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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貨가 良貨를 구축해온 어두운 한국정치사
 
김기백칼럼 기사입력 :  2008/05/3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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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종 前국회의원을 위한 변론...(2)
 
 
전편의 글에서 나는, 박찬종 前의원(이하:편의상 박의원혹은 박찬종씨)과 알게된 게 어떤 일로 언제쯤인지에 대해서만 공개했지만, 오늘의 이글에서는 왜 이 시점에서 하필이면 아무 힘도없는 인터넷 논객에 불과한 내가 왜, 뜬금없이 박의원을 옹호하는 글을 쓰게 되었고, 대체 어떤점을 들어 박찬종씨를 적극 변호하려는지에 대해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사실그대로를 공개적으로  적시하고자 한다.
 
-제도권 정치인으로는 돈안드는 선거를 최초로 실천한 박찬종-
 
내가 박의원을 알게된 91년무렵은  전국민적 주목과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박찬종이라는 정치인이 그야말로 한창 뜨고 있는 시절이었고, 내가 분명히 증언할수 있는것은 제도권 정치인으로는 돈안드는 선거를 최초로 실천한 사람이 바로 (92년당시 그야말로 필마단기로 신정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갔을때, 나도 박의원이랑 같이 책을 팔아가면서  전국 곳곳에 선거유세를 다녔고 웬만한 국회의원 한명 선거보다 적은 비용으로 당시 150만표를 얻었다) 박찬종씨였다는 것이다.
 
-호남지역에서도 전혀 거부감이 없었던 유일한 영남출신의 정치인 박찬종-
 
또하나, 내가 명색이 민족주의자로서 양심과명예를 걸고 분명히 증언할수 있는것은 (그당시 나도  박의원이랑 동행해서 광주금남로 유세에 동참했었다)호남지역에서도 전혀 거부감이 없었던 유일한 영남출신의 정치인이 바로 박찬종씨였다는것이다.
▲박찬종 전 의원    

전두환일당의 천인공노할 학살극이 벌어졌던 중심현장인 광주금남로에서 부산출신의 박찬종이 유세를 했음에도, 적어도 수천명이상의 광주시민중에 어느누구도 야유를 보내거나 거부반응을 표출하지 않고, 열렬한 호응과박수로 환영하며,논리정연한  박후보의 연설을 경청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97년 한나라당 경선이 오세훈 서울시장후보 선출만큼만 공정했어도 박찬종이 대통령후보였다-
 
1-2년도 아니고 수년동안이나 지지율 1위를 고수하며,국민적 기대와신뢰를 한몸에 받아오던 정치인 박찬종이 결정적으로 망가지기 시작한것은 지난 97년 한나라당에서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경선에서 중도포기를 선언한 직후, 이회창 지지를 거부하고 이인제 지지로 돌아섰을때부터 였다는 것은 온국민이 다 알고 있는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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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박찬종이 한나라당을 뛰쳐나가 되지도 않을 이인제를 지지함으로서, 이회창 낙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그당시 돈암장에 거주하고 있던 박의원에게 나뿐아니라 수많은 측근들이 이인제는 절대 당선되지 못하니 그래서는 안된다고 적극말렸음에도 마지막 순간에 이인제쪽으로 가버린것이 박찬종 일생일대의 결정적 패착이었던 것은 분명한사실이다)만 크게 부각되어 왔을뿐, 박찬종씨가 왜 그럴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국민들이 별 관심도 없었다는것이다.
 
분명한것은, 그당시의 한나라당 경선시스템내지 당내민주화가 지난번 서울시장후보당시 만큼이라도 개방적으로 국민참여지분이 높았더라면, 애시당초부터 이회창을 거뜬히 이기고 박찬종이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었을것이 거의 틀림없었으며, 그랬더라면 (박찬종에게는 병역시비같은 결정적 아킬레스건도 없다) 한국정치지형은 지금과크게 달라졌을것이 분명하다는것이다.
 
박의원의 회고에 의하면,  그무렵에는 두눈멀쩡히 뜨고 있는 현직 대통령인ys인형 화형식까지 자행하는등 이회창이 대단히 못마땅했음에도 ,ys영감은 그당시 이미 식물대통령 상태라,전혀 힘을쓸수 없는 상황에서(청와대에서 ys면전에서 박의원이 당시 이회창이 당대표자리에 계속 눌러앉아 있는것은 부당하다고 강경히 항의했다함)이미 이회창과밀착된 김윤환을 비롯한 이회창 친위그룹들이 완강히 거부하며, 막강한 자금력과조직력으로  줄세우기를 다 해놓고 난뒤에야 비로소, 당대표직에서 물러난 직후에 요식행위의 하나로  치루어진 경선에서, 이회창과겨루는것은 전혀 무의미한 일이라 후보경선을 중도포기 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그 직후부터  이회창진영은 물론, 이인제진영에서도 박의원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형국으로 서로 자기쪽으로 끌어들이려 하는와중에 박의원은 그래도 공개적으로 이회창쪽에 최소한의 합리적 명분으로서 3가지 조건(아들 병역문제와경제위기문제및이인제 탈당문제에 대해 이회창도 도의적책임이 있다는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할것)만 수락하면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했음에도 이회창쪽에서 끝내 이를 묵살해버림으로서 이인제쪽으로 돌아서게 되었다는것이다.
 
