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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속 압록강변의 고구려 유적지 풍경
중국과 일본이 부러워하는 나라를 만드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대자보 기사입력 :  2008/08/19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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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중국과 일본이 부러워하는 나라를 만드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이대로
 지난 8월 10일  여행사를 통해서 4박5일 일정으로 고구려 유적지를 보려고 인천 공항에서 대련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중국인들이 고구려는 자신들의 소수민족이 세운 나라였으며, 고구려 역사는 자기들 역사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정책으로 말이 많은 곳, 학생 때 역사책으로만 듣고 본 고구려 땅을 가보고 싶어 중국 동북 지방에 간 것이다. 대련까지는 1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다.

1. 요동반도 끝자락에 있는 대련에 도착해서 아시아에서 가장 넓다는 대련시내에 있는  성해광장에 들렀다. 중국인은 세계에서 제일이라고 하길 좋아해서 큰 집이나 부처, 탑 같은 걸 많이 만든다. 성해광장은 바닷가에 있어서 시원하고 넓었다. 대련은 일제시대부터 일본인들이 많이 있는 도시로서 일본말을 하는 중국인이 한국말을 하는 중국인보다도 많다고 한다. 대련은 중국의 도시 가운데 집도 거리도 깨끗한 편이다.

2. 단동시 성해광장을 둘러보고 고구려 천리장성이 시작한 곳이며 해안방어 요지였던 비사성으로 갔다. 비사성은 중국에서는 대흑산성이라고 하는데 대련 시 외곽에 있으며, 사면이 절벽으로 되어 있고 서문(西門)으로만 오를 수 있는 천연의 요새일 뿐만 아니라, 산동반도에서 바닷길로 평양성에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요충지였으므로, 중국세력과의 사이에서 여러 차례 격전이 있었다. 2차례의 수나라의 공격을 잘 막아냈는데 645년(보장왕 4)에 당나라 태종이 직접 고구려 원정에 나섰을 때 비사성이 무너져서 고구려인 남녀 8,000명이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 비사성 중턱에 있는 누각. 누각에 오르면 단동시내와 발해만이 한 눈에 보인다.     ©이대로

 비사성에 오르는 산성 입구 냇가엔 여름 더위를 이기려는 중국인들이 많이 나와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전에는 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성문까지 차로 오르게 했는데 지금은 1시간 쯤 걸어서 올라가야만 해서 몹시 더웠다. 그곳 산천초목이 우리나라와 비슷해서 낯설지 않았다. 오르는 길가에 삼엽초가 있어 수집하기도 했다. 
 
3. 비사성을 구경한 뒤에 단동으로가 가서 압록강 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압록강 변 구경을 했다. 압록강은 한강보다 좀 넓어 보였고 물은 맑지는 않았고. 중국 쪽 철교는 화려한 조명으로 밝은 데 북한 쪽 다리엔 불빛이 없었다. 단동 쪽 압록강 변에는 산책로가 있고 많은 중국인이 나와서 산보도 하고, 사교춤도 추면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강물엔 화려한 조명을 받은 분수가 음악소리에 춤추는 광경이 장관이었다. 마치 상해 황포강 야경이 떠오를 정도로 울긋불긋 불빛도 찬란하고 먹을거리를 파는 포장마차도 있고 술집도 있었다.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자유로운 분위기다. 그런데 북한 신의주는 캄캄하고 조용해 죽어있는 땅으로 보여서 안타까웠다. 
 
 이튼 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압록강 가에 나가니 아침운동을 하는 사람이 가득하다. 근처  골목시장도 야채, 과일, 반찬거리를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강가엔 한글간판을 단 상점도 여럿 있었다. 압록강엔 103 개의 섬이 있는 데 3개만 중국의 섬이고 모두 북한의 섬이라고 했는데 멀리 위화도와 월령도가 보였다. 위화도엔 군인과 그 가족 포함해서 4000명이 살고 있다고 하는 데 적막하기만 하다. 빨리 통일되고 평화로운 시대가 되어 그 섬들을 관광지나 놀이터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쪽 땅은 관광지가 되어 한국 사람들 불러서 돈을 벌고 있는데 북쪽 땅은 총을 든 병사가 숨어있는 초소만 보였다.  
 
4. 아침 일찍 단동시 근처에 있는 호산장성에 올랐다. 천리장성의 시발점이라고 한다. 산성 아래인 한 발짝만 건너면 북쪽 땅인 ‘일보과’란 이름을 단 곳을 만들고 관광시켰으나 북쪽 지역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산성에 오르니 압록강 건너 북쪽 땅이 눈 아래 내려다 보였다.  산성 입구엔 북쪽이 운영하는 북한 토산품 상점도 있었다. 중국 땅에서 초라하게 가게를 꾸밀 게 아니라 코앞의 위화도나 월량도를 개방하고 그곳에 더 크고 멋있는 관광지로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봤다.
 
▲ 비사성 서문(중국에서는 대흑산산성 문이라고 한다)     © 이대로

 호산산성을 구경하고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고 처음 도읍지로 삼았다는 환인현에 있는 오녀산성을 올라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았다. 졸본성이라고도 불리는 데 산성은 100미터 바위로 된 산 위에 세운 천연 요새로서 성안에 백두산 천지처럼 생긴 호수도 있다고 한다. 산 아래에서 보는 산성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산성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고 하는데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서 안타까웠다.

