후 계획은.

   ▲전문가를 더 확보해 유해발굴 노력을 계속하겠다. 안 의사 유해가 고국에 오기 전까지는 일본은 부담을 해소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사형집행하고 매장한 상태에서 뒷마무리를 안하는 건 우리의 숙제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부담이기도 하다.

   --일각에서 안중근 `장군'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 군에서는 매년 60명 가까이 장군(장성)이 배출된다. 큰 의의를 갖고 행동으로 옮긴 의사는 수십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다. 우리가 이제까지 의사라고 칭했던 분을 장군으로 칭하면 오히려 강등시키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의사라는 게 더 높은 칭호이며, 그렇게 호칭하는 것이 맞다.

   honeybee@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0/03/22 12: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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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안중근 수감 경계강화' 문서발견(종합)
안중근 의사 등 독립운동가 관련자료 공개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김양 국가보훈처장이 22일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안중근 의사 및 독립투사들의 기록이 담긴 문서를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발굴, 공개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안 의사가 순국한 뤼순감옥을 관할하던 일제 행정기관인 관동도독부의 `정황보고 및 잡보' 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는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있던 것으로, 보훈처가 일본의 자료공개법 등을 활용해 전문가들과 함께 지난달 찾아내 복사해 국내로 가져온 것이다.   2010.3.22
jjaeck9@yna.co.kr


보훈처, 日보고서ㆍ사형집행명령기록 등 확보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 안중근 의사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뤼순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일제가 감옥과 그 일대에 대한 경계를 대폭 강화했던 내용을 담은 일본 문서가 발견됐다.

   국가보훈처는 22일 안 의사가 순국한 뤼순감옥을 관할하던 일제 행정기관인 관동도독부의 `정황보고 및 잡보' 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는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있던 것으로, 보훈처가 일본의 자료공개법 등을 활용해 전문가들과 함께 지난달 찾아내 복사해 국내로 가져온 것이다.

   관동도독이 본국 외무대신에게 보고한 것으로 1909년 10~12월의 정황을 담은 `정황보고 및 잡보 4권'은 "하얼빈에서의 살인사건으로 입감한 한국인 9명은 엄정 격리할 필요가 있어 모두 독거구금했다"며 "피고사건의 중대함으로 인해 계호자의 선정 및 사건의 성질상 감방 내외를 엄중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적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이어 "감옥서 내에 임시법정을 설치했으므로 그들을 수용할 구치감의 사무 및 계호간수와 임시법정에 따라붙일 계호자도 선정해 단속 처우의 적실 및 심문사항의 비밀을 확보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뤼순감옥에 임시법정을 설치했다는 대목은 안 의사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범 이토'를 사살했다는 이유로 안 의사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일제가 시간을 끌 경우 일 수 있는 국제적인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보고서는 또 "이들의 일거일동에 주의해 특히 야간에는 수시로 간수로 하여금 그 행동을 비밀 정탐케 하는 등 야간경계는 종래의 감독자 외 간수 6명을 배치하던 것을 8명으로 증가하여 만일의 위험을 방지하는 데 힘썼다"고 했다.

   1910년 1~3월의 정황을 담은 `정황보고 및 잡보 5권'은 "살인 피고인 안중근 외 수명은...2월7일부터 14일까지 연일 법원에 출정하기 때문에 미리 위험을 우려해 압송마차를 설비함으로써 연도의 왕복을 경계했으며, 법정내에서 경호상의 단속도 실로 고심을 극하였다"고 보고했다.

   특히 "사형 확정 후에는 더욱 경계를 엄히 할 필요가 있었으며, 야근간수를 증가시켜 감옥 안팎과 부속관사 부근 일원을 날이 샐 때까지 순찰경비를 시켰다"며 "야간에는 가능한 한 간수의 외출을 제한해 비상시에 대비하게 하고 특히 일반 간수를 독려해 주야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했다"고 보고했다.

   이어 "다행히 본 사건이 종료되자 아무런 잘못이 없게 됐다"고 끝을 맺었다.

   일제가 안 의사 수감 이후 경계를 대폭 강화한 것은 우리 동포에 의한 유해 탈취를 예방하려는 의도와 함께 유해의 고국 안장으로 향후 안 의사 묘지가 성지화돼 항일운동의 본령으로 역할할 것을 우려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안 의사에 대한 사형집행 명령기록 원본도 발견됐다. 이 기록은 일제가 1910년 2월14일 안 의사에 대한 사형을 선고한 지 한 달 열흘 만인 3월24일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한 것으로 명령 이틀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이 명령기록에는 안 의사의 주소를 `한국 평안도 진남포'라고 쓰고 있으며, 직업(무직)과 이름(안응칠 안중근), 나이(33세), 죄명(살인범), 형명(사형), 판결언도(1910년 2월14일) 등이 명시돼 있다. 안응칠은 안 의사의 아명이다.

   보훈처는 안 의사에 대한 내용이 담긴 이 같은 자료를 포함한 `관동도독부 정황보고 및 잡보' 1~15권(1천884매)와 안 의사 수감시 증거품 목록 자료도 확보했다.

   관동도독부 정황보고 자료에는 안 의사를 포함해 228명의 독립운동가가 적시되어 있었고, 이 중 89명은 최초로 확인된 인물이라고 보훈처는 밝혔다.

   증거품 목록으로는 당시 러시아 측에서 발간했던 한자신문인 `원동보' 한 부와 이토 암살을 암시한 `동청철도 기차 발착시간표', 손가방 등이 적혀 있다.

   사형 직후 안 의사의 동생들이 유해를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이를 거절한 내용이 담긴 `두 동생의 유해 인도 요구에 대한 처리 경위 보고' 원문도 확보됐다.

   또 동생 안정근이 안 의사의 사진으로 5종의 엽서를 만들어 미국 하와이에 300매, 샌프란시스코에 500매를 보냈다는 기록도 사진과 함께 발견됐다.

   특히 안 의사의 사진 아래에 이토 히로부미의 사진을 붙여 만든 엽서도 있었다.

   일본감옥협회가 1910년 1월20일 발행한 감옥협회잡지에 안 의사를 `보통의 형사피고인이지만 국사범과 동격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내용도 나왔다.

   이와 함께 1906~1916년 기간에 뤼순감옥의 조선인 입감인원이 수록된 `일본감옥교회사' 자료도 확보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이번에 발굴된 자료는 이미 알려진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지만 일본정부가 관련 자료가 없다고 한 것이 허언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며 "일본 정부의 성의가 무엇보다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honeybee@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0/03/22 14:5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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