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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아 기억나니 ? 김일성대 캠퍼스에서 나눴던 이야기들...
10여년전 그날, 부자세습에 분노했던 김일성대 학우들이여…
 
동아일보 펌 기사입력 :  2009/06/04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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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아 기억나니 ? 김일성대 캠퍼스에서 나눴던 이야기들...
필명 : 동아일보 펌 날짜 : 09.06.03 조회 : 6

* 이 글은 북한 김일성대 출신으로 2002년 탈북 한국으로 와 현재는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중인 탈북자 주성하씨가 최근 북한의 3대 세습

  이 이루어졌다는 보도를 접하고, 그에대한 착잡한 심경을 편지형식으

  로 적은 글입니다.




   꽤 읽어볼만한 내용이라서 퍼와봤습니다. 개인적으론 가슴 한 켠이

  뭉클해져오면서 또 한편으론 아려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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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6-03 02:57




10여년전 그날, 부자세습에 분노했던 김일성대 학우들이여…




주성하 기자 

   



《친구들아 기억나니 주석궁 앞을 밤 새도록 거닐며 우린 북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었지

대학청사에서 삐라를 뿌리고 투쟁의 불씨가 되겠다던 친구야

굶어 죽어가는 꽃제비를 보며 가슴치던 또 다른 친구야

어떻게든 살아만 있기를…

한국에 오니 사람들은 북한에서 왜 봉기가 일어나지 않느냐고 묻더구나

하지만 그건 이름없이 스러진 숱한 북한의 반정부 투사들을 모르고 하는 소리지

2대 세습도 못견뎌했던 우리인데 이젠 3대 세습이라니…

속으로는 도리질을 하며 겉으로는 충성맹세하는 슬픈 현실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







탈북 주성하 기자가 北의 옛 친구들에게 쓴 ‘회한의 편지’




이제는 우리가 헤어진 지 10년도 더 지났구나. 친구들, 아니 동지(同志)들아.




오늘(2일) 아침 북한에서 3대 부자 세습이 공식 확인됐다는 기사를 읽는 순간 가장 먼저 너희 생각이 났다. 함께 뜻을 모으던 옛일들이 떠올라 지금은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우리의 운명에 새삼스레 더욱 가슴이 아팠다. 마침 4일은 중국 베이징(北京)대 학생들이 주축이 됐던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 20주년이 되는 날이구나. 아마 우리의 고민도 그 무렵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a야. 시국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내가 너에게 처음 던졌던 말을 기억하니? “넌 우리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니”였어. 지금 고백하지만 난 그 말 한마디를 건네기 위해 너를 3년 동안이나 지켜봤다. 북한에서 인간적으로 아무리 가까워도 이런 말은 쉽지 않지. 너도 알다시피 이 말을 하는 순간 상대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긴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내 말이 국가보위부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최고 정치교육을 받고 있는 놈이 우리 정치제도에 의문을 품었다”는 죄목만으로 정치범이 될 것이 뻔했으니까.




남쪽에서 ‘아일랜드’라는 영화를 봤다. 사는 곳을 천국이라고 주입받은 복제인간들이 그 사실에 의문을 품자마자 죽임을 당하는 미국 영화야. 이 영화를 보면서 그때를 떠올렸어. 착한 너는 그때 나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나를 고발하지 않았지. 그 대신 내 생각을 돌리겠다고 무진 애를 썼지. “장군님을 믿고 따르면 좋은 시대가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네가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는지 궁금하다. 당시 김일성대 인근 벤치엔 도청장치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었지. 속 터놓고 말할 곳을 찾던 우리는 지금은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변한, 가로등이 환한 주석궁 앞 거리를 오가며 날이 새도록 우리 조국(북한)의 미래를 논했지. 그 헤아릴 수 없는 숱한 밤들….




굶주림에 피골상접해 숨져가는 동포들 모습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던 b야, 너는 어느 날 “이 사회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투쟁의 불씨가 되겠다”며 김일성대 2호 청사 22층에서 삐라(전단)를 뿌리고 분신 자결하겠다고 했어. 난 그때 밤새도록 너를 설득해야 했지. “무서워서 누가 네가 뿌린 삐라를 감히 주워볼 수 있겠니. 필요 없는 짓이다. 8촌까지 멸족당할 게 뻔한 여기서 가족을 먼저 생각하자. 북한이라는 수용소에서 헛된 죽음을 맞는 대신 밖으로 뛰쳐나가 수용소 사람들을 구출하는 투사가 되자”고 설득했었지.




