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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옥균과 전 봉준
또다시 짓밟히고 말것인가?
 
김기백칼럼 기사입력 :  2008/05/25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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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글은 민신발행인이 어렵사리 인터넷에 막 입문한지 1년이 채안된, 지난 2001년 2월에 2편으로 나누어 쓴글이나, 굳이 일자 일획을 고치지 않아도 아직도 그대로 유효하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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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균

ㅡ김 옥균과 전 봉준-
 
또다시 짓밟히고 말것인가?



이번 여행중에 열차간에서 우연히 누가 보다가 놓고간 일간지에서 대만출신으로 일본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진순신이라는 작가의 대하소설 청일전쟁[원제:강은 흐르지않고:도서출판 우석;1995]이라는 책에 대해 서울대 규장각 특별연구원 으로 재직중인 한명기라는 분의 書評을 읽었고, 아직 그 책을 구해보지못한 상태에서 이글을 쓴다.

서평만으로도 그책은 痛恨으로 점철된 우리의근대사와 겨레의 현실과 앞날에 관심을 가진이라면 필독해야할 책으로 믿어지기에,이처럼   성급하게 서두르는것이다.
 
▲ 청일전쟁은 두 나라뿐 아니라 구미 열강에도 큰 관심사였다. 당시 서울에 살고 있던 외국인들이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술렁이고 있다. 출처 : 조선일보.2004.05.13



1894년 청일전쟁당시 청나라 주력함의 크기가 이미7000톤에 달했다는 사실 (100년도 더지난 오늘의 한국 해군의 주력 구축 함이 고작4000톤규모)과 그 청국 주력함이 막상 일본함대와 교전을 할 당시에는 주포의 포 탄이 겨우 3발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서평자의 소감이 서두이기는하다. (당시 청국함대가 그토록 허우대만 거창한 빈껍질 상태였던것은  청나라를 결정적으로 망친 서태후의  호화.사치벽을 만족시키느라고, 국고를 엄청나게 탕진한것이 주 원인이라고 지목하는것이 공통된 정설이다)
 
▲   충청도 풍도 앞바다에서 청나라 해군을 기습 공격한 일본군은 이어 경기도 성환 전투에서도 대승을 거두었다. 그림은 청·일 양국 군대의 성환 전투 장면을 묘사한 당시 프랑스 한 신문의 삽화.
출처 : 조선일보.2004.05.13


▲      흥선대원군 이하응

그 대만작가가 쓴 소설의 내용중에 김 옥균 .대원군.전 봉준등이 이미 기울어가는 조선의 운명을 놓고 고뇌하는 모습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으며 이홍장과 이등박문이 조선이라는 땅을 서로 먹기위해 벌이는 노회한 대결도 흥미진진하게 펼쳐내고 있다한다.
 
▲   일본총리 이토 히로부미
출처 : 조선일보.2004.5.06 


그러나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할 사실은, 1884년갑신정변 실패후 일본으로 망명한 김 옥균이 나름으로는 국가와민족을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일본의 실력자 이토와 청국의 실력자 이 홍장을 만나 조선의 장래를 놓고 일대담판을 벌이려 했으나, 그들은 김 옥균을 귀찮게 생각했을 뿐 만나주려하지 않았으며, 혼자만의 착각과 짝사랑에서 깨어나지 못한 김 옥균이 이홍장을 만난다고 나서다가 끝내는, 이국땅에서 동족의 흉탄에 암살되는 비극적 종 말을 고하게 되는것은 결코 소설이 아니라 우리모두가 익히아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그 진순신이라는 대만작가는 말하기를 "김 옥균은 이 홍 장이나 이토 히로부미같은 자들을 만나려고 애쓰지말고 전 봉준 을 만났어야 했다"고 나지막히 말하고 있다지 않은가?
▲    동학농민운동 기록화 


한국인도 아닌 대만 사람 그것도 100년도 더지난 오늘의 우리와 같은 시대를 숨쉬고 있는 이웃나라 사람이 말이다.

