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韓信)의 배수진(背水陣)은 말도 안 되는 병법이었다. 그런데 이겼다. 부하 장수들이 이기고도 이긴 이유를 몰라 얼떨떨해했다.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이 배수진을 따라 했다. 그런데도 졌다. 왜 그랬을까? 같되 달라야 한다는 상동구이(尙同求異)의 정신을 몰랐기 때문이다. 같음을 숭상하되 다름을 추구한다. 결과가 같아도 과정마저 같을 수는 없다. 남이 돈 번 주식은 내가 사는 순간 빠지기 시작한다. 같아지려면 다르게 해라. 달라야 같다.
손빈(孫月賓)이 방연(龐涓)의 계략에 말려 발뒤꿈치를 베였다. 병신이 된 그는 제나라로 달아났다. 방연의 위나라가 한(韓)나라를 공격했다. 한나라는 합종의 약속에 따라 제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손빈은 제나라 군사를 이끌고 곧장 위나라로 쳐들어갔다. 방연은 황급히 군대를 돌려 자기 땅으로 들어간 제나라 군사를 뒤쫓았다.
손빈은 첫날 밥 짓는 부뚜막 숫자를 10만개로 했다. 이튿날은 5만개, 다음 날은 2만개로 줄였다. 추격하던 방연이 웃었다. "겁쟁이 녀석들! 사흘 만에 5분의 4가 달아났구나. 기병만으로 쫓아가 쓸어버리겠다." 방심하고 달려든 방연은 손빈의 매복에 걸려, 2만대의 화살에 고슴도치가 되어 죽었다. 이것이 유명한 손빈의 부뚜막 줄이기 작전이다. 위나라는 평소 제나라 알기를 우습게 알았다. 손빈은 위나라 군사의 이런 생각을 역이용했다.
후한 때 우후(虞��)가 많지 않은 군사로 강족(羌族)의 반란을 진압하러 갔다. 적군의 수가 엄청나 후퇴하자 추격이 거셌다. 상황이 위험했다. 후퇴하면서 그는 손빈의 작전을 썼다. "우리도 부뚜막 작전으로 간다. 대신 숫자를 늘려라." 매일 후퇴하면서 부뚜막의 숫자를 배로 늘렸다. 뒤쫓아오던 강족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후방에서 지원군이 오고 있다. 함정이다." 겁을 먹고 위축된 그들을 우후는 적은 군대로 허를 찔러 무찔렀다.
한 사람은 부뚜막 숫자를 줄였다. 한 사람은 반대로 늘렸다. 왜 그랬을까? 상황이 달랐다. 하나는 추격을 받으며 적진을 향해 들어가는 길이었고, 하나는 쫓기면서 후방을 향해 나오는 길이었다. 반대로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부뚜막 숫자를 조작해서 적의 방심과 의심을 샀다. 부뚜막 숫자를 줄이고 늘리고가 중요치 않다. 상황을 장악하는 힘이 중요하다. 배수진은 잘못 치면 더 빨리 망한다. 상동구이!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