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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자’ 인간을 향한 100년 만의 금수회의록
"우리가 사라지면 4년안에 인간도 사라져"
 
[조인스] 기사입력 :  2008/12/0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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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크톤·박쥐·균·원숭이, 가장 귀한 種을 겨루다
 
 
 

세계적 환경단체인 '어스워치(earth watch)'는 지난달 20일 지구상에서 가장 대체 불가능한 종을 뽑는 행사를 개최했다. 벌·플랑크톤·박쥐·균·영장류 등 5개 종 가운데 하나를 참가자들의 투표로 선정했다. 이날 투표에서 1위를 한 것은 벌.중앙sunday는 1908년 나온 안국선의 신소설 『금수회의록』의 형식을 빌어 이날의 행사를 재구성했다. 벌·플랑크톤·박쥐·균·영장류들은 인간이 저지르는 환경 파괴를 보고 뭐라 했을까.

별안간 뒤에서 무엇이 와락 떠다밀며 “어서 들어갑시다. 시간 되었소” 하고 바삐 들어가는 서슬에 나도 따라 들어가 방청석에 앉아 보니 각양각색의 날짐승과 길짐승, 징그러운 벌레에 날아다니는 곤충들까지 꾸역꾸역 들어와 빽빽하게 서고 앉았다. 갑자기 개회를 알리는 방망이 소리가 똑똑 나더니 회장인 듯한 것이 단상에 서서 한마디하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 여러분을 청하여 만고에 없던 회의를 열려고 하니 주목해 주시오.”

“대체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건지 알 수 없소이다. 짧게는 수천만 년, 길게는 수억 년 전부터 지구에 살면서 서로 돕고 의지해 온 우리가 아닙니까. 한데 겨우 20만 년 전에 나타난 막둥이 족속인 인간이 멋대로 땅을 파헤치고 나무를 자르고 나쁜 가스를 내뿜는 통에 상상도 못할 변고들이 속출하고 있소이다.
 
대저 먹을 만큼만 먹고 나머지는 이웃과 자연에 돌려주는 게 지구에 머물렀다 가는 생명의 도리이거늘 인간이란 족속은 제 뱃속 불리기에만 열을 올리면서 온갖 횡포를 부리고 있소이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가장 귀하다, 높다, 신령하다 하며 다른 생명을 멸시하니 기가 찰 노릇이오. 오늘 회의 안건은 과연 지구상에서 가장 귀한 생물이 무엇인지를 가려 보자는 것이오.”

‘식물 결실의 마법사’ 꿀벌
공중에서 붕붕거리던 꿀벌 선생이 “내가 먼저 하겠소” 하며 연단에 올랐다.

“요사이 우리 종족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소이다. 아침에 꿀 따러 나갔다가 행방불명돼 버리는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소. 2년 전 미국에선 한꺼번에 절반 넘게 사라진 일도 있었다오. 세상에 이런 괴이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이오.

벌이야말로 지구 생태계를 유지하는 일등 공신이지요. 인간이 먹고살 수 있는 것도 우리 덕분이오. 인간이 먹는 작물의 70% 이상은 우리가 돌아다니며 수정을 시켜야 열매를 맺는 것들이라오. 인간 중에선 꽤나 지혜롭다는 소리를 듣는 아인슈타인이라는 자가 일찍이 ‘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인간도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하오. 너무나 당연한 말이오.

우리가 없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시오. 대부분 식물이 열매를 맺지 못해 사라질 것이오. 그러면 초식 짐승에 이어 육식 짐승도 사라지게 될 거요. 이제야 비로소 인간도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시작한 것 같소이다. 군집 붕괴 현상(ccd)이라나, 뭐라나 하면서 왜 벌이 사라지는지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하오. 하지만 전자파에, 살충제에, 온갖 매연에 어찌 우리가 제대로 살 수 있겠느냐 말이오.”




‘바다의 식량창고’ 플랑크톤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잦아들더니 이번엔 플랑크톤 선생이 연단에 나섰다.

“뒤에선 잘 안 보이시나? 성능 좋은 돋보기나 현미경을 하나 구하시지. 꿀벌 선생 말도 일리는 있소이다. 하지만 지구 표면의 70% 이상이 바다란 점을 감안하면 달리 생각해야 할 것이오. 바닷속 동식물 가운데 우리 덕을 안 보는 것들은 아마 찾지 못할 거요. 우리가 ‘지구의 식량창고’라는 칭송을 듣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오.

우리가 바다에만 사는 것도 아니라오. 대기 중에도 있고, 얼음 사이에도 있고, 펄펄 끓는 용암이나 타는 불길 근처에도 산다오. 어떤 친구는 공기가 없는 우주에서도 살 수 있다고들 합디다. 이쯤 되면 이 지구와 우주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분간될 거요. 우리가 내뿜는 가스가 구름을 만들어 낸다는 건 아는지 모르겠소. 땅 위에 비를 오게 하고 바람이 불게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있기에 가능한 얘기요.

흠흠, 이건 사족이오만 수많은 디자이너와 예술가가 우리의 찬란한 색채와 기묘한 형태에서 영감을 얻어 멋진 빌딩과 예술작품을 만들어 냈다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오.”

‘환경 조기경보 시스템’ 박쥐
퍼덕거리던 박쥐 선생이 그 뒤를 이었다.

