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 고체물리학과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류씨는 지진이 발생한 11일 오후 2시40분쯤 도쿄의 프린스그랜드호텔 6층에서 세미나 중이었다. 류씨는 “건물이 마구 흔들려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며 “겁이 나 책상 밑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데 일본인 친구들이 외국인들의 안전부터 챙겼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학술회의가 끝난 뒤 12일 귀국하려 했지만 항공편을 구하지 못해 하루 더 묵었다. 류씨는 “여진이 계속돼 밤에는 1층 로비에서 옷을 입고 운동화를 신은 채 새우잠을 잤다”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일행이 두 명씩 조를 짜 불침번을 섰다”고 설명했다. 특히 공항까지 교통편이 없어 애를 먹자 국제학술회의 주최 측 일본인들이 나섰다고 했다. 류씨는 “일본인들이 직접 승용차를 몰아 호텔에서 하네다공항까지 데려다 줘 고마웠다”고 말했다.
일본 대지진 사흘째인 13일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입국장은 하루 종일 북적댔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는 20여 편의 항공편은 일본을 빠져나오는 한국인과 돌아가려는 일본인들이 몰리면서 만석에 가까운 탑승률을 기록했다. 대한항공 편으로 나리타공항에서 인천공항에 도착한 김명인(53)씨는 11일 도쿄의 게이오플라자호텔 33층에서 의류 판매 상담 중이었다. 김씨는 “일본에 자주 가 지진은 몇 번 경험했지만 이번엔 강도가 달랐다”며 “창밖을 보니 47층 호텔 빌딩이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처럼 휘청거리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진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33층에서 걸어 내려왔다”고 덧붙였다.
일본으로 돌아가는 승객도 많았다. 김포공항에서 이날 오전 9시 일본으로 떠난 기타 노부리는 “도쿄의 가족들과 문자로만 무사하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한국 기업과 투자 협의를 하러 왔다가 가족이 걱정돼 서둘러 귀국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과 한국을 오가는 대부분의 항공편은 12일부터 정상 운행됐다. 국토해양부 임현철 국제항공과장은 “강진 당일 패쇄됐던 나리타공항과 하네다공항 등이 하루 만에 정상화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진과 해일 피해가 심한 센다이 공항과 이바라키공항은 폐쇄 중이어서 센다이공항에 취항하는 하루 한 편의 아시아나항공은 결항되고 있다.
김포·인천공항=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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