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함 침몰 후 줄곧 이어진 군 당국의 무원칙한 ‘비밀주의’가 실종자 가족은 물론 국민들의 불신과 의혹을 자초하고 있다.
사고 당시 정황에 대해 군사작전, 기밀 사안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숨기기에 급급하다가 무성한 의혹을 양산한 뒤에야 일부 정보를 ‘찔끔’ 공개하는 식의 원칙 없는 기밀주의에 대해 비난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천안함 침몰 7일째인 1일 합동참모본부는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천안함과 속초함, 해군 2함대사령부 간 오고 갔던 교신록의 일부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백령도 해병부대에서 열상감시장비(tod)로 촬영한 동영상 앞 부분을 공개했다.
교신록은 천안함 침몰 원인을 규명해 줄 핵심 단서로 여겨졌지만 일부나마 공개되기까지 군 당국의 행태는 오락가락 그 자체였다. 지난달 31일 오전까지만 해도 합참은 “공개할 수 있는 범위가 되는지 봐서 공개할 수 있으면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가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군사기밀이 포함된 교신록 공개는 곤란하다”며 비공개로 선회하기도 했다.
tod 동영상 공개를 놓고도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당초 tod 촬영 자체를 밝히지 않다가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떠밀리듯 일부 동영상을 공개했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이 승조원 휴대전화 통화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오후 9시16분쯤부터 천안함에 심상치 않은 조짐이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군 당국은 떠밀리듯 침몰 전후 동영상 일체를 공개했다.
불똥은 군이 가지고 있는 해군 전술자료처리체계(kntds)까지 튀고 있다. 피아 함정은 물론 항공기 궤적까지 한눈에 모두 식별할 수 있는 kntds는 천안함의 항적과 주변 해역 동향, 북한군 동향 등을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자료인 데다 2002년 제2연평해전 때도 공개한 전례가 있는데도 군은 아직까지 이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리고 있다.
군의 무원칙한 비밀주의는 천안함 침몰 직후 함정 바닥의 파공을 원인으로 꼽았다가 두 동강 났다고 수정하는 등 어설픈 초기 조사와 맞물리면서 북한 침공설과 오폭설, 정부 은폐설 등 갖가지 음모론과 유언비어를 양산하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이다.
김재홍 기자 h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