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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이 살고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보존된 민속마을-순천 낙안 민속촌
 
야후블로그 기사입력 :  2009/03/0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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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사진모음]
순천 낙안 민속촌 [suncheon-si]
2008/12/19 오후 11:00 | 일상생활[사진모음] | [yysk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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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 성 외곽에 있는 민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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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 내부 ↑ 지금은 살지 않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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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밖 넝쿨에 쌓여있는 살지 않는 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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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위에서 바라다 본 민속촌 성 안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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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낙안 민속촌에는 현지 주민이 지금도 옛모습 그대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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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 지붕과 뒷간의 생활 도구, 가스통이 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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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촌 안 짚세기와 방석을 옛 방식으로 삼고 있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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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안에 있는 연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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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아 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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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에 있는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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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남문

순천 낙안읍성은 원주민이 살고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보존된 민속마을이다. 
성의 규모는 높이 4m 정도의 성곽은 4㎞ 정도로 한 바퀴 도는데  30여분 정도 걸린다. 
서쪽편 언덕 위 성곽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읍성을 내려다 보고 있으면 온통 초가집 물결이다.
낙안 민속촌의  다른 점은 80여 가구의 원주민이 민박, 주막을 시 관리하에 운영한다. 
해질녘이면 낙안읍성에서는 옛 시골의 정감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집앞 텃밭 채소밭에서는 갖가지 농작물도 일구며 직접 생산,자급한다. 
초가지붕위 굴뚝에서는 밥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옛 촌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살아 있는 전통 민속마을이다. 
마을길과 골목길로 들어서면 방물가게,도예방및 온갖 전통생활도구와  국밥을 파는 식당 등도 있다.

현황
사적 제302호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서내리, 남내리 일원의 마을과 이를 둘러 싼 성곽을 말하며. 보호구역의 총면적은 성내 41,018평(135,597㎡)평과 성밖 50m까지의 26,472평(87,511㎡)평을 포함하여 67,490평(223,108㎡)평에 달한다.

1983년 6월 14일 사적지로 지정된 이후 1984~2005년까지 성곽 보수(補修) 1410m, 문루(門樓-동문(樂豊樓), 서문(樂秋門), 남문(雙淸樓) 복원(復元) 3동(棟), 동헌(東軒) 내아(內衙) 복원 5동, 평석교 석구(平石橋 石拘) 복원 1개소, 객사(客舍) 복원 1동, 해자(垓子) 복원 1식(式), 장터 난전(亂廛) 조성 8동, 공개전시가실(公開展示家室) 3호(戶), 민가 보수 94호, 민가철거보상 98호, 임경업 장군 비각(林慶業 郡守 碑閣) 보수 1동. 향토미술관 설치 1식, 전통민가 신축 4동, 전통음식 판매점4동,옥사복원1동,주도로포장3.7km,전문대문보수75개소등 보수 복원사업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로써 객사(客舍), 동헌(東軒), 내아(內衙),옥사등 관아(官衙) 4동과 낙민루(樂民樓), 낙풍루(樂豊樓), 쌍청루(雙淸樓), 임경업 장군 비각(林慶業 郡守 碑閣)등 누각(樓閣) 4동, 초가(草家) 208호, 와가(瓦家) 3호, 스레트 15호, 함석 5호등 민가(民家) 231동의 규모이고 관리사무소, 미술관, 자료관, 민속실이 각 1동씩 있으며, 난전및음식점, 기념품점 토산품점 : 11동, 기타매표소, 공중화장실, 전시가실등 : 27동, 민가: 231동(초가208, 스레트15, 함석5, 와가3) 이 있다.

중요민속자료(重要民俗資料) 지정가옥으로는 동내리의 박의준가옥(지정번호제92호), 최창우가옥(97호), 최선준가옥(98호), 서내리의 김대자가옥(95호), 주두열가옥(96호), 김소아가옥(99호), 남내리의 양규철가옥(93호), 이한호가옥(94호), 곽형두가옥(100호)등 9가옥이 있으며, 객사 낙안지관(客舍 樂安之館)은 전라남도 지방 유형문화재 제170호로, 임경업 장군 비각(林慶業 郡守 碑閣)은 문화재 자료(文化財 資料)로 관리되고 있다.

