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신 교수가 군대 기피 목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국적을 취득한 것과는 정 반대의 맥락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박노자라는 인물이 있다. 박노자는 1973년생 러사아 태생의 유태인으로서 블라디미르 찌호노프라는 이름을 박노자라는 한국식으로 바꾸면서 2001년 귀화하였다. 그는 귀화 직후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한국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책을 출판한다. 이 책은 사회과학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로 오르며 그는 한국사회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신좌파 지식인의 위치에 올라선다.
박노자는 귀화 직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화적으로 한국을 보다 가깝게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고, ‘혈통적인 한국인이야말로 한국인이다’라는 통념에 저항 의식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문화적인 정체성을, 생득적인 사항이라기보다는 자유 선택의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한국인이기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쎄, 몇 천 명의 한국인들이 매년 해외 거주자가 되기를 선택하여 이민가는 마당에, 균형을 잡기 위해서 한 사람이라도 한국인이 되기를 선택하면 좋지 않습니까?”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은 귀화시험이 매우 까다로운 편이다. 역사와 국어 지식은 물론 섬세한 면접시험까지 거쳐야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국적 한국에 대한 충성 검증은 필수적이다. 특히 90년대 이후 대한민국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의 유학생과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대거 시험에 응시, 검증은 더욱 까다로와지고 있다. 이런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거친 이후 이들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법과 질서를 준수하며 나라의 번영을 위해 기여할 것을 선서합니다”라는 대한민국 국민 선서를 한 뒤 비로소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는 것이다.
충성 서약 뒤 대한민국 국적 취득 이후, 곧바로 충성 거부
박노자가 밝힌 대로라면 그는 한국 국적을 단지 자신의 선택 사항일 뿐이라며 국가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있다. 실제로 박노자는 시종일관 애국심을 부정하며, 대한민국의 정체성과는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즉 박노자가 대한민국 국적 취득을 위해 선서를 한 내용과는 시작부터 정 반대의 길로 갔다는 것이다. 이는 박경신과 비교해도 정 반대의 길이다.
“나는 외국의 군주, 주권자, 국가, 독립국 등에 대해 시민으로서의 일체의 충성 및 충절을 절대적, 전적으로 부인하고 포기하여, 국내외의 모든 적으로부터 미합중국의 헌법과 법률을 옹호하고 준수하며, 이에 대한 진정한 믿음과 충성을 가지며, 법이 요구할 때는 미합중국을 위하여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것이며, 법이 요구할 때는 미국 군대에서의 비전투 임무를 기꺼이 수행할 것이며, 법이 요구할 때는 민간인의 지시 하에 국가적인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주저함이 없이 또한 회피할 의도없이 자유로이 이러한 의무를 다하기로 이에 서약하는 바이니, 신이여 나를 도우소서“
이러한 미국에 대한 충성 서약문을 선언한 뒤 미국 국적을 취득한 박경신의 경우 광우병, 인터넷 등등 모든 사안마다 대한민국 정부를 집요하게 공격한 반면, 현재까지 박경신이 미국 정부를 비판한 적은 없다. 반미적인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면서도 교묘하게 미국 비판 관련 이슈는 피해가고 있다. 최소한 박경신은 자신의 미국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짓으로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론 박경신이 공개적으로 미국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면 미국의 애국심에 대한 절대적 가치로 볼 때 곧바로 미국 국적을 박탈당했을 것이다.
또한 박경신이 처음부터 친미의식을 갖고 미국인으로 변했던 반면, 박노자의 경우는 처음부터 비상식적인 수준의 친중적 행태를 보여왔던 차이 때문에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박노자의 글 중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가 대한민국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서 중화경제권으로 편입되는 것이라고 주장한 칼럼이었다. 좌파 계열의 레디앙이라는 인터넷매체에 실린 이 칼럼으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당원으로부터조차 비판을 받자 그는 결국 다음과 같은 해명글을 올렸다.
“제가 한반도가 중화권 안으로 흡입이 돼가는 것이 앞으로 10~20년 간 내지 그 이상에 걸치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보는 것이지 '좋은 일'로 본다든가 '긍정'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박노자가 이렇게 해명했지만, 그가 내세운 대한민국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중화경제권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시각 만큼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이렇듯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한국을 비하하면서 중국을 예찬하는 글을 기고해왔다.
