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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동해 길 뚫어라”… 나진행 도로·철도 개발 ‘올인’
‘동북 4성’ 우려 커지는 북·중 접경 지역을 가다
 
중앙선데이 기사입력 :  2010/08/0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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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실험·천안함에도 중국이 북한 내칠 수 없는건…

 

중 “동해 길 뚫어라”… 나진행 도로·철도 개발 ‘올인’


2010.08.07 12:48 입력 / 2010.08.07 12:54 수정

‘동북 4성’ 우려 커지는 북·중 접경 지역을 가다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중국 정부는 2004년 동북 3성 개발을 위해 3종5횡을 내용으로 하는 동북 진흥 계획을 발표했다. 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을 대대적으로 개발하는 계획이다. 2009년엔 북한 접경 일대를 개발하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 그래픽은 통일연구원 권영경 박사와 옌볜대 경제관리학원 윤승헌 교수의 발표문 내용을 참고해 그린 것이다.

속초항에서 뉴동춘호에 실려 17시간 290해리(540㎞)를 동북쪽으로 오르면 러시아 항구 자루비노가 나타난다. 한적한 어촌. 허름한 러시아 버스에 올라타 1시간20분쯤 60여㎞ 만주 벌판을 달리면 러·중 국경이다. 간이 건물 같은 러시아 세관을 지나자 4층 쌍둥이 현대식 건물이 불쑥 나타난다. 중국의 창링쯔(長嶺子)세관. 북한과 러시아에 막혀 진출할 곳도 없는 이곳에 왜 이리 큰 세관일까.
북한을 뚫고 동해로 진출하려는 중국의 창날이다. 창의 몸통 쪽엔 훈춘과 그 안으로 길게 뻗은 창지투(長吉圖)개발구가 있고 그 뒤엔 동북 3성의 거대한 힘이 있다. 중국 동북지역의 역동성 앞에 놓인 초라한 북한. 북한이 동북 4성(省)이 돼 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만하다. 남북물류포럼(회장 김영윤) 조·중 접경지역 시찰단의 일원으로 현지를 다녀왔다.

고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께인 2007년 12월 25일. 북한 최북단 국경 도시 남양과 마주한 중국의 투먼에서 회의가 열렸다. 리중원(李忠文) 시위원회 상무 부서기를 대표로 한 투먼시가 자기보다 덩치가 한참 큰 선양 철도국, 북한 청진 철도국, 러시아 극동 철도국을 한데 끌어 모았다. 교통연구원의 안병민 박사는 “문산보다 작은 투먼시가 남북 철도 운행회담을 주재한 격”이라고 했다.

투먼은 계속 움직였다. 한 달이 멀다 하고 북한과 접촉했다. 그리고 2008년 5월 30일 ‘투먼~남양~하산 간 국제철도화물운송 협의서’가 조인됐다. 이후에도 중국 대표단은 계속 북한 철도국과 실무회담을 했다. 남북관계가 단절로 치닫던 시기 진행된 북·중 회의들은 더 큰 설계를 위한 기초 작업, 즉 동해의 나진항으로 진출하기 위한 은밀한 준비였다. 중국옌볜대 경제관리학원 윤승현 교수는 동해 진출을 ‘변경을 개방하여 바다로 향하자는 지린성의 오랜 숙원’이라고 표현했다.

<1> 훈춘시 경제 합작국 2층에 있는 훈춘개발구의 800대1 모형. 개성공단의 8배에 가까운 24㎢의 방대한 터를 4개 구역으로 나눠 개발한다. <2> 중국 사타자 세관에서 찍은 사진. 트럭이 물건을 싣고 다리를 건너 경원으로 향하고 있다. 멀리 산에 북한의 다락밭이 보인다. 2008년 사진이지만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고 제공자 안병민 박사(교통연구원)는 말했다. <3> 장길도 개발구의 전초인 옌지시. 고층 건물과 대형 백화점이 들어선 옌지에 10여 년 전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사진은 시내 중심가. 안성규 기자

오랜 물밑 작업 끝에 2009년 8월 30일 중국 국무원은 동북 지역 개발의 기념비적 결정인 ‘창지투 개발개방선도구계획’을 발표한다. 창지투는 지린성의 창춘(長春)·지린(吉林)·투먼(圖門)의 앞글자를 딴 중국 발음. ‘훈춘을 창구로, 옌(지)·룽(징)·투(먼)을 전초로, 창춘·지린을 배후로 하는 계획’이라는 게 현지 설명이다.