5. 오녀산성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통화시로 가서 숙소에 들렀다. 그리고 뒷날 일찍 백두산으로 출발했는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4시간이 지나 백두산 입구에 가니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났지만 백두산 꼭대기엔 구름이 걸려있다. 그러나 가는 길엔 풍경이 아름다웠다. 중국에서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하는 데 오르는 길이 북파, 동파, 서파 3개가 있다. 연길에서 갈 때는 북파란 곳으로 간다. 3년 전에 그 길로 간 일이 있었는데 정상까지 차로 올라가고 천지 물이 중국으로 떨어지는 장백폭포도 있고 그 아래에 온천도 있다. 이번엔 서파란 길인데 가는 길가에 비행장도 만들고 있었다. 백두산은 6대4로 북한과 중국이 관리를 한다고 하는 데 서파는 북한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라 중국 군인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곳에선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해서 마음속으로 빨리 통일이 되고 내가 바라는 모든 일이 잘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1200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는데 구름 속에서 천지가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이는 실망해서 그냥 내려가는데 잠시 기다리니 잠깐 모습을 조금 보여주어서 사진을 급하게 찍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 호산장성 모습, 고구려 천리장성의 시발점이라고 한다.     © 이대로

6. 여행 4일 째 집안시내에 있는 고구려 두 번째 도읍지인 국내성으로 가서 광개토대왕비와 릉, 장수왕릉을 구경하고 압록강으로 가서 북한 땅을 바라보며 배를 탔다. 북쪽 땅 강가에서 군인으로 보이는 북한 사람이 낚시를 하다가 우리 관광객들의 모습을 보고 들어갔다.

 국내성은 사방으로 산으로 둘러싸인 요새로 보였다. 1909년에 중국 청나라 농부가 처음 비석을 발견했는데, 1920년 대에 만주를 침략한 일본 군인이 그 비석을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하다가 중국인들에 발견되어 못 가지고 갔다고 한다. 일본에 유리하게 비석의 글자를 바꾸려 해서 비석이 훼손된 곳이 보였다. 옛왕릉은 모두 일본인들이 도굴했다고 한다. 일본이 우리 땅은 말할 거 없고 중국과 동남아 곳곳을 침략해서 못된 짓을 많이 하고도 반성을 하지 않는 게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 용암이 흘러서 생겼다는 백두산 아래에 있는 금강대협곡     © 이대로

 장수왕릉을 관광한 뒤에 북쪽이 운영하는 묘향산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국내성 성벽을 보았다. 성벽 안에 아파트가 들어서서 서쪽 일부만 보여서 안타까웠다. 국내성은 424년 동안 고구려 도읍이었다가 평양으로 옮겼다고 한다. 국내성 방어진지인 환도산성도 들러 보았다.
 
7. 마무리 글

 중국이 고구려 역사가 중국 소수민족 역사라면서 우리를 자신들이 지배한 소수민족으로 만든 동북공정과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겨서 우리 마음을 흔들리는 때에 고구려 유적지를 살펴보니 남다른 감회가 들었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데 버스를 많이 타야하는 일과 화장실이 좋지 않은 것만 개선되면 좋은 여행지가 될 거로 보였다. 동북지방은 다른 중국 지역과는 다르게 산천초목과 풍경이 낯설지 않고 정겨웠다. 옥수수와 벼가 자라는 밭과 논을 보면서 고향에 온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중국과 우리가 서로 도와주며 다정하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그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이바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다짐도 했다. 함께 분들이 중국 동북3성과 백두산은 본래 우리 땅이라고 자꾸 말하니 안내원이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자꾸 우리 땅이라고 떠들면 그들이 더 경계하게 되고 서로 불편할 것이니 조용히 마음속에 생각을 담아두고 더 열심히 살고 그들이 부러워하는 나라를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괜히 중국이나 일본의 신경을 건드릴 거 없이 그들이 감히 그런 욕심을 내지 못하도록 힘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보람찬 여행이었다. 북한 땅이 눈앞에 있는 데도 발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빨리 통일하고 사이좋게 살 때 중국과 일본은 우리를 깔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한 보람찬 시간이었다.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사무총장
중국 절강성 월수외대 한국어과 교수
























 
2008/08/18 [15:47] ⓒ jabo
민족신문 편집자주: 민족신문 발행인은 대자보의 이창은 발행인과는 오래전부터 교류가 있지만 위글의 필자인 이대로 교수와는 아직 단한번도 만난적이 없으나, 이교수와 넷상에서 서로 공감을 느낀적이 더러 있기도 하고, 위의 이교수글이 시의적절하기도 해서 민신에 무단으로 전재하기로 했으나, 퍼다 놓고 보니 위글의 끝대목===>"자꾸 우리 땅이라고 떠들면 그들이 더 경계하게 되고 서로 불편할 것이니 조용히 마음속에 생각을 담아두고 더 열심히 살고 그들이 부러워하는 나라를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괜히 중국이나 일본의 신경을 건드릴 거 없이 그들이 감히 그런 욕심을 내지 못하도록 힘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여행이었다. 북한 땅이 눈앞에 있는 데도 발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빨리 통일하고 사이좋게 살 때... 대목은 유감스럽게도  도저히, 그리고 전혀 동의하지 못한다는 것을 일방적으로나마 꼭 밝혀두고자 한다.
 
왜냐? 대단히 결례이기는 하지만 이교수 같은 학자들의 그러한 방식의 대응은 참으로  순진하기짝이 없는 전형적인 책상물림의 낭만적(?) 환상=결국은 크나큰 착각일수 밖에 없기때문이다.
 
냉혹하기 이를데 없는 국제정치문제에 대해  이교수같은 낭만파적 논리를 펴는 이들을 가끔씩 볼때마다, 10대 소녀들도 아니고 ....참으로 신기하달까 ... 세계사나 인류문명사는 고사하고 동북아 역사를 모를리가 없을텐데   어떻게 저다지도 순진할수 있는지 당최 이해도 안되고, 안타까운 마음까지 드는것은 내 천성이 워낙 유별나게 호전적(?)이고  괴퍆하기 때문에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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