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디어워치에서 전남순천 재보선에 대한 기사가 연속적으로 나가니, 미디어워치를 애독하는 한 언론학자가 “대체 전남순천 재보선과 매체비평이 무슨 관계가 있냐”며 문의를 해왔다. 이미 언론계 그리고 정치권 내에서 필자와 김경재 전 의원과의 관계는 다 알려져있기 때문에 사적으로 친한 정치인을 위해 지면을 이용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전남 순천 선거에 대해 단지 미디어워치와 빅뉴스에만 기사를 게재하는 게 아니다. 필자는 종합일간지 간부들과 인터넷미디어협회 소속사들에게도 이번 재보선에서 전남순천, 특히 김경재 전 의원이 던지는 메시지에 주목해달라 요청했다. 즉 이번 재보선을 다루는 언론의 기사 가치의 문제인 것이다.
필자가 김경재 전 의원과 처음 만나게 된 것으로 탄핵으로 한창 어지러웠던 2004년 총선 당시이다. 당시 국회와 정당 출입기자들은 탄핵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스피커를 찾기 어려웠다. 물론 mbc와 같은 어용 언론들은 아예 이를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탄핵 의사봉을 두드렸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회고록에서 “mbc는 주요한 내용은 모두 삭제한 채, ‘내가 탄핵 이후 괴로워한다’는 내용만 발췌하여 보도했다”고 비판했을 정도이다.
지상파 토론회에서 탄핵의 정당성과 자랑스러움 역설했던 김경재의 기사 가치
당시 김경재 전 의원은 kbs심야토론에 나가 친노 시민 패널의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냐”는 질문에 “자식들 앞에 매우 자랑스럽다”고 답변하며 탄핵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미 mbc와 포털의 선동으로 거대한 탄핵역풍이 불고 있을 때, 선거를 코앞에 둔 마당에 지상파 공개토론에서 이처럼 탄핵의 정당성을 당당하게 주장한 정치인은 없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이제 탄핵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맡겨야 한다”는 소극적 방어논리에 급급했고, 그마저 지상파 방송사 토론회에 나오겠다는 정치인조차 거의 없었다.
당시 필자는 브레이크뉴스 기획국장을 맡고 있었고, 탄핵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정치인의 메시지는 충분히 기사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김경재 전 의원을 기획취재했다. 12년차에 이른 인터넷언론 경력 중 탄핵 당시 김경재 전 의원 기획취재 건은 매우 자랑스런 기사였다.
당시 민주당 탄핵의 주역들은 조순형 대표, 강운태 사무총장, 김영환 최고위원, 추미애 최고위원, 당직은 맡고 있지 않았으나, 당내 법률 전문가인 박상천 의원, 그리고 김경재 전 의원이었다. 이들은 김경재 전 의원을 제외하고 현재 모두 총선, 재보선, 지자체 선거 등을 통해 현실정치에 복귀했다.
추미애 의원은 탄핵 직후 총선을 앞두고 광주에서 삼보일배를 하며 비굴하게 탄핵을 사과했다. 김경재 전 의원은 추미애 의원의 탄핵 사과를 막기 위해 지역구인 서울에서 광주까지 내려갔으나, 추미애 의원의 보좌관들에게 막힌 바 있다.
강운태 사무총장은 대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흡수될 당시, 실패한 정치실험의 산물인 열린우리당에 깜짝 입당하며 수차례 탄핵에 대해 사과했다. 김영환 의원은 2010년 안산 상록을 민주당 공천을 받을 때, “탄핵은 내 정치인생에서 가장 큰 과오”라 사과했다. 실질적으로 탄핵의 법률 업무를 맡았던 박상천 최고위원은 2004년 총선 낙선 이후 탄핵에 대해서는 일체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의 정치복귀는 사실 상 탄핵사과가 전제되었던 것이다.
탄핵 주역들, 탄핵 사과하지 않으면 정계복귀 불가능한 현실
김경재 전 의원과 함께 유일하게 탄핵에 대해 정당성을 주장해온 조순형 전 대표는 결국 민주당에 남을 수 없어 저 멀리 자유선진당으로 가게 되었다. 민주당의 탄핵 주역들은 사과를 하거나, 아니면 우파 정당으로 옮겨가지 않고서는 정치 복귀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 점에서 김경재 전 의원이 2004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무려 7년 간 야인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번 전남순천 재보선에서 탄핵이 주요 이슈가 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탄핵 이후, 그리고 이명박 정권 들어 급격히 민주노동당화되고 있는 민주당의 정체성 문제는 탄핵의 구도와 유사하다. 2004년의 탄핵은 행정부 수반인 노대통령이 “총선의 결과로 재신임을 평가받겠다”며 헌법의 3권 분리의 원칙을 깨뜨린 점에 대해 입법부에서 취한 당연한 법적 조치였다. 이런 법률적 문제 이외에 당시 민주당에서는 국정운영은 내팽겨치고, 사사건건 정치적 사안에 개입하는 노대통령을 그대로 두고서는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판단들을 하고 있었다. 당시는 분당된 상황이었지만, 언젠가는 다시 열린우리당과 합당을 하게 될 것을 예상하더라도 노대통령의 국정실패 탓에 정권은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의 민주당은 노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부담으로 대선 사상 최다 표차로 참패했다.
