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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외치는 위선의 대척점에 '개인'이 있다
근대는 이익공동체 '분배=정의'는 착각... 조상의 德 계승하는 '한국적 개인' 탐색
 
조선일보 기사입력 :  2011/02/0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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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외치는 위선의 대척점에 '개인'이 있다


 

입력 : 2011.01.29 03:06


근대는 이익공동체 '분배=정의'는 착각
조상의 德 계승하는 '한국적 개인' 탐색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박성현 지음|들녘|304쪽|1만3500원


우리 사회는 1년 가까이 '정의(正義)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마이클 샌델이라는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책 때문이다. 그런데 샌델의 책은 묻도록 이끄는 책이지 답하는 책이 아니다. 답은 각자 찾아갈 수밖에 없다.

운동권 핵심, 신문기자, 고려시멘트·나우콤 대표 등을 거쳐 전업저술가의 길에 들어선 박성현씨가 처음 쓴 이 책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읽어갈 수 있는 묘한 중층(重層)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일단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문맥 속에서 읽는 것도 하나의 독법(讀法)이 되겠다.

골수 운동권일 때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번역하며 혁명을 꿈꾸었던 저자는 최근 니체의 '짜라두짜(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지'를 번역했다. 그가 보는 니체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위선(僞善)을 가차없이 깨트리는 '망치의 철학자'이다. 그 자신 손에 혁명의 깃발을 버리고 대신 망치를 집어든 것이다.

▲ 일러스트=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이제 저자는 묻는다. 정의의 적(敵)인 불의(不義)는 누가 만들어내는가? 또 묻는다. 정의를 외치는 자는 정의로운가? 그런 자는 정의로 무장돼 있기 때문에 정의를 외치는가? 아니면 정의를 외치기 때문에 정의로운가? 그래서 정의로운 자가 정의롭지 못한 자를 제거하면 사회는 정의로워지는가?

저자는 정의를 분배정의의 문제로 보는 시각은 착각이라고 단언한다. 정의가 분배정의인 경우가 있기는 하다. 고대의 소규모 전사(戰士)공동체에서는 분배정의가 곧 정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이 분배정의론인 이유다. 그러나 근대사회는 전사공동체와 거리가 먼 이익공동체이고, 그 과정에서 개인이 탄생했다. 그런데도 정의의 문제는 진화하지 못한 채 고대 방식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게 저자의 비판이다.

"개인주의자들은 세상이 그러한 공동체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훌륭한 자아(개인)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대답, 즉 미덕과 윤리에 관한 정답을 공동체가 제공할 수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시장 기능 바깥의 영역에 공정성 혹은 분배정의가 따로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면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개인으로 각성되지 못한 '떼(무리)'가 만들어낸 위선이다. "소득격차를 애초부터 정의롭지 못한 것, 불공정한 것이라고 규정한 후, '정의와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해 벌금 성격의 세금을 내라'고 윽박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책의 앞부분부터 순차적으로 읽어보자. 인간이 '떼'로부터 분리되어 '개인'이라는 존재로 등장하게 된 것은 서양의 근대혁명 때문이다. 수백년에 걸친 유럽의 개인혁명은 지난 60여년 동안 한국에서도 압축적으로 진행됐다. 책의 전반부는 따라서 유럽의 근현대 정신사이면서 우리의 서구문명 도입사다. 하지만 위선을 깨트리는 망치를 든 그의 서구 근대사 읽기도 예사롭지는 않다.

"10년에 걸친 프랑스혁명의 최대 문제점은 불개(fire dog)들만 있었을 뿐,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이 없었다는 점이다." 불개란 그가 번역한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에 나오는 지옥의 개로, 세상에 대한 앙심과 질투를 마음 깊이 가지고 있는 자들의 비유다. 불개들은 때로는 정의감, 때로는 연민에 호소하며 사람들을 긁어모은다. 이 말은 저자의 말이기에 앞서 이미 '짜라두짜'의 통찰이다. 떼를 이끄는 불개의 대척점에 '참된 개인'이 있다.

"참된 개인들은 프랑스혁명을 미화하는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근대적 국가 시스템은 하나의 수단일 뿐, 그 자체로서 숭고한 목적이 아니다. 참된 개인들은 요란한 구호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타락한 모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저자는 '한국적 개인'에 대한 탐색에 나선다. "한국 사회는 유럽이 만들어내고 미국에서 꽃피운 국가 시스템, 과학, 기술, 민주주의를 압축하여 소화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 잠재력을 폄하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조상이 물려준 덕(德)의 본질을 전혀 조명하지 못했고, 영화 '서편제'는 조상의 에너지를 병리적인 것으로 표현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저자는 한·중·일의 전통문화를 비교하면서 "우리 조상들은 옹색하고 구차하게 살았지만 엄청난 문화유전자를 만들어 물려주었다"고 본다. 그것을 그는 "재산의 평등이 아니라 정신의 평등에 대한 믿음"이라고 본다. 6·25전쟁 때 김일성의 기대와 달리 남한 농민들의 무장봉기가 일어나지 않은 것,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일부 주동세력의 바람과 달리 좌경 폭력혁명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틀 안에서 작동했던 것도 한국인이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이 같은 건강한 믿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은 이 밖에도 곳곳에 폭발적 쟁점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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