2004년 12월 31일현재 동내리 36세대 114명(성밖 7세대 18명)서내리 11세대 22명(성밖 2세대 3명) 남내리 38세대 93명(성밖 13세대 29명)으로 총 85세대 229명(성안 63세대 179명, 성밖 22세대 5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읍성안에는 3백년~6백년으로 추정되는 노거수(老巨樹)32그루가 있으며 그 중 15그루(은행나무 3, 느티나무 1, 팽나무 6, 푸조나무 3, 개서나무 2)가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특히 곽의 축(軸) 즉 돛대 역활을 한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와 객사 뒤편의 팽나무는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받는 낙안읍성의 보물로 여겨지고 있다. [글:낙안읍성홈페이지]

                        낙안읍성 민속마을 보존회 사무실(061-754-3150) [suncheon-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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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27 (토) 오후 8:54   [rkfkrkfk1@yahoo.cn]
어린시절( 지금으로부터 48년전) 여름방학에 비슷한 동네 친척집에서 2주일 지낸적 있는데...그 당시의 느낌( 내 표현대로는 부낌)이 한 평생 가슴속에서 살아 있어요. 한데 이 정경을 보니 그게 마구 움직여대는구만요....
아침 연기가 피어오르도록 사람들이 계속 살았으면.... 하는데,.. 암튼 자료제공에 감사 !
08/12/30 (화) 오후 5:02   mossben
할아버님의 인상이 강렬하군요! 존경스럽습니다.
09/01/01 (목) 오전 12:28   훈이대사
me,too
09/01/01 (목) 오전 12:32   [daniel1047315]
참고하세요
역학으로 본 우리 경제의 나아갈 방향
역학으로 본 노무현 전대통령과 봉하대군 노건평
역학으로 본 유명 개그맨 김용만과 김국진 비교
역학으로 본 탈렌트 노현희와 아나운서 신동진의 궁합 실례
http://cafe.naver.com/fortunedrkss1102
09/01/01 (목) 오전 8:13   [우사기]
대통령인내상을 줘야혀, 티비와 컴퓨터없이 살단히 쵝오! 할아버지는 신입니다!@
09/01/01 (목) 오후 10:10   [alsgur563]
※ 원주민이란? 옛부터 대대손손 한곳에서 터를 잡아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09/01/01 (목) 오후 10:38   [yyskgm]
아름답습니다. 새해아침에 고국의 풍경에 마음껏 젖어봅니다.
몇장 담아갈께요.감사합니다.
09/01/02 (금) 오전 12:32   [avance45309287]
인상적입니다. 사진 몇장 배경으로 삼을까 합니다...감사합니다.
09/01/02 (금) 오전 12:48   []
머~언 얘기가 아닙니다.우리들의 어릴때 모습이고, 우리 부모님들의 생활중 일부 모습이었습니다.60대~70대의 어릴적 생활모습이 아닐까 싶네요..
09/01/02 (금) 오전 10:08   [일하는백수]
전라남도 광양 인근에 있습니다. 한번 들 가보시기 바랍니다. 마을 집과 집들이 하수구 같은 것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여름에 한 곳에서 소독약을 투입하면 동네 전역에서 소독약이 솔솔 피어오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09/01/02 (금) 오후 2:44   [yaeimsu]
여름에 갈 때는 몰랐는데 초가지붕 이을때 작난 아니겠습니다.
09/01/02 (금) 오후 2:45   [yaeimsu]
좋은자료이네요
모셔가겠습니다...
09/01/02 (금) 오후 9:20   이도령
멋지다!
09/01/03 (토) 오후 3:17   [suk2]
................................
09/01/03 (토) 오후 4:14   [김동욱0909]
i want really want to go there.
09/01/05 (월) 오후 2:47   [jus6526]
우리 어렸을땐,다 저런집에서 살았는데...
09/01/05 (월) 오후 5:47   [곰탱이]
허허! 지금도 이런곳이
그런데 굴뚝이 없는게 이상 하네요
개스통이 있어서 그런가요
09/01/06 (화) 오전 5:59   [이장근]
오 한번 가고 싶다
09/01/07 (수) 오후 7:00   [별명짓기귀찮음]
이것이 바로 우리문화이자 우리가 꿈꾸는 이데아입니다
시멘트공구리속 아파트문화야말로 우리문화를 파괴하는 근본입니다
깨끗하다는건 자연과일치하는것입니다.불쌍한 아파트족들이여.
09/03/07 (토) 오전 1:05   [이순신]
외국에서 살고 있는데...왜 스크랩이 안되게 했는지 모르겠군요.
09/03/07 (토) 오전 2:50   [불씨]
좋은 자료감사합니다. 몇장 퍼갈께요
09/03/07 (토) 오전 5:01   [공명]
수 년전에 가 본 기억을 되살리며 몇 장 갖고 가겠습니다.
09/03/07 (토) 오전 6:03   낙숫물소리