그런데 결국 나 혼자 남한에 왔어. 너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불안감이 자꾸 든다. 김일성대 출신이 처형되는 경우엔 주민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며 공개총살이 아니라 비밀리에 처형된다고 들은 바 있어. 어떻게든 살아있길….




너를 생각하면 혼자 살아남은 자의 비애가 가슴을 찌른다.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유대인 빅토르 프랑클 박사는 이렇게 말했지.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금서(禁書)를 잘 구해오던 c도 생각이 난다. 북한에 100부밖에 출판되지 않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이틀 밤을 새우며 손으로 베끼면서 처음 접해보는 자본주의 경제학에 매료됐던 때가 생각나. 우리는 자본주의도 꽤 괜찮은 사회라며 우리 조국의 사회주의가 갖는 모순에 대해 밤새워 토론했지. 일반인은 구경하기도 힘든 달러를 흔들어대며 여자들을 유혹하고 다니던 고위 간부들의 자식과 지방 어디서나 볼 수 있던 굶어 죽어가는 꽃제비들을 목격하고는 너는 가슴을 쳤지. 넌 “가족까지 버리며 목숨 바칠 용기는 없다”며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조용히 체제에 순응해 사는 길을 택했었지.




그리고 d 동지. 엘리트 군인으로 10년을 바치고 대학에 왔었죠. 나이가 많아 우린 d 동지라고 불렀었죠. 내가 먼저 접근했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d 동지는 “우리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먼저 내게 물었죠. 당신의 현실 인식과 분석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졸업 후 최고위급 간부의 사위가 되어 출세의 길에 들어섰죠. 정운의 후계 추대를 계기로 북한 간부들이 충성 경쟁을 벌인다고 들었습니다. d 동지 역시 앞장서고 있나요? 늘 뛰어난 분이었으니깐. 자식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됐을 지금은 가슴속에 과거의 고뇌를 묻고 있나요, 아니면 버리셨나요?




친구들아. 당시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고뇌는 입으로는 ‘인민’이란 말을 달고 살면서 실제로는 사실상 봉건왕조인 정권이 얼마나 지속될까 하는 답답함이었지. 그러면서 ‘사회주의가 과연 인민을 위한 이상적인 사회냐’ 하는 고민을 했었다.




함께 고뇌했던 우리가 지금은 세 갈래 길로 갈려 걷고 있구나. 누구는 충성계층으로, 누구는 방관자로, 그리고 나는 반항의 길로…. 탈북을 반항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난 늘 우리 마음속에 공통분모가 있었던 그때가 그립다. 밤을 새우고 아침엔 씩씩하게 강의실에 올라가는 열혈청년이었던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온다면….




남한 사람들은 내게 “북한엔 왜 봉기가 일어나지 않느냐”고 묻는다. 자유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니 세계 유일의 세습체제를 견디는 인민들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겠지. 그런 질문들은 참아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목숨 바쳐 민주주의를 성취했는데 북한은 바보들이 사는 곳 아니냐”며 비아냥거리는 말을 들을 때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단다. 북한 사람들이 흘린 피는 남한보다 100배는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사는 수십만 명의 정치범과 체제에 반항했다는 이유로 귀중한 목숨을 잃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 그들의 희생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누구라도 북한에서 하루만 살아봐도 그런 질문은 할 수 없다. 남한 사람들은 광복 후 소련이 아닌 미국이 진주한 것에, 억울하게 숨지면 이를 써줄 수 있는 언론환경을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한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말할 권리는 한 번도 박탈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신이 분신해도 적어도 자신의 가족은 함께 몰살되지 않음에 감사해야 한다.




10여 년 전 우린 김일성 김정일 2대 세습에도 그토록 못 견뎌 했지. 그런데 지금 3대 세습이란다. 난 너희들에게 “3대 세습이 가능하냐”고 묻고 싶다. 누구나 머릿속에선 도리질하면서 겉으론 충성을 맹세하는 이 현실이 과연 얼마나 오래갈 수 있느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지금 이 글을 너희는 보지 못하겠지. 북한에서 이 글을 볼 수 있는 선택받은 사람 대다수는 나의 김일성대 선후배들일 것이다. 지식인이라면, 더구나 한국 언론까지 볼 수 있다면 3대 세습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두뇌까지 노동당에 맡기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니까.




내가 평양에 돌아가는 날이면 이 글을 꼭 너희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어떤 고민을 함께 했었는지 열띤 토론을 벌이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토론기를 다시 내가 몸담은 동아일보에 싣고 싶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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