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1-02-08 03:00:00 기사수정 2011-02-08 03:00:00 ■ 식량부족에 여성-노인 등 수만명 1년 내내 서해로
연평도 인근으로 표류해 온 북한 주민 31명 중 대다수는 북한에서 ‘머슴 조개잡이꾼’으로 불리는 사람들로 보인다. 머슴 조개잡이는 특히 북한 서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계방식이다. ‘머슴’이란 표현은 강도 높은 노동을 해봤자 외화벌이 회사의 배만 채워주고 당사자의 몫은 보잘것없어 북한 주민들이 자조적으로 붙인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 서해 곳곳에는 조개를 중국과 한국에 수출하는 외화벌이 회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런 회사들은 수십 명씩 주민을 모집한다. 성별이나 나이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생계수단이 없는 미성년자나 노인, 여성 수만 명이 바닷가에 몰려든다. 대다수가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가난한 이들이다.
7일 복수의 탈북자와 대북 소식통들의 전언에 따르면 최근엔 농사지은 양곡을 군량미로 빼앗긴 농민들이 합세하고 있다고 한다. 조개가 주요 생산물인 서해와 달리 동해는 오징어가 주산물이다. 서해에 조개를 잡아주는 머슴 조개잡이꾼들이 있다면 동해에는 오징어를 잡아주고 삯을 받는 ‘삯발이’들이 있다. 삯발이는 일 자체가 힘들어 여성들을 잘 뽑지 않는다.
동해의 삯발이가 7∼10월 오징어철에 한정된다면 서해의 조개잡이는 1년 내내 이어진다. 조개잡이는 보통 30명 규모로 진행된다. 머슴 조개잡이꾼이나 삯발이들에게는 정해진 휴일이 없다. 바다날씨가 궂으면 휴일인 셈이다.
본격적인 조개잡이철은 3∼10월이다. 겨울에도 조개잡이를 하지만 다리가 길고 껍데기가 얇은 자그마한 칠게도 많이 잡는다. 밀물 때 배를 타고 나오는 이유는 육지에서 멀어져야 조개를 많이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썰물로 갯벌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사력을 다해 대합 모시조개 우렁이 소라 등을 캐낸다. 잡은 양에 따라 밀가루나 기름과 같은 식품을 분배받기 때문이다. 장화를 살 형편이 못되는 가난한 여성들이 겨울에 맨발로 갯벌을 뛰어다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많이 잡는 사람은 한 달에 밀가루 세 포대(75kg)를 벌기도 하지만 한 포대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기름을 절약하기 위해 한 번 배를 타고 나오면 일주일씩 바다에 머물기 일쑤다. 이 때문에 머슴 조개잡이꾼들은 조개 캐는 공구 외에도 갈아입을 옷과 식량 냄비 담요 땔나무를 준비해 배에 오른다. 서해안 해변이나 무인도에는 비닐박막으로 임시 움막을 치고 사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조개를 잡아 모았다가 시장에 가서 판다. 요즘 한국에 수입되는 중국산 조개 중에는 이렇게 생산되는 북한산이 상당수 포함돼 있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 목숨을 내건 조개잡이
조개잡이는 목숨을 걸 정도로 위험한 일이다. 초보자들이 조개잡이에 정신이 팔렸다가 갑자기 밀려든 밀물에 빠져 죽는 일도 흔하다. 서로를 잘 몰라 누가 죽어도 크게 슬퍼하지도 않는다. 아무리 낡은 배라도 뜨기만 하면 바다로 나가기 때문에 사고가 잦다. 올 1월에도 북한 중앙통신은 “조개잡이에 나갔다 표류했던 평북 곽산군 주민 10여 명을 김정일 장군님이 보내준 공군 비행기가 구했다”고 선전했다.
2008년에도 음력설 다음 날인 2월 8일에 북한 주민 22명이 탄 조개잡이 배가 남쪽에 표류해 온 적이 있다. 일각에서는 구조 13시간 만에 전격 북송된 이들이 공개 처형됐다고 전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보위부에서 닷새 동안 조사받고 일상생활로 돌아간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에 표류한 주민들도 북한에 돌아가면 보고 들은 것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한 뒤 풀려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에서는 배를 타기 전에 반드시 신원을 증명해야 한다. 돌아가지 않으면 남은 가족의 생명이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