아아! 서평자와 더불어 필자또한 탄식한다! 통재 통재라!! 어찌하여 이땅에는 아직도 이국의 한소설가 만큼의 통찰력을 지닌자도 없는가?

이 보다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통렬하고도 명쾌한 지적이 또 있는가?

100년전과 오늘의 형세가 기막히게도 판박이인 오늘 이땅의 지도 자들은 100년전의 김 옥균처럼 미국과 일본과 중국의 실력자들을 때로 혈안이 되어 때로는 황망히 또 때로는 전전긍긍하며 찾아뵙기에 급급하 고 있는것또한 김 옥균의 행색과 얼마나 다른것인가?

나는 다시한번 분명히 말한다 남쪽의 대통령이 북의 김정일을 만나도 지금처럼 형식적으로 서로가 겹겹이 복선을 깔고 만나서는 안된다 .


북쪽의 김 정일이 비록 100년전의 전 봉준처럼 진정한 민중의 지도자는 아님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는 부시나.모리나.장쩌민과는 비교 될수없는 우리의 동족이며, 북한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대표하는 현실적 통치자이며, 그 비정상적 체제가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되더라도 북녘땅과 인민 대중은 우리와 더불어 자손만대를 같이할 혈육이기 때문에 그를 예우해야하는것이며, 그와 더불어 겨레의 존엄과 긍지를 회복할 일대계책을 가장 진지하게 의논 해야하는것이다.

단기4334[서기2001]년 2월19일

좌우를 뛰어넘는 민족주의자들의 모임
_일본을 경계하는 한국인회의_
김 기백
02]447-1986
홈페이지:www.seoulhub.net/g01.htm
e메일baek43333@hanmail.net

*관련 후속글을 한 두편정도 더 쓸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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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과김옥균[2] -
또다시 짓밟히고 말것인가?


▲ 고종보다 흥선대원군이 낫다고 생각한 김옥균에게 개화는 자주요 독립이었다. 김옥균의 암살 장면을 그린 그림.(사진/ 한겨레)
   



김 옥균의 혁명동지이자 철종의 부마였던 금릉위 박영효는 훗날 김 옥균을 회고하며 평 하기를 그는 才勝薄德[뛰어난 재주에 비해 덕이부족함]했던 인물 이었다고 했다.

이경우에서의 덕이란 단순히 포용력이나 스케일만을 가리키는 것이아니라 지혜까지도 포함될수 있다는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재주와 스케일에 있어서는 김 옥균이 당대의 누구에게도 손색이 없다할만 했으나,재주나 스케일이 곧 지혜까지도 의미 하는것은 아닌것이다.

김 옥균이 진실로 지혜와 덕을 갖춘 사람이었다면, 하필 일본에 의탁하여 정변을 꿈꾸다가 실패하고서도 짝사랑의 미망에서 끝내 깨어나지 못하여,그것도 일개 망명객의 신분으로 이토 히로 부미나 이 홍장을만나 조국의 운명을 놓고 담판을 벌이려 하기보다, 전 봉준을 만나 막말로 깨질때 깨지더라도 외세와의 한판 승부, 결사 항전의 방책을 강구했어야 하는것이다.
▲ 1900년, 일부에서 중국 최고의 외교관이라 생각했던 이홍장(li hung chang) 


痛哉 ,痛哉라!!

100년이지난 오늘까지도 김 옥균의 오류와실패를 아파하고 슬퍼 하는것이 어찌 단지 김 옥균의 고혼을 위로하기 위한것이겠는가?

오늘 또다시 100년전과 흡사한 정세가 되풀이됨에도,이땅의 무수한 재주있는 지도층이 한치도 어김없이 김 옥균의 전철을 따르고 있으니,어찌 아프지 아니하며 슬프지 아니하랴!!

역사에서 배울줄 모른 민족은 또다시 역사로 부터 무서운 앙갚음을 당하고야 말지않겠는가?


단기4334[서기 2001]년 2월28일

좌우를 뛰어넘는 민족주의자들의 모임
_일본을 경계하는 한국인회의-
김 기백 02]447-1986
홈페이지:www.seoulhub.net/g0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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