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경향신문>이 북한의 3대 세습을 수용하는 듯한 민노당의 태도를 비판한 것에 대해 “국가보안법 법정의 검사 논리”라고 반박했다.
이 대표는 8일 자신의 블로그에 ‘진보임을 인정받기 위해 한마디만 해 보라고?’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며 선택”이라며 “이것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면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도 북한의 3대 세습을 비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자신이 변호인으로 국가보안법 법정에 섰던 과거 경험에 빗대어 설명했다. 당시 검사는 “우리 정부를 그렇게 비판하는 피고인이, 진보를 자처하면서 왜 북의 독재를 비판하지 않느냐”고 했다는 것. 이 대표는 “그 법정에서 피고인이 검사로부터, 법원으로부터 진보로 인정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진보임을 인정받기 위해 우리가 남북관계에서 수많은 의견 대립과 충돌을 겪으며 끌어낸 대응 방식을 포기해야 하나”라며 “남북관계가 평화와 화해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임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의 권력구조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하면 남북관계는 급격히 악화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국가보안법 법정의 논리가 일부 변형되어 진보 언론 안에도 스며들어 온 것이 안타깝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다음은 이 대표의 글 전문진보임을 인정받기 위해 한 마디만 해 보라고?-<경향신문> 9월 31일자 사설에 대해진보가 왜 비판하지 않느냐. 제대로 말 못하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북의 후계 문제를 둘러싸고 최근 민주노동당에게 <경향신문>이 내세운 논리이다.
이렇게 답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는, 현실에서 출발해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세력이다. 그것을 위해 말을 꾹 누를 수도 있는 판단력을 가진 것이 진보이다. 진보임을 인정받으려는 생각으로 시류에 맞춰 말을 보태기보다, 자신 행동의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진보이다.
현실은 어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되고 권력승계가 이루어지는 시기에 급변사태가 올 것이라며
미국과 한국 정부는 작은 군사적 충돌에도 곧장 평양으로 진격해 북의 최고위층을 생포하는 시나리오를 공공연하게 발표하고 올 여름 이후 지금까지 서해와 동해에서 끊임없이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다. 보수정당과 대다수의 언론이 비이성적인 국가라는 여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경쟁적으로 비난을 쏟아낸다. 이 시점에서 진보정당까지 북은 비이성적인 행동을 했다는 말을 덧붙여 갈등 상황을 더해야 하나.
몇년 전 3.1절
행사 때, 북에서
공연단으로 온 젊은 여대생과 한 식탁에서 저녁을 먹었다. 고작 스무 살, 얼마나 많은 것을 알 나이겠는가. "남쪽에 오게 되어 떨리지 않았어요?" 한 분이 물었다. 이 여대생이 그 고운
목소리로 "오기 전에 어머니가, 장군님이 계시다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고 하셨단 말입니다"하고 답했다. 아무도 말을 더 잇지 못했고, 굳이 이어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평양에 사는 그 여대생이 선택받은 고위층이니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시각을 굳이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여대생이 보여준 정서가 옳고 그름이나 변화의 조짐이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 아직까지는 북의 사회를 특징짓는 정체성의 하나인 것이 현실인 이상, 북의 권력구조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하면 남북관계는 급격히 악화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우리가 아무리 북의 권력구조에 대한 입장과 남북관계에 대한 입장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더라도, 북의 권력승계를 왕조세습이라고 비판하더라도
대화는 그대로 추진해야한다고 생각하더라도, 남북관계에서 이 문제는 완전히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미국과 북한이 오랜 대결 관계에 있다. 미국이 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보이는 시도는, 북의 지도자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 것에서 시작한다.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회담에 동석했던 미국 관리가 왜 "무척 실용적이고 사려 깊으며
유머감각이 출중하다"는 말을 언론에 대서특필되게 했겠는가. 미국 정부가 ‘대결에서 대화로’ 정책을 바꿨기 때문에, 대화의 분위기를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그러했다. "자기 국민들을 굶기는 사람"이라는 부시대통령의 말이 나왔을 때 북미관계가 어떠하던가. 갈등을 최고조로 높이는 방법은, 북의 지도자를 날선 언어로 비판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남쪽 관광객들만 가는 금강산을 여행할 때도, 여행객들에게 주의사항이 미리 알려진다. "북의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말라"는 것이다. 비록 북쪽 사람들은 우리 앞에서 북의 지도자를 칭송하고 찬양하더라도, 우리는 반박하고 싶어도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온 오랜 경험에서 생긴 대응방식이다.
이것은 금강산 관광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언론의 대응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금강산에서 평범한 여행객들에게도 요구되는 이 대응방식이 이 시점에서 아무런 절제 없이 포기될 뿐 아니라, 특히 민주노동당에게 진보정당이라는 이유로 포기할 것이 사실상 강권되는 것이 정당한가.
나는 국가보안법 법정에 변호인으로 선 일이 있다. 검사의 가장 주된 공격 방법은 "우리 정부를 그렇게 비판하는 피고인이, 진보를 자처하면서 왜 북의 독재를 비판하지 않느냐", "왜 북의 인권침해를 거론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 마디만 해 봐, 그럼 너의 사상이 불온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 줄 테니, 진보면 그 정도는 해야지"라고 유인한다. 그러나 그 법정에서 피고인이 검사로부터 법원으로부터 진보로 인정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단 한 번도, 피고인에게 "북에 대해 한 마디만 하세요, 그러면 정당성도 인정받으면서 무죄판결 받으실 수 있어요"라고 조언한 적이 없다. 내가 변호하기로 약속한 피고인의 한평생의 노력이 시험에 들었을 때, 피고인의 행동이 그 자체로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피고인에게, 남북의 화해를 갈구하며 그가 쌓아온 내면과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키는 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진보임을 인정받기 위해 우리가 남북관계에서 수많은 의견대립과 충돌을 겪으며 끌어낸 대응방식을 포기해야하나? 남북관계가 평화와 화해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임무이다. 그 대응방식을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지금 그것은, 금강산에서 그러했듯, 북의 권력구조에 대해 말하지 않아온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본다.
국가보안법 법정 안의 논리가 일부 변형되어 진보언론 안에도 스며들어 온 것이 안타깝다.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며 선택이다. 이것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면 받을 것이다. 지금은 진보임을 인정받기 위해 북의 권력승계를 비난하다가, 뒤에 그 후계자와 대화의 상대방으로 마주앉게 되면 ‘능력 있는 사람’이라며 이전의 비난을 거둬들일 치사를 만들어내야 하는 궁박한 입장에 스스로 빠져 들어갈 생각이 나에게는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