이미 돌이킬수 없는 과거지사지만 ,근래 6-7년만에 다시 박의원과접촉하게된 내가 박의원에게 "그런 상황이었더라도 이회창을 지지하기 정 싫었으면 이인제쪽으로도 가지말고 차라리 가만 있었어야 하는거고 되지도 않을 이인제쪽으로 돌아선것은 홧김에 서방질 해버린격"이라고 했더니 박의원도 수긍하는 표정이었고 ,그뒤의 갈팡질팡식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는 다른누구보다 당사자가 회고하기조차 괴로운 일일것이고,나역시도 대단히 실망스러운 일들이라 굳이 시시콜콜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것이 솔직한 심경이다.
 
-법률가이기보다 경제전문가인 박찬종-
 
또 하나, 박의원의 장점을 들자면 흔히 알려져있기로는 박찬종씨가 판.검사에 변호사출신의 법률가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은 서울법대가 아닌 서울상대출신의 누구못지않은 경제전문가라는 사실이다,
 
경제통으로서 박찬종씨가 어느정도의 탁월한 전문성이 있느냐 하는 가장 단적인 사례가 바로,  당시의 김영삼정권이 oecd회원국 가입을 무리하게 서두르면, 반드시 외환위기가 닥친다는 것을 정확히 예견하고, 96년 6월초당시 한나라당 상임고문자격으로 ys영감에게 oecd회원국 가입을 적극만류했으나 , 이미 oecd회원국 가입을 자기 임기내의 최대치적으로 삼고자 했던 당시 ys영감은 말을 들을리가 없었고, 바로 그바람에 누가 들어도 박찬종을 겨냥한것이 분명한 "독불장군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공언하게 되었다는것이다.
 
박의원의 회고에 의하면,그무렵 한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사상최대인 2백수십억불에 달하고 있었고, 그런상황에서 무리하게 oecd회원국으로 가입하면 반드시 대규모의 외환위기가 들이닥칠수 밖에 없었으며, 그런문제에 대해 당시 이경식 한국은행총재와 서울경제신문에서 공개적인 논쟁도 벌였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직을 스스로 팽개쳐놓고 ,국회의원선거에서 떨어져버린 박찬종-
 
박찬종씨를 웬만큼 접해본 수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느낌이랄까 수수께끼같은 의문점이 몇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큰 의문점은 바로 어느모로봐도 대단히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그가 때로, 참 헷갈리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울만큼, 바보같은(?) 순진한 측면이 있는 인물이 바로 박찬종이라는 정치인이다.
 
무슨얘기냐 하면, 전에도 그런소리를 더러했지만, 얼마전에 내가 박의원에게 말하기를" 대표님(예전부터 그렇게 불러왔다)은 정말 의외로 나아갈때와 물러설때를 잘모르시더라,치고 나가야 할때는 가만계시고, 가만히 있어야 할때는 돌출발언을 해서 표적이 되버리거나 스스로 발등을 찎어버리고... 진.퇴를 정반대로 하실때가 한두번이 아니더라"고 했더니 수긍하는 표정으로 듣고만 있더라는 얘기고  그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지난 96년 4.11총선 당시의 행보였다.
 
그 당시 ys영감에 의해 신한국당 총선 수도권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되었던 박의원은 당연히 이회창에 이어 전국구 2번을 얼마든지 확보해서 아주 손쉽게(그당시 박의원은 이미 5선의 국회의원이었고  4.11총선에서도 상당한 기여를 했고 따라서 전국구 2번은누구도 반대할수 없는 따논당상이었다) 6선국회의원으로 등원할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전국구21번으로 물러앉아서(당을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배수진을 친다고 그랬겠으나) 자신을 위한 유세한번 못해보고 금뱃지를 허공에 날려버린것이다.
 
박의원의 회고에 따르면 그직후 ys영감이 박의원에게 "일단 정무장관직을 줄테니 입각하라"고 했으나 박의원은 불과얼마전 총선에서 배수진을 치며 당에 헌신하려 했던 자신의 모습이 가식으로 비칠까봐 사양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박의원이 결정적 순간에 한나라당을 탈당해버리고 이인제를 지지해버리는 바람에, 정치적으로 이미  매장이 되버리다시피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버린 다음에야 불현듯 "어떻게든 일단 국회의원직은 회복해놓고 보자"는 때늦은 절박감에 다시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지만 그런저런 속사정을 자세히 알리도 없는 유권자들이 종전같은 지지를 보내주지 않는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였던것이다.
 
그럼에도, 박의원의 또하나의 매력은 가까이 접해보면 매우 소탈할뿐아니라, 때로 누구못잖은 유머감각과위트가 탁월한 면모가 있다는것이다.
 