7월 20일 방문한 훈춘시는 창구답게 공사가 한창이었다. 21일 훈춘시 경제합작국을 찾았다. 깨끗한 건물 2층 전시관에서 시의 비전이 화려했다. 800대1 모형에 불을 켜자 총규모 24㎢의 훈춘 개발구를 채울 내용들이 나타난다. 개성공단(3.3㎢)보다 여덟 배쯤 넓은 터에 상업·무역, 관광·쇼핑 등 4개 구역을 조성해 10년 동안 개발한다. 합작구 측은 “이미 민간회사가 100억 위안을 투자해 상업·무역구역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 벽에는 장쩌민·주룽지·후진타오 등 전·현직 지도부의 방문 사진들이 죽 걸려 있다.

훈춘 개발의 모체인 창지투 계획은 당연히 더 규모가 크다. 창지투 계획에는 ‘창춘·지린시, 옌볜조선족자치주 등 7만3000㎢, 지린성의 39%를 ▶1단계 2012년까지 경제 규모를 훈춘시는 네 배, 창지투는 두 배로 키우며 ▶2단계 2020년까지 두만강 지역에 돌파구를 만들고 창지투 경제 규모를 네 배로 키운다’는 내용이 있다. 세부 계획은 ‘선도구 전망계획요강 100대 사업’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창지투도 더 큰 그림의 일부다. 중국 국무원은 2004년 동북3성 개발을 위한 ‘3종(從)5횡(橫) 계획’을 발표했다. 3종 a는 다롄~헤이룽장성을 연결하는 동변도 철도 건설. 2008년 12월 완공됐다. b는 다롄항과 동북3성의 주요 도시 선양~창춘~하얼빈과 연결하는 공업 벨트 건설. c는 동북3성과 네이멍구를 자원물류구역으로 연결하는 것. 5횡은 공업회랑 건설, 개발구 건설 등 5개의 사업인데 창지투는 그중 5횡-2사업이다. 중국이 동북지역에 그리는 그림은 엄청나다.

문제는 출구. 북한과 러시아에 막힌 동북3성의 사실상 유일한 출구는 랴오닝성의 다롄항이다. 출로가 막히면 성장도 막힌다. 지린성의 경우 2008년 수출입 총액은 133억4100만 위안, 전국의 0.52%다. 대외무역의존도 14.4%로 전국 평균 59.2%의 4분의 1이다. 물류 압박도 심각하다. 안 박사는 “다롄~선양~창춘~하얼빈을 연결하는 철도는 중국에서 가장 혼잡하다”고 했다. 다롄~상하이로 기차로 석탄을 수송하면 20일, 배로는 15일 걸린다. 동해가 뚫려 창춘~동해~상하이 루트가 생긴다면 4~5일이다.

동해의 핵심은 나진항이다. 그 때문에 나진항에 가장 가까운 훈춘은 다롄 다음으로 중요하며 지린성의 중요한 대외 개방 문호라고 설명된다. 나진항은 나진과 선봉을 합해 만든 특별시다. 특히 나진항의 3개 부두가 관심이다. 선봉항은 석유항이다. 나진·선봉은 일본이 만주국을 건설할 때 만든 조선 북부 3개 항 가운데 두 곳일 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중국의 민간회사들이 1990년대 초반부터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실패했다. 민간에는 죽음의 항구였다.

7월 22일 창지투의 전초기지인 옌지시의 옌지개발구 건물에 물류 시찰단이 모였다. 옌볜자치주 상무국 상무위원인 쉬룽(許龍) 국제무역촉진위원회 옌볜 지회 부회장은 “동해 길을 열어야 동북 3성과 창지투가 산다. 나진을 열어야 한다. 나진을 한국과 같이 개발하자”고 했다. ‘죽음의 항구’ 나진을 연 것은 중국 정부였다.

2009년 10월 원자바오 총리는 김정일 위원장과 중국의 나진항 진출과 양국 공동 개발에 합의했다. 민간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연변일보는 5월 4일 “다롄의 창리(創立)그룹이 훈춘~나진 93㎞ 도로 건설을 조건으로 나진항 1호 부두, 1번 선석의 10년 사용권을 얻었다”고 전했다. 투자 규모 2000만 위안. 연간 150만t의 석탄을 하역한다. 올 하반기 석탄 10만t을 상하이를 비롯해 중국 동남방 지역으로 시범 운송한다. 통일연구원의 권영경 박사는 “다롄항을 이용할 때보다 물류비·시간이 50~70% 절감될 것”이라고 했다. 나진항 4호 부두 신축도 합의했다. 훈춘~나진 간엔 정기버스도 있다. 요금은 50위안. 나진항을 자주 가는 한 조선족 현지인은 “두 시간 걸린다”고 했다.
그러나 정상적인 운행을 위해서는 도로와 교각 문제를 더 해결해야 한다. 7월 23일 오전 11시30분쯤, 사타자(중)-경원(북)세관. 북한 쪽에서 중국으로 트럭 기사를 포함해 3명이 다리를 건너온다.

