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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선거 날에 생각하는 ‘큰 지도자’
위기관리 리더십 믿을 인물 있나
 
동아일보 기사입력 :  2011/04/2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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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히틀러의 거짓 선언문 받고 의기양양했던 英수상은…

이 위기를 누가…작은 선거날에 생각하는 ‘큰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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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작은 선거 날에 생각하는 ‘큰 지도자’
 
기사입력 2011-04-26 20:00:00 기사수정 2011-04-27 08:49:53
미국 35대 대통령 케네디는 23세 때인 1940년 ‘뮌헨에서의 유화정책’이라는 하버드대 졸업논문을 썼다. 영국이 히틀러의 전쟁범죄(2차 세계대전)를 막지 못한 배경을 다룬 이 논문은 ‘영국은 왜 잠자고 있었는가’라는 책으로도 나와 베스트셀러가 됐다.

평화는 구걸로 지켜지지 않았다


▲   배인준


1938년 봄, 독일 총통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다음 먹잇감으로 체코를 찍었다. 그전부터 영국에서는 하원의원 처칠이 히틀러의 야욕을 경고하며, 영국 공군이 독일 공군에 대한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창했지만 지지자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히틀러가 유럽 침략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하던 1938년 9월 영국 총리 체임벌린은 평화를 구걸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어떤 사정이 있어도 대영제국을 전쟁으로 끌어넣을 수는 없다. 무력충돌은 악몽이다. 나는 영혼 깊숙한 곳까지 평화 애호자다”라고 외쳤다. 영국 국민은 전쟁을 거부하는 총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체임벌린은 연설 후 뮌헨으로 날아가 히틀러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고 평화 쇼핑에 성공했다. 영국 국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귀국한 그는 히틀러가 서명한 평화선언문을 가리키며 “여기 우리시대의 평화가 있다”고 외쳤다. 히틀러에 대해 체임벌린은 “그 사나이는 냉혹하지만 한번 약속을 하면 믿을 수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해 지지자들로부터 다시 한번 ‘안도의 박수’를 받았다. 그때 처칠은 의회연설에서 “총리의 협상 결과는 전면적 절대적 패배”라고 비판했지만 심한 야유를 받아 몇 차례나 말을 끊어야 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39년 9월 히틀러는 선전포고 없이 폴란드를 침공해 2차 대전을 일으켰고, 네덜란드 벨기에 등을 거쳐 프랑스를 집어삼키고 영국까지 풍전등화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체임벌린이 비싸게 구입한 평화는 ‘거짓 평화’였다. 1910년대 1차 대전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의 전쟁 도발을 사전에 견제할 국력이 있었지만 실패했다.

논문에서 케네디는 영국이 히틀러의 패권 야욕을 막지 못한 배경으로 ‘1차 대전 이후의 간전기(間戰期)에 만연한 평화지상주의’와 ‘국제기구(당시는 국제연맹)에 대한 맹신’을 꼽았다. 더 근본적으로 영국 미국 같은 민주주의 체제는 위기가 코앞에 닥칠 때까지 강력하고 치밀하게 미리 대응하지 못하는 허점이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위기관리 리더십 믿을 인물 있나
 
 
영국은 2차 대전 방지에 실패했지만 처칠이라는 영웅을 낳았다. 그는 1940년 5월 체임벌린의 후임으로 전시 총리가 된 뒤 불굴의 위기관리 리더십을 발휘했다. 총리로서 행한 첫 의회연설에서 처칠은 “나에게는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 이외에는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승전 의지를 발산했다. 그는 영국과 세계를 “암흑의 시대로 후퇴시키지 않기 위한 싸움”을 진두지휘했고, 독일군의 폭격에 폐허가 된 도시들을 동분서주하며 자신의 상징이 된 ‘v’ 사인으로 군대와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처칠은 연합국의 승리를 이끈 전쟁지도자요, 영국 국민과 세계 자유인들을 히틀러의 손아귀에서 구해낸 위기관리 리더십의 표상으로 남았다.

1930년대 영국의 안보 실패는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인데…’ 하는 데자뷔(기시감·旣視感)를 안겨준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달러를 듬뿍 쥐여주고 ‘잘못된 통일방안’을 담은 평양선언을 한 뒤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dj 재임 중 김정일은 2차 연평해전을 일으켜 우리 군인 6명을 전사시키고, 2차 북핵 위기를 야기했으며,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하고, 동해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퍼주기 포용정책을 승계한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김정일은 8000여개의 폐핵연료봉 재처리 종료를 선언하고, 미사일 무더기 발사와 1차 핵실험을 했다. 대북 국제공조와 한미동맹 맹신이 위험한 것도 1930년대 유럽을 닮았다.

천안함이 북한군에 의해 폭침된 상황에서 “전쟁을 불사할 각오라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하면 전쟁세력으로 몰리고, ‘책임지지도 않는’ 평화만 외친 야당이 선거에서 이긴 것도 영국의 1930년대를 연상시킨다. 김정일의 명백한 전쟁범죄인 연평도 포격을 목격하고도 북한 탓보다는 정부 탓을 하는 세력이 판치는 것도 안보 실패의 또 다른 씨앗이 될 것만 같다. 김정일은 이 순간에도 대화카드 뒷장에 비수를 숨기고 있을 것이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세습체제가 지속되는 한 변함없을 것이다. 그 체제에 급변사태가 오면 오는 대로 남쪽의 확고한 위기관리 리더십이 절실하다.

5000만 국민은 위기관리 리더십을 믿을 수 있는 차기 대통령을 창출해야 한다. 누가 그런 지도자로 거듭날 것인가. 작은 선거가 있는 날 처칠 같은 큰 지도자를 생각하게 된다.

배인준기자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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