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정치/선거경제/복지미디어전쟁국제정치.경제민족/통일사회/사법군사/안보문화/스포츠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전체기사보기 교육/과학   고대사/근현대사   고향소식/해외동포   포토/해외토픽   자유게시판  
편집  2021.04.14 [23:30]
민족/통일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너무 가난하면 꿈도 없고 敵도 없다
 
조선일보 기사입력 :  2010/10/13 [23:59]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밴드
"너무 지독하게 궁핍하면 자신들의 적이 누군지도 모른다"

 

[아침논단] 너무 가난하면 꿈도 없고 敵도 없다

  • 전상인 서울대 교수·사회학
입력 : 2010.10.13 23:11
전상인 서울대 교수·사회학

너무 지독하게 궁핍하면 자신들의 敵이 누군지를알아 보지도 못한다
북의 세습 지배 집단은 주민들의 한계적 생존을 통치기반으로 활용한다

"모든 것은 꿈에서 시작된다. 꿈 없이 가능한 것은 없다." 이는 20세기 프랑스의 정치인이자 소설가였던 앙드레 말로가 한 말이다. 그런데 가난은 꿈을 앗아간다. 그는 이렇게 썼다. "가난하면 적(敵)을 선택할 수가 없다. 우선은 가난에 지배당하고, 결국에는 운명에 지배당하게 된다." 앙드레 말로의 이러한 생각은 마치 오늘날 북한 주민의 처지를 두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너무나 지독하게 궁핍한 나머지 자신들의 적이 과연 누구인지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알아볼 수도 없는 그런 형편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위대한 만남―서애 유성룡'이라는 책에서 조선 왕조의 장수 비결을 사회경제적 절대 빈곤에서 찾았다. "사회가 빈곤하면 빈곤할수록 정권을 바꿀 에너지가 사회 내부에서 생성되지 못한다. 반면 정권은 일정한 무력으로 어떤 농민 반란도 진압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다이내미즘의 상실은 곧 정체로 이어지고 정체는 오늘날 북한처럼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굶주린 주민, 다른 한편으로는 정권의 건재라는 모순적 상황은 요즘처럼 개명(開明)한 세상에서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하지만 위정자들이 백성의 배를 불리는 일에 대해 제대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근대 이전 왕조 사회에서 권력의 정당성은 민생과 직접 상관이 없었다. 권력의 유지는 대개 세습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고 했는데, 이는 "가난 구제는 나라가 안 한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북한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권력세습을 시도하는 행태도 이런 시각에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현재 북한 사회 저변에는 이와 같은 권력 기행(奇行)을 비판하거나 그것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힘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런데 북한의 극빈 상태는 단순한 정책상의 오류나 실패 탓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 사정이 보다 심각하다. 북한의 지배집단은 주민들의 한계적 생존 상황을 또 하나의 통치기반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가령 온 나라를 감옥이나 수용소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 놓고 최소한 연명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만 제공하거나 아니면 그것조차 제대로 못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그런 곳에서는 희망도 멀지만 분노 또한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너무나 절묘하게도 북한은 이번 세습 과정에서 '김일성 조선' 혹은 '김씨 왕조'를 노동당 규약에 아예 못 박아 버렸다. 전(前)근대국가로 확실히 회귀함으로써 업적에 의한 정당성 확보라고 하는 근대국가로서의 의무를 털어낸 것이다. 하긴 명색이 사회주의 계획경제라면서 북한은 1997년 이후 인민경제를 위한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우리가 워낙 문명화된 세상에 살아서 잊고 있지만 바로 이런 것이 권력의 진면목이다. 권력이란 막강한 무력과 절대적 충성세력에다 무기력한 사회라는 조건만 덧붙인다면 생각보다 오래가는 법이다. 국가의 흥망에 외부환경이 변수이긴 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어차피 핵으로 무장한 고립과 은둔의 나라다. 그렇다면 권력이동 이후 북한 체제의 이변을 곧장 예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아선상에 헤매는 북한 주민의 정치적 탈진과 그것에 편승한 독재권력의 세습행위를 용납할 수도 없고 방관할 수도 없는 우리의 입장이다. 그것은 민족의 의무로서도 그렇고 양심의 명령으로서도 그러하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북한의 향배와 관련하여 그 어느 때보다 더 비장한 국가적 결단과 국민적 각오가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특히 북한 동포의 가난 구제에 대해 모든 전략적 노력을 집중할 때다.

이런 맥락에서 품게 되는 기대는 북한의 권력세습 행위가 우리측의 남남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우선 북한의 세습독재 강행에 즈음하여 햇볕정책은 당위성의 근거를 크게 상실하고 말았다. 따라서 좌파·진보세력은 차제에 대북관을 자연스럽게 재고(再考)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북 강경론이 능사는 아니다. 북한 체제의 변화를 위한 꿈의 시작은 그곳 사람들을 무조건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입히는 일이라는 점을 알고 또 믿어야 한다. 배고픈 백성이 따르는 것은 원칙이 아니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조선닷컴 핫뉴스 best
    관련기사
    짐승보다 처량하다...지상의 방 한 칸
    상황을 바꾸는 마력 혹은 매력
    對北-對4强외교 전략과노선을 어떻게 짤것인가?
    더 늦기 전에 평양을 통일한국의 수도로 확정 선언해야!
    인간, 운명의 노예인가? 교육과환경의 산물인가? 자아실현의 주체인가?
    나는 혁명보다 더한 개벽을 꿈꾼다
    북핵문제, 결국 김정일 이후 우크라이나 방식으로 귀결될것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북한판 마샬 플랜의 절대적 필요성에 대하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민족신문
     
     
    주간베스트
      개인정보취급방침광고/제휴 안내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Copyright ⓒ 2007 인터넷 민족신문. All rights reserved.
    Contact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