중국의 독재와 인권탄압마저 사실 상 옹호하는 박노자의 친중적 행각
2009년 9월 15일자 한겨레신문에서도 박노자는 ‘나라 이미지를 높이려면’이라는 칼럼을 통해 아무런 대안없이 이명박 정부의 국제 홍보를 비판하며 “신장에서의 이슬람계 주민에 대한 박해 등 수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인도네시아나 이집트와 같은 이슬람 국가에서마저도 중국에 호감을 갖는 이들이 늘 50%를 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전쟁을 밥 먹듯이 해온 미국과 대조적으로 1979년 이후 전쟁을 삼가해온 중국의 평화 지향적 외교정책이 호감을 끈 것으로 이해된다”라는 상식 이하의 논리로 또 다시 중국을 예찬했다.
박노자의 눈에는 중국 정부의 티베트와 위구르 탄압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신좌파 논리를 펴는 그가 중국의 극심한 민주주의 탄압에 대해서 역시 상식 이하의 논리로 사실 상 이를 옹호하기까지 한다. 박노자는 자신의 한겨레 블로그에서 한 학생과 중국 독재 관련 논쟁을 한 내용을 소개시켜놓았다.
“지금 중국의 중산계층을 보시지요. 노동 운동가들과 손잡아 민주화 투쟁을 할 것 같습니까? 세계 공황으로 경제 성장이 멈추면 모를까 일단 지금으로서는 중국 민주화를 예견하기 불가합니다"라고 성의껏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너무나 절망적이다 싶은 어조로 ‘오호, 그러면 나로서 민주화 안될 중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라고 또 물었습니다. 제가 좀 어처구니가 없어 ‘글쎄, 안받아들이고 어찌 할 작정이신가요’라고 반문했지요. 그 학생이 뚜렷한 답이 없어 논쟁이 그걸로 그치고 말았는데, 그 뒤로는 그 학생이 양계초의 개명전제론과 1980년대의 신권위주의 논쟁으로 리포트를 내기로 했습니다”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모든 반민주적 억압을 확대 과장하여 비난해 댄 박노자에게 중국의 독재는 그냥 하나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서는 “박정희의 파시즘적 드라이브를 억제시킨 세력, 그리고 김대중 등 재야 지도자를 살린 세력이 바로 미국이란 것도 사실이죠. 민주주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재야’라는 균형추가 없다면 핵폭탄이나 만들려는 히틀러 숭배자를 말릴 하등의 견제 세력이 없을 것이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모든 민주화의 업적을 한국이 아닌 미국의 덕으로 돌렸다.
특히 박노자는 “중국 성장이 멈추면 여태까지 중국 시장에 편승하여 동반성장해온 자랑스러운 대한민국부터 박살날 것입니다. 동반성장에서 동반혁명으로 갈 것인가요? 그건 아직도 동화처럼 들리는데 일단 모든 게 세계 공황의 심도에 달려 있습니다”라며 여전히 대한민국을 중국의 운명에 종속시키려는 대중 선동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이 중국의 속국이 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신념에 가까운 것이다.
한국의 폭력, 성희롱만 노르웨이에 집중적으로 소개
이런 박노자는 노르웨이의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오슬로 대학의 홈페이지에는 그의 이름이 박노자가 아닌 ‘tikhonov vladimir로 표기되어있다. 1973년생으로 레닌그라드에서 출생했다고 밝힌 채 그의 국적 대한민국은 표기되어있지 않다. 또한 그의 개인 홈페이지에도 vladimir tikhonov (박노자 朴露子, Владимир Тихонов)로 한국명 박노자는 부기로만 표기되어있고, 역시 그의 국적 대한민국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오슬로 대학에서 그가 개설한 강좌는 ‘buddhism and military violence in colonial and early post-colonial korea, 1920s-1950s’ 즉, 식민지 시대의 한국에서의 불교와 군대 폭력이다. 이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자본과 노동’이란 강좌에서도 산업화 시대의 한국의 노동착취 문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박노자는 자신의 학과에서 한국학 관련 석사학위자를 배출했다며 다음과 같이 자랑스럽게 설명해놓기도 했다.