-박찬종은 이제 진짜로 마음을 비웠다-
 
박찬종이라는 정치인이 비록 수십년동안이나 독불장군 행세를 해오느라 그다지 큰 조직을 가진적은 없으나, 나보다 훨씬더 오래전부터 박의원을 잘아는 사람들도 많고 가까운 사람들도 꽤 많음에도, 하필이면 내가 뜬금없이 나서서, 이미 흘러간 스타가 되버린 박찬종씨를 적극 옹호내지 변호하고자 하는데는 나름대로 그만한 몇가지 까닭이 있는것이다.
 
첫째는: 다른무엇보다 내가 주창하는(지난 6년여동안 내가 인터넷에서 끈질기게 주창해온 우파민족주의론은 실은 예전부터 내가 박의원에게 수시로 말해온 민족주의론의 연장선상에 있는것이다)우파민족주의론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진심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을뿐 아니라 ,내가개인적으로  알고 있고있고 말이 통할수 있는, 온국민이 다알고 있을만한 유일한 저명인사이며...
 
둘째는: 위에서도 지적했지만 박의원도 여러가지 시행착오와 오판 혹은 인간적 단점과결함이 있는것도 사실이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자질과역량 도덕성에 있어서 현직 대통령인 노모씨는 물론이고, 현재 거론되고 있는 이런저런 대권예비후보군들에 ( 가까이 접해보면그들도 박의원 못잖은 오류와헛점투성이 일게 분명하다)비해서는 한치라도 나았으면 나았지, 절대로 못한 인물은 아니라는것이며...
 
셋째는: 따라서 정치인으로서의  박찬종이라는 한 인물을 그대로 썩혀버리거나 ,사장시켜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것과박의원과나는 서로의 장단점을 비교적 잘알고 있으며...
(실은 나역시 인간적 결함과약점 혹은 핸디캡이 숱하게 많은 사람이다)
 
넷째는:박의원이 분명히 다짐하기를, 자신은 이제 더이상 결코 "무엇이 되고자 하는것이 아니며 문자그대로 순교자적 자세로 날이갈수록 점점더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고 있는 나라와민족을 구해내는데 살신성인의 자세로  한알의 밀알이 되겠다고 맹세했으며...
 
다섯째는: 박의원은 공교롭게도 현재, 엄청까다로와진 선거법위반(나는 개입하지 않았으나 무슨 책자를 돌리다가 그리된것으로 알고 있음)으로 대법원에서300만원벌금형이 확정되는 바람에 공민권이 제한되어 있어 내년 대선에 나갈래야 나갈수가 없는 피선거권 박탈상태이며 내년 대선을 넘기면 이미 70대에 접어들게 된다.
 
여섯째는:위에서 적시한 그런저런 연유로 박의원과나는 앞으로 굳게 뭉치기로 했다는 것이며...
그럴리는 없지만 만의하나라도 박의원이 또다시 어설픈 상태에서 대권을 넘보는 행태를 보일경우, 나는 하시라도 단호히 박의원과 관계를 단절해버릴것이며...
 
-애꾸눈 동네에서는 양눈가진 사람이 불구자 취급받는다-
 
분명한것은 매우불행하고 유감스럽게도 거슬러올라가면 특히,조선왕조때부터 이나라의 정치사는 한마디로 惡貨가 良貨를 구축해온 어두운 사례가 수없이 많았으며, 광복직후부터의 한국 현대사로 접어들면서 부터는 더더욱 그래왔다는것이다.
 
백범선생은 두말할것도 없고 여운형.송진우.장덕수.조봉암등등의 수많은 아까운 인물들이 정적에 의해 비명횡사하거나 음모와모략과술수에 의해 매장되거나 배척되어왔다는것이다.
 
시대적 배경이 다르고 인물의 역사적 비중또한 다르지만, 박찬종씨는 수많은 애꾸눈들이 패거리를 지어, 매장시켜 버린 아까운 정치인임에 틀림없으며, 아직도 전국곳곳에 박찬종을아까워하고  아쉬워하는 민초들이 결코 적지 아니하며,  따라서 필마단기로  수년동안이나 국민지지율 1위를 지켜내왔던 박찬종의 저력은 아직도 살아있음이 분명하다는것이다.
 
ps: 박찬종 前의원에 대한 글은 일단 이것으로 끝낼것이나, 박의원측에 의해 조만간 박의원이 구상해온 혁명적 정치개혁안(국회의원 숫자를 대폭줄이는 등등의)이 구체적으로 공표될것이며, 나역시 그러한 개혁안을 적극지지하는데 미력이나마 일조할것이나, 이글과는 별도로 얼마전에 4편까지 발표한 "한국의 정치인들,수준이 왜 낮을수 밖에 없나"는 앞으로 틈이나는대로 몇편더 계속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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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5 [02:27] ⓒ브레이크뉴스

 
 
 
 
 
2006년 9월15일 새벽: 인터넷 민족신문 발행인 김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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