(세관)“몇 t입니까.”
(기사) “16t입니다.”

-“트럭을 포함한 겁니까.”
“그렇습니다.”

-“통과 못합니다. 너무 무거워 다리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북·중 국경의 대부분 다리는 1930년대 만들어진 콘크리트 다리다. 사용 연한은 60년. 이미 70년이나 나이를 먹어 지금은 15t 이상을 못 견딘다. 철광·석탄을 수십t씩 실어내오려는 중국은 안달이 나있다. 그런 안달이 ‘100대 계획’에 반영돼 있다. 계획의 둘째 항목이 대외통로 건설(22~33번) 12개 사업인데 그 가운데 9개가 북한의 철도·도로·교각 개·보수다. 훈춘~나진을 연결하는 중국 세관 원정에서 나진까지는 40분이 걸린다. 길이 나빠 그렇다. 포장되면 20분이다. 북한으로 들어오는 중국의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다.

중국은 말만 하는 게 아니다. 창지투 도로·철도 관련 12개 사업의 예산만 179억 위안(약 3조5000억원)이다. 다 합하면 어마어마한 수치일 것이다. 물론 다 정부 예산은 아니다. 주정부·민간도 참여한다. 권영경 교수는 “현지에선 ‘동북3성 개발 사업에 돈이 쏟아져 내려온다’는 말을 한다”고 했다.

이런 사업은 북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도로·다리가 단순히 트럭·버스의 통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훈춘엔 100억 위안을 들여 2016년까지 대단위 변경무역센터가 조성된다. 투먼에는 8억 위안을 들여 중·조변경자유무역구 안에 기계 공장을 세운다. 두만강 건너 북한 소도시 남양의 인력을 끌어다 쓴다. 중·북·러 다국경제합작구(7억 위안)도 만들고, 두만강 5만㎾ 수력발전소(5억 위안)도 건설한다. 북한·러시아 광물을 들여와 ‘천지공업무역’과 ‘돈화탑동철광회사’에서 특수강을 생산하는 계획도 있다. 20억 위안 규모다. 지린성은 나진항 옆 화력발전소 개·보수 협의도 한다. 요컨대 한적한 두만강 주변이 공업지대로 변신하는 것이다. 안 박사는 “훈춘~나진 통로 주변에 공단·공장을 만들어 개성공단처럼 북한 인력과 자원을 끌어들인다는 구상”이라고 했다.

동북 3성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천안함을 침몰시켜도 중국은 내칠 수 없다. 권 박사는 “2차 핵실험 이후인 2009년 7월 중국 내 전통파와 국제파의 격론 끝에 전통파가 승리해 비핵화보다 안정에 초점을 맞추고 동북진흥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개혁·개방을 압박하기보다 국경을 개발하면 북한이 자연스럽
게 끌려온다는 ‘자석론’이다.

중국은 나진·신의주에서 대북 양동 작전을 편다. 2009년 10월 원자바오 총리는 김정일 위원장과 북한 신의주 개발을 포함하는 ‘연해경제벨트경제권’과 ‘창지투선도구’와 관련한 합의를 했다. ‘연해 경제 개발’을 위해선 신압록강대교 건설이, 창지투 개발을 위해선 나진항 진출이 들어갔다. 북한은 중국에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2009년 12월 16일 김 위원장이 나진을 현지지도 하고, 2010년 1월 4일 나선시가 특별시로 승격되는 등 반기는 기색이다. 한 조선족은 “나선시 행정위는 내부적으로 ‘중국 나선시 특별행정구역’이라는 말까지 한다”고 했다. 그래도 “이 지역은 평양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개혁·개방 압력이 없다고 북한 지도부는 계산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중국의 동해 진출에 열심인 동안 이명박 정부는 손을 놨다. 안 박사는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나진항 문제를 제의했지만 합의문엔 못 들어가고 후속사업으로 하기로 했지만 이후 진행된 것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동북아시대 위원장을 지낸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현 정부는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정권이 교체되고 남북관계가 단절되면서 지금 나진항은 중국의 독무대다.

두만강~압록강 1800㎞를 축으로 동북 3성의 경제력이 함경도·양광도·평안도를 압박하고 훈춘-나진 철도·도로와 압록강 철교가 북한의 머리와 허리를 뚫는 화살이 되고 있다. 북한이 동북 3성의 막내인 동북 4성이 될 것이란 우려는 그래서 나온다.

옌지·훈춘·자루비노=안성규 기자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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