야후 대문에 한국의 '원주민'이란 제목이 있어 들어와 원주민이라는 단어는 이곳과 적합하지 않는 단어입니다. 미국이나 호주같이 원래 터전을 삼고 있던 사람들을 밀어내고 정착이 된 나라들에서 쓰이는 말이지 우리나라와 같이 토속 민족들이 그대로 계승된 나라에는 적합하지 않은 말이죠.
09/03/07 (토) 오전 6:19   [dekomi]
조상님들의 얼이 담긴 진정한 우리의 모습같다!
09/03/07 (토) 오전 6:26   [salsaly49]
인근에 순천만 갈대밭이 유명하고 벌교엔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도 준공되어 보기 좋고요!
여수 오동도 동백꽃,천년고찰 송광사도 있어 한 번 오면 잊지못할 추억이 될 곳입니다!
09/03/07 (토) 오전 8:40   [시드니맨]
멋지다.
09/03/07 (토) 오전 9:02   [mr.chang@y]
참 아름답습니다
저런 모습들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 참 아쉽습니다
09/03/07 (토) 오전 10:05   [kncc2776]
보기에는 토속적이고 향수를 불러 일으킬지 모르지만 저런곳에서 산 옛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했을지...그리고 첫번, 두번째 집정도면 아무 못사는집에 속함... 초가라도 마루를 저런식으로 아루렇게 놓지않음....일본의 민속촌을 보니 외국인 관광객을 의식해 그런지 너무 반듯하고 깨끗해 마치 일본인은 옛날부터 모두 잘살았다는 느낌 마저 들었음...사실은 그게 아닌데도...
09/03/07 (토) 오전 11:51   [nsc4120]
옛날의 초가가 다 저렇지는 않은데 우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꼭 저렇게 다쓰러져 가는 오막실이를 민속촌이라 보여줄 필요가 있을지... 외국 관광객을 생각해서라도 좀더 정리할 필요가 있을듯... 일본을 거쳐 한국에온 외국인들은 일본인은 옛날부터 잘살았고 한국인은 원래 못살았다고 생각할것입니다.
09/03/07 (토) 오전 11:55   [nsc4120]
사실 일본도 저런 초가가 보통의 농가였는데 민속촌을 보면 저렇게 다 쓰러져가는 초가는 지금은 눈 씻고 봐도 없음...심지어는 일본식에 유럽식을 가미한 농가를 민속마을이라 소개할 정도....그만큼 일본은 대외적인 나라 이미지를 고려한다는 겁니다... 물론 당시 생활상을 보존하고 보여주는게 중요하겠지만 초가라도 좀더 깨끗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09/03/07 (토) 오후 12:06   [nsc4120]
참 좋네요
09/03/07 (토) 오후 12:14   [곰돌이]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다면 화장실과 가스통등의 내부 생활공간은 좀 개선해 줄 필요가 있지않냐? 가스통보다는 도시가스가 나을 것이고 외부에는 철처히 숨기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보여짐.
09/03/07 (토) 오후 12:18   [yjihun]
반갑습니다. 지난 10월에 순천 낙안마을 다녀왔고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다시 보니 그때 생각이
나서 정말 반가워요... 남편과 언니 그리고 아는분들 이렇게 해서 낙안마을 까지 갔지요... 빈대떡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가기 힘든 곳에 다녀 왔지요.... 바다님
09/03/07 (토) 오후 12:22   [myungja.sohn@sbcglobal.net]
옛모습을 보존할려는 노력은 보이는데
집집마다 자가용이며 경운기가 마당에 들어와 있더군요
그냥 그런 시골집으로 전향하더군요
관광객을 쫓아버리는 행태
09/03/07 (토) 오후 2:28   [화이트]
작년(08)여름휴가때 갓는데 재미있엇어요
잘보존 하여 주세요
아이들 고육용 으로도 괜찬을것 같아요
근처에서 벌교 고막도 맞있었읍니다
09/03/07 (토) 오후 4:38   [김중현]
여기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용인민속촌이나 여타의 민속마을과는 다른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자연마을과 읍성으로 주민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마을입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관광객도 거의 없고 마을에 식당이라고는 성밖에 주로 주민을 상대로 영업하는 허름한 식당이 한곳 있었죠. 정말 고즈넉하고 분위기가 아주 좋은 곳이었죠.
09/03/07 (토) 오후 7:24   [ihpaik]
그런데 책과 언론에 소개 되면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관광영업장으로 바로 바뀌더군요. 주민들도 고통을 호소하고요. 실제로 주민이 생활하는 집인데 벌컥
방문열고, 사진찍고....
09/03/07 (토) 오후 7:25   [ihpa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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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0년전 연해주는 ‘한인 터전’ 확인
 