2011년 2월말의 민주당의 문제점은 묻지마식 야권연대 틀에 갇혀, 친 김정일 노선과 공산주의 수준의 복지정책 탓으로 국민적 지지율이 5%도 넘지 못하는 민주노동당에 끌려다니면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승리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친 김정일식 사회주의 노선 채택하는 민주당, 순천 재보선 최대 쟁점
이에 대해 민주당 내부에서도 강봉균, 김효석 의원 등 전문가 그룹, 다수의 호남 당원들은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중앙의 이인영, 천정배 등등 강경 민주노동당파들과,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 등 친노언론들, 백낙청, 오종렬 등등의 친노 시민사회의 겁박 탓에 제대로 발언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호남 의원들은 “민주노동당과의 연합은 필요하지만, 호남선거에서 민주당의 묻지마식 양보만은 안 된다”는 기회주의적인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있을 뿐이다. 누구 하나 “민주당이 5%짜리 민주노동당으로 좌클릭해서는 대선은커녕 총선에서도 참패할 것이다”고 주장할 담력있는 인물이 없는 것이다.
김경재 전 의원은 노무현 정권의 1등 공신이었음에도, 정당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열린우리당 창당에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에 남았다. 그러다 지난해 지자체 선거 당시 좌경화된 민주당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탈당했다. 70년 김대중 후보의 대선 캠프에 참여한 시기를 기준으로 하면 김경재 전 의원은 무려 40년 간 민주당 당원이었던 셈이다.
이번 순천 재보선에서 민주당의 공식 후보는 민주노동당이 정하게 되어있다. 김경재 전 의원은 일찌감치 무소속 출마를 준비했다. 민주당에 대한 애정이 있을 리 없고, 언론과 시민사회의 압력을 이용하여 민주당을 친 김정일식 북한 사회주의 노선으로 끌고 가려는 민주노동당 후보와 40년 민주당 경력의 김경재 전 의원이 맞대결을 하게 된다. 우습게도 민주노동당화되고 있는 현재 민주당의 얼굴은 15년 간 한나라당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손학규 대표이다.
이러한 구도 탓에 순천 재보선 선거는 민주당에 대한 노선투쟁이 불가피하다.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 출신이 이끌고 있는 민주당에 맞서 40년 민주당 경력의 무소속 후보가 혈혈단신으로 나선 정치적 그림에 기사 가치가 없는 것일까? 아마도 손학규 대표와 민주노동당은 “전남 순천에서 야당연합 후보가 실패하면,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휩쓸게 될 것”이라며 순천 주민들을 협박하게 될 것이다. 김경재 전 의원은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걱정한다면 제 2의 손학규를 꿈꾸는 한나라당 유력 주자를 보쌈해오면 되지 않냐”며 농담으로 응수해도 될 만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은 정치 기사라기 보다는 가십거리로서의 기사 가치가 있을 것이다.
오연호 대표의 조국 교수 대통령 만들기 기사, 읽을 만한 수준도 안 돼
2004년 탄핵부터 이번 재보선까지, 대한민국 정치 저널리즘의 최대 문제는 한 인물이 던지는 메시지보다는 오직 세력과 권력의 크기만을 고려한 기사 작성에 있다. 미국의 오바마가 초선 의원에서 단번에 대통령직에 오른 데에는 오바마의 권력과 당선 가능성을 넘어, 오바마가 던지는 메시지에 주목한 시카고 언론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국내 언론인 중에 이러한 일을 가장 부지런히 하는 인물은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이다. 그는 노무현과 문국현에 이어 이번에는 서울대 조국 교수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메시지이다. 오연호 대표는 시작부터 조국 교수의 메시지 생산능력이 아닌 그의 조건과 외모에만 집중하고 있다.
오연호 대표가 조국 교수를 인터뷰한 ‘진보집권플랜’의 책을 정독한 필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미안하지만, 오연호 대표가 던지는 질문은 읽을 만하나, 조국 교수의 답변은 아고라 네티즌만 못 하다는 판단을 한다. 메시지로만 볼 때, 조국 교수의 인터뷰는 언론에서 보도할 만한 가치도 없다.
그 점에서 미디어워치를 구독하고 있는 언론인과 학자들에게 당선 가능성은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고 전남순천 재보선의 지형도, 김경재 전 의원이 던지는 메시지에 주목해보라고 권하는 것이다. 미디어워치의 전남순천 관련 보도는 오랜동안 민주당 내의 역학구도를 익혀온 필자 입장에서 그 어떤 언론사보다 더 잘 쓸 수 있고, 미디어워치 역사에 기리 남을 것이라 확신한다. / 변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