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방중 이후 돌연 자립경제 강조 …“후진타오 개방 권고에 반박 인상”
북한이 노동신문 기명 논설을 통해 “남에게 빌어먹는 절름발이 경제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처럼 큰 죄악은 없다”며 경제의 주체화와 자립을 강조하는 노선을 밝혔다. 노동당 기관지인 이 신문은 18일자 ‘주체화는 우리 경제의 부흥과 비약의 기치이다’라는 장문의 논설에서 “남의 힘에 의거하고 외자를 끌어들이면 당장 급한 고비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결코 이런 길을 택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김일성 동지의 후손인 우리 인민은 남에게 결코 굽신거리며 비굴하게 살 수 없다”며 “주체화의 길에서는 한 발자국이 아니라 반 발자국도 후퇴할 수 없다는 것이 장군님(김정일)의 의지”라고 밝혔다. 또 “다른 것은 참을 수 있어도 경제의 생명선인 분야가 남의 원료와 기술에 의존하는 현상은 추호도 용납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동신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고 모든 문제를 자신의 힘에 의거해 풀어나가야 한다”고 언급한 점을 소개했다. 특히 “대외 의존과 사대주의의 사소한 요소도 없는 위력한 자립경제, 주체사상화된 경제를 건설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의지”라고 지적했다.
노동신문 논설은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8월 26~30일) 직후 경제의 주체화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7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에게 중국의 개혁·개방 성과를 강조하며 “경제발전은 자력갱생뿐 아니라 대외협력을 떠나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연수 국방대 교수는 “논설은 마치 후 주석의 권고에 대한 김 위원장의 강도 높은 반박 같은 인상을 준다”며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한 북한 자체의 평가가 끝났을 시점에 이런 글이 노동신문에 실렸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도 “북한이 스스로 ‘사대주의’라는 표현을 쓸 때는 중국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중국 지도부가 거듭 강조한 개혁 조치를 취하기 전에 주체 경제를 강조했다는 상반된 해석도 내놓고 있다.
◆ “당대표자회 연기에 함구”=노동당 대표자회 준비위원회는 노동당 대표자회를 오는 28일 평양에서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그러나 ‘9월 상순’에 열려던 일정이 미뤄지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영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