연해주 한민족사 ‘2300년 맥’ 찾았다…옥저·발해 ‘쪽구들’ 발견
입력: 2008년 09월 04일 18:21:46
 
ㆍ발해 생활상 담긴 유물 쏟아져
ㆍ사슴그림·집모양 토기 등 특이

러시아 연해주에서 발해인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집 모양의 토제품과 사슴이 그려진 토기편이 발견됐다. 또한 연해주에서 한인의 역사가 옥저~발해~19세기 한인 이주민으로 이어졌음을 실증해주는 유구와 유물이 쏟아졌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발견된 발해 시대의 사슴그림 토기편

러시아 체르냐치노 발해 유적을 발굴해온 한국전통문화학교(총장 이종철) 조사단은 4일 “발해의 문화상을 알 수 있는 토제 집모형 1점과 사슴그림이 새겨진 토기편, 그리고 발해 군인들의 무장상태를 알 수 있는 철제 대도(大刀), 갑옷, 화살촉 등이 쏟아졌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견된 유물 가운데 특히 토제 집모형과 사슴그림 토기편이 주목된다. 토제 집모형은 입방체 위에 사다리꼴 지붕을 올린 것으로 높이 6.2㎝이다. 벽체와 바닥에 각각 원통형 구멍이 관통해 내부에서 십자로 교차한 모양이다. 토기편에 새겨진 사슴은 높이와 너비가 각각 6㎝ 정도이다.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는 길며 엉덩이를 위로 치켜 올리고 달려가는 듯한 생생하고 역동적인 모양이다.

또 3점이 출토된 철제 대도 가운데 1점은 길이가 86㎝나 됐고, 화살촉 가운데 삼익촉(三翼鏃·날개가 셋 달린 화살촉)은 연해주 발해 유적에서는 처음 나온 것이다.
토제 집모형

정석배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집 모양 토제품은 발해인의 집을 복원할 수 있는 귀한 자료”라면서 “사슴 표현물까지 합쳐 보면 발해인의 신앙까지 더듬어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 교수는 “특히 구멍을 뚫은 집모양 토제품은 샤머니즘과의 관련성 여부가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옥저(bc 3~ad 2세기)와 발해(ad 698~926년)의 온돌이 확인된 데 이어 올해 조사에서는 옥저 쪽구들 1기와 19세기 한인들이 남긴 온돌도 발굴됐다.

정 교수는 “이로써 이 지역은 2300년 전인 옥저 시대부터 1937년 스탈린에 의한 강제이주로 뿔뿔이 흩어질 때까지 한인들의 터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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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한민족사 ‘2300년 맥’ 찾았다…옥저·발해 ‘쪽구들’ 발견
입력: 2007년 08월 17일 03:43:48
 
러시아 연해주에서 2300년 전의 옥저 온돌(쪽구들)과 발해 온돌이 한꺼번에 확인됐다.

6월28일부터 8월3일까지 러시아 조사단과 함께 연해주 체르냐치노 발해유적을 발굴한 한국전통문화학교 발굴단(단장 정석배)은 주거지 1기에서 발해 온돌과 옥저 온돌을 차례로 발굴했다.

◇옥저·발해 온돌이 한꺼번에=지난 7월22일이었다. 정석배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의 눈이 빛났다.

발굴단은 이미 이 발해 주거지에서 발해시대 쪽구들(부분 온돌) 1기를 확인한 바 있다. 그때 확인한 발해 쪽구들의 길이는 4.5m가량이었고, 아궁이 일부와 ‘ㄷ’자 모양의 구들이 대부분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날 발해인들이 버린 생활 폐기물 구덩이를 파다가 바닥 땅부분에 불에 탄 흙(소토) 2줄기를 본 것이다.

