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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에 日정부 개입시사 사료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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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기사입력 :  2008/06/3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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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에 日정부 개입시사 사료 발견
지난 1895년 10월 8일 발생한 을미사변(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관련해 일본정부가 관여했다는 새로운 사료(史料)가 도쿄에서 발견됐다.
 

아사히신문은 “을미사변과 관련해 일본정부의 고위관료가 개입했음을 시사하는 편지가 발견됐다.”고 지난 28일 보도했다.
 
이번에 발견된 사료는 일본정부의 고위관료들이 주고받은 12통의 편지로 자금제공 등을 통해 명성황후를 회유하려던 당초 방침에서 강경책(명성황후 살해)으로 전환하는데 합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편지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조사하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정수웅씨가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찾아냈으며 구마모토대학 코마쯔 히로시(小松裕)교수가 그 내용을 해독했다.
 
먼저 당시 법무대신이던 요시카와 아키마사(芳川顕正)가 무츠 무네미츠(陸奥宗光)외무대신과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전 육군대신에게 보낸 1895년 6월 20일자 편지에는 일시 귀국한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공사와 만난 내용을 전하고 있다.
 
편지에서 요시카와는 이노우에에게 “미봉책은 과감히 포기하고 결행을 취하도록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수상을 설득해달라.”고 의뢰했으며 “이 방침이 자신과 무츠, 야마가타 3인의 ‘합동의견’이라고 설명하자 이노우에가 승낙했다.”고 쓰여 있다.
 
또 같은 해 8월 2일 노무라 야스시(野村靖)내무대신이 이노우에공사에게 보낸 편지에는 일본에 망명해 있던 박영효가 차기주한공사로 내정된 미우라와 우익성향의 정치결사단체인 ‘구마모토국권당’(熊本国権党) 대표와 비밀리에 만난 일을 적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정부의 자금 지원제안을 받은 명성황후가 “(일본의 자금을) 받지 않겠다.”, “(일본의 자금을 지원받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며 거절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편지의 해석을 담당한 코마츠교수는 “정부 고위관료 사이에 ‘결행방침’이 나오면서 이를 실행하기 위해 구마모토국권당을 수하에 두는 등의 준비가 진행됐다. 미우라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부임해 을미사변을 일으킨 뒤 단독범행으로 가장했다.”고 밝혔다.
 
이어 “청일전쟁에서 승리해 ‘문명국’ 대열에 오른 일본으로서는 이러한 만행을 감춰야만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아사히신문(1924년 당시의 미우라 고로)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철 기자 kibou@seoul.co.kr
기사일자 : 2008-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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