“따지고 보면 중요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단 말이오. 박쥐도 마찬가지라오. 박쥐라고 하면 인간은 드라큘라나 핼러윈데이 따위를 떠올리겠지만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하는 일은 인간보다 훨씬 많소. 우리 종족 수가 갑자기 줄거나 늘면 뭔가 문제가 생길 징조라고 보면 됩니다. 조기경보 시스템이라고나 할까.

인간을 위해 하는 일도 많아요. 바나나나 망고 나무를 괴롭히는 곤충들을 우리가 잡아먹거든. 뭐 꼭 인간을 위한 건 아니지만 그들이 쓰는 살충제 비용도 아끼고 지구 환경도 지키는 거지. 그리고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인데 포유동물 가운데 날 수 있는 족속이 누군지 아시오? 바로 박쥐라오. 인간이 날기 시작한 게 100년 남짓 됐다지요. 흥, 날고 싶어 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오. 그러나 비행기니, 헬리콥터니 하는 물건을 타고 살충제나 농약을 마구 뿌려 대는 꼴을 볼 때면 얼마나 갑갑한지. 결국 제 목숨 재촉하는 줄 모르는 게지. 바다는 또 어떻소. 잊을 만하면 기름 배가 바다에 엎어지는 사고가 납디다. 낮이 밤 같고 밤이 낮 같은, 검은 바다를 본 적 있소? 인간이 만든 물건 중 세상에 도움 되게 쓰이는 게 대체 뭐란 말이오.”

‘생태계 최후의 보루’ 菌
균 선생이 못 참겠다는 듯 튀어나왔다.

“나도 한마디합시다. 인간들은 우리가 음식을 상하게 한다, 질병을 만들어 낸다 욕하지만 균이 없으면 이 지구는 쓰레기장이 되고 말 거요. 치즈·초콜릿도 바로 우리 덕분에 만들 수 있는 것 아니겠소. 항생제로 쓰이는 페니실린이나 콜레스테롤 조절 약인 스태틴은 또 어떻소. 바로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들이오. 노벨 의학상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받아야 마땅하오.

우리는 흙 속 생태계를 책임지고 있소이다. 우선, 나무 말이외다. 세상 나무 대부분은 영양분과 수분을 대지에 박은 뿌리로 얻지요. 그런 나무 뿌리를 흙에 연결시켜 주는 게 바로 우리요.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잘난 척하는 인간도 결국엔 흙으로 돌아가는 게 자연의 이치 아닙니까. 죽어 썩어져 사라진 모든 것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게 바로 우리들이 하는 일이오. 우리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보다 훨씬 섬세하고 동시에 방대하오.”

‘열대 숲의 정원사’ 영장류
뒤쪽에 서 있던 원숭이가 영장류를 대표해 머쓱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여러분은 우리 영장류가 인간과 가장 흡사하다며, 있으나마나 한 존재처럼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도 나름대로 큰 역할을 하지요. 우리는 열대·아열대 지역에서 주로 살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지구의 허파 같은 곳이지요.

이곳에 사는 엄청난 나무들이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산소를 내뿜기에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겁니다. 바로 이곳에서 우리가 열매를 따먹고 똥을 배설하는 덕분에 씨가 퍼져 울창한 산림이 유지되는 겁니다. 우리가 열대 숲의 정원사라고 할 수 있지요.”

생태계에서 보잘것없는 인간
“여러분 말씀을 들어 보니 다 옳은 것 같소. 자, 이제 누가 이 지구상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인지 가려 봅시다.”

1차 투표에서 1, 2위는 각각 플랑크톤과 벌이 차지했다. 하지만 둘만 겨룬 결선 투표에선 벌이 플랑크톤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해 지구에서 가장 귀한 생명체라는 영예를 안게 됐다.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한 와중에 회의를 지켜본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인간은 지구 생태계에서 어떤 쓸모가 있단 말인가. 만물의 영장이라며 잘난 척하다가 삶의 터전인 ‘하나뿐인 지구’를 망쳐 놓고 있지 않은가.



『금수회의록『
1908년 개화기 때 안국선이 쓴 소설. 관찰자 ‘나’가 꿈속에서 동물들의 회의를 참관한 내용을 정리하는 식으로 썼다. 까마귀·여우·개구리·벌·게·파리·호랑이·원앙 8종의 동물이 등장해 불효, 외세 의존, 부패, 불건전한 남녀 관계 등을 비판한다. 국내 최초로 판매 금지 처분을 받은 소설이다.

어스 워치(earth watch)
1971년 설립된 환경단체로 과학자·교사·학생·기업 등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하고 있다. 본부는 미국 보스턴에 있으며, 영국 옥스퍼드, 호주 멜버른, 일본 도쿄에 지사를 두고 있다. 설립 이래 120개국에서 진행된 1350여 개 환경 관련 프로젝트를 지원해 왔다. 현재 130명의 과학자와 3500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있다. 정회원만 2만 명이다.

군집 붕괴 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
2006년 초 미국 일부 대규모 양봉업체의 꿀벌 50~90%가 사라진 현상으로 등장한 용어다. 미 농무부 연구청은 ccd로 인해 2006년 하반기에만 전체 꿀벌 개체의 25~40%가 감소한 것으로 집계했다.

이 현상은 2004년 처음 나타났으며, 지난해엔 유럽에서도 발생했다. 윤병수 한국꿀벌질병연구소장(경기대 교수)은 “급성 마비 바이러스(iapv)가 꿀벌의 방향감각을 잃게 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며 “아직까지 국내에선 이런 현상이 없었다”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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