“아, 이건 옥저의 쪽구들이야.”

정교수의 직감은 맞아떨어졌다. 소토의 흔적을 파서 옥저-크로노브카(러시아에서 옥저시대와 비슷한 초기철기시대를 일컬음) 문화층에서 ‘ㄱ’자 모양의 쪽구들을 확인한 것이다. 아궁이는 폭이 약 60㎝로 약간 넓은 타원모양이고, 위에는 작은 판석 3장이 놓여 있었다. 아래쪽은 재가 충진돼 있었고, 바닥은 불에 딱딱하게 달궈져 있었다. 쪽구들의 전체길이는 2.2m가량 됐다.

이렇게 발해 온돌(ad 698~926년)이 확인된 주거지 바로 1m 밑에서 옥저(bc 3세기~ad 3세기)의 온돌을 확인한 것은 획기적인 성과다. 온돌의 기원문제를 가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면면히 흘러온 우리 역사의 일맥을 밝히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온돌의 기원은 옥저=온돌의 기원은 문헌상으로 “고구려의 풍속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데, 겨울에 긴 구덩이를 만들고, 그 아래 불을 때서 따뜻하게 한다”(후당서)고 돼있다. 이 문헌 자료는 ‘온돌의 고구려 기원설’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옥저, 즉 북옥저 기원설이 힘을 받고 있다. 연해주 지역에서 기원전후의 온돌이 잇따라 발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에 가장 이른 시기(bc 3~bc 2세기가량)의 옥저 쪽구들이 발견됨으로써 옥저기원설에 더욱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또한 옥저 온돌 1m 위쪽에서 발해 온돌이 발견된 것도 주목거리다. 옥저와 발해 사이에는 약 400년간의 시간 공백이 있다.

이 시기 연해주 지역은 말갈의 영역이었다. 송기호 서울대교수는 “말갈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에서는 쪽구들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쪽구들과 말갈의 연관성은 별로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유적(체르냐치노 유적)을 보면 그렇습니다. 옥저와 발해문화층 사이에 말갈의 문화층, 즉 온돌 같은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정석배 교수)

결국 고고학적 층위를 살펴보면 온돌은 시공을 초월해서 우리 민족만의 고유 문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옥저 이후 400년간이나 발걸음을 끊었던 우리 민족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둥지를 틀었을 때 고유의 난방법인 구들을 얹고 불을 땠던 것이다. 그리고 발해 이후 900년 이상 연해주에서 사라진 우리 민족은 19세기 중엽부터 남부여대(男負女戴)로 이곳에 이주함으로써 다시 역사 속에 나타난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쪽구들뿐 아니라 옥저-크로노브카 문화층에서 토기가마의 흔적을 찾았다. 이밖에도 생활폐기물 유구와 토기, 조개껍데기 단추, 뼈 장신구, 골·철촉 등 다량의 옥저 및 발해유물이 쏟아졌다.

◇연해주에 이어진 2300년의 역사=그러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이 연해주에서 우리 역사의 맥이 2300년간 끊길 듯 끈질기게 이어졌다는 것이다.

“보시다시피 옥저와 발해 주거지가 확인되었고, 불과 70년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던 한인 이주민의 흔적도 보입니다.”

바로 이 옥저·발해 주거지에는 1937년 스탈린의 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떠나야 했던 고려인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고려인들의 판잣집과 저장시설인 움터, 그리고 백자편들이 확인된다. 유적 바로 곁에는 옥저와 발해인, 그리고 고려인의 터전을 묵묵히 지켜본 라즈돌나야강이 흐르고 있다. 발해의 솔빈부(지방통치조직의 하나)를 따라 흐른다 해서 솔빈강이었는데 러시아가 이름을 바꿨다.

“옥저인, 발해인, 한인 이주민 모두 농업을 주업으로 삼았던 동일민족입니다. 그러니 농사에 적합한 땅을 찾는 눈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을 겁니다.”

정석배 교수는 “이번 발굴성과는 한반도를 벗어난 이 연해주 땅에서 우리 역사의 맥락이 2000년 이상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체르냐치노|이기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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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4 [23:58] ⓒ 민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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