“ 별로 기쁜 일도 없는 눈과 어름과 어둠 속의 제 생활에서 요즘 대경사 하나 있었습니다. 저희 동아시아 석사 과정을 한국을 전공하는 학생 한 명이 드디어 졸업하여 아주 근사한 졸업논문 (석사학위논문)을 냈습니다. 논문의 주제는 한국의 직장내 성희롱이었는데, 저도 읽으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아직 심사가 다 완료되지 않아 뭐라 할 수 없지만 일단 제가 보기에는 국내 직장 성희롱 만연의 근본적 원인들 (여성을 보통 약자로 만드는 직장내 역학관계, 군 경험이 빚어내는 비하적 여성관, 실질적 예방 및 보호 장치의 미비 등등)을 아주 잘 밝혀낸 좋은 글인 듯합니다”
홈페이지와 박노자의 글로 확인된 내용만으로도 박노자는 노르웨이에서 한국인이 아닌 단지 한국학 전공자인 레닌그라드에서 출생한 블라디미르 찌하노프란 이름으로 활동하며, 식민지 시대의 한국의 군대 폭력, 한국의 노동착취, 한국의 성희롱 등 그가 자랑스럽게 충성하겠다고 서약하여 국민의 일원이 된 대한민국의 격을 실추시키는 작업만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박노자는 일본에서는 한국을 비하하며 한국에서는 친한파로 활동한 미즈노와 같이 이중적 행태를 보이는 인물은 아니다. 박노자는 노르웨이에서든 한국에서든 시종일관 한국을 비하하고 한국을 중국의 속국으로 규정하는 등 반 대한민국적 행태를 일관적으로 보여왔다. 특히 그는 고려대 경영학과의 김예슬씨가 자퇴하자 한겨레신문에 ‘고대 여학생의 동물농장 탈출’이라는 칼럼을 통해 한국의 대한민국 전체에 대해 독설을 퍼부었다.
“사회에 의해서 제어되지 않는 시장의 지배하에 사는 이들에게는 생존 자체가 영원히 불안해서 꿈까지 생각할 심적인 여유가 생길 리 없다. 그저 ‘빵’을 위해 앞만 보고 계속 달려야 할 뿐이다. 기업형 국가, 기업형 대학의 현실에서는 우리는 꿈을 빼앗긴 채 하루하루 단순 생존을 위해 악전고투해야 하는 ‘동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동물농장이 된 대학을 탈출해 ‘인간’으로서의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는 것은 이번 ‘대학 거부 사태’의 본질이 아니었는가? 약육강식의 정글이 된 사회에 대한 ‘거부’를 선언하지 않는 한 인간으로서의 본 면목을 되찾기 힘든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친노좌파의 백인 사대주의가 박노자라는 인물 탄생시켜
그러나 박노자 자신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수강한 바 있다. 박노자 스스로는 고려대학교라는 동물농장에서 김예슬처럼 탈출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박노자에 대해 한겨레신문 등 친노좌파 진영에서 영웅처럼 떠받드는 이유에 대해서 박노자 스스로 설명한 바가 있기도 하다.
“외국인은 한국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결국 두 가지, 기업체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면 영어 시장에 자신을 파는 것 뿐입니다. 그 영어 시장이란 희귀한 곳입니다. 얼굴만 하얗게 생겼으면 노르웨이 사람이라 해도 대환영입니다 (뭐, 사실 노르웨이인들의 영어 실력은 국내에서 準원어민으로 통할 만도 하지요..). 그런데 얼굴은 까맣게 생겼으면 아무리 토박이 뉴욕식 영어를 구사해도 환영을 받지 못하는 데다 많고요. "얼굴 장사"를 하나요?”
바로 친노좌파 진영의 뿌리깊은 백인 사대주의 사상이 박노자라는 인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박노자의 주장대로 흑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무차별적으로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한국을 비하하고, 심지어 중국의 속국이 되어야한다고 선동했으면 일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러시아 백인 박노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박경신의 미국 국적 문제가 터졌을 때 뉴욕한인회의 한 관계자는 “애국심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미국적 상식으로 만약 미국 국적을 버리고 다시 미국에 들어와서 미국을 비난하는 인사가 있다면 곧바로 추방을 당할 것이며, 박노자처럼 미국 국적을 취득한 뒤 미국을 짓밟다고 다녔다간 역시 곧바로 국적을 박탈당할 것”이라 미국과 한국의 차이를 설명한 바 있다. 박노자는 대한민국이 과도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빠져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선동하지만, 대한민국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제대로 살아있었다면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 지식인 박노자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