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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송논쟁과 비교조차 부끄러운 사이비보수 수구세력의 망동
 
훼드라 기사입력 :  2009/08/2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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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송논쟁과 비교조차 부끄러운 사이비보수 수구세력의 망동
필명 : 훼드라 날짜 : 09.08.20 조회 : 7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도 어느덧 이틀이 지났다.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한편 정부는 김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장 6일장으로, 영결식은 일요일인 23일에, 그리고 장지는 서울 국립 현충원으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국장은 1979년 10.26 사태로 서거한 박정희 대통령 이후 30년만이며, 건국이래 두 번째 치르게 되는 국장이다. 지금까지 전직 대통령의 장례는 이승만,윤보선의 경우 가족장으로, 최규하,노무현의 경우 국민장으로 치러졌으며 전직대통령의 장례방법과 절차는 대개 유족의 뜻이 존중되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른다 하자 소위 조갑제류 수구세력의 반발이 만만찮다. 조갑제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국장을 결정한 이명박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매장시키겠다며 이를 갈고 있고, 노무현 정권 당시 반핵반김 집회를 주도했던 국민운동본부는 국장 보이콧 운동을 벌이겠다 선언했다. 일부 극우단체들은 오늘 국장반대 기자회견까지 벌일 모양이다.




 이러한 사태를 보고 벌써 일각에서는 ‘ 21세기판 예송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며 비아냥거리고 있다. 하긴 어제하루 이전의 관례등을 예로 들어가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를것이냐 국민장으로 치를것이냐 언론보다가 분분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무엇보다 국장발표가 있자마자 당장 발끈하며 반발하는 세력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의 사태를 조선 현종때 있었던 예송논쟁과 비교한다는것은 어불성설이다. 예송논쟁이 무엇이었는지 그 내막을 살짝 들여다보면 지금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수구세력의 집단반발과는 전혀 비교할수 없는 성격의 것임을 알 수 있다.




 1659년. 조선 17대 임금 효종이 승하했다. 그러자 인조의 계비 자의대비의 복상 문제가 논란이 된 것이다. 병자호란으로 인해 청나라로 볼모로 끌려가야만 했던 두명의 비운의 왕자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그중 소현세자는 귀국한지 얼마 되지않아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동생인 봉림대군이 세자가 되어 인조사후 왕위에 오른것이다. 따라서 효종은 가통(家統)으로 보면 둘째아들이 되나, 왕통(王統)으로 보면 적자(嫡子)가 된다. 따라서 효종의 상을 장자의 예를 따를것이냐 차자의 예를 따를것이냐가 논란의 핵심이었다. 주자가례에 의하면 부모가 자녀의 상을 치를때, 장자일땐 3년상, 차자이하일땐 1년상을 치르도록 했다.




 사실 이런 논쟁이 벌어지게 된 근본 원인은 인조말기에서 효종,현종조로 이어지는 특수한 정치상황 때문이었다. 인조는 정비 인렬왕후가 세상을 떠난후 44세의 나이에 15세의 계비(繼妃)를 맞아들이는데 그녀가 장렬왕후다. 그녀는 인조의 차남 봉림대군(효종) 보다도 다섯 살이나 어렸다. 즉 나이어린 계비가 대비가 된후, 자신보다 나이많은 의붓아들 상을 치르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정치상황하에 벌어진것이 자의대비(장렬왕후. 자의는 효종이 즉위후 그녀에게 내린 존호)가 아들 효종의 상을 치르려면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는가. 그것이 예송논쟁의 핵심이었다.




 한편 장렬왕후에 대해선 역사의 평가가 이론이 분분하다.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뒤 장렬왕후가 봉림대군을 적극적으로 지원 왕위에 올렸다는 설에서부터, 그녀는 대신들의 등쌀에 휘둘린(예송논쟁) 어린 허수아비 대비에 불과했다는 설까지. 어찌되었거나 장렬왕후는 효종이 세상을 떠난 14년후인 1673년 효종비 인선왕후마저 세상에 떠나자 다시 제2차 예송논쟁(장자의 며느리일 경우 상복이 1년, 차자의 며느리일 경우 9개월간 상복)에 휘말리는등. 한마디로 예송논쟁의 그 대상 자체이자 핵심이었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은 오늘날 국회에서 흔히 보는 욕설,고함에 싸움박질이 난무하는 그런 뒷골목 깡패싸움이 아니다. 지금 당장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를 찾아가 그 시절 구구절절한 상소문들을 읽어보라. 사실 예송논쟁에서도 볼수있듯이 조선시대 당파싸움의 근본원인은 어떻게하면 예학을 바로세워 왕도정치를 펼것인가 하는 주자학의 원칙논리 싸움이었다. 한마디로 고금의 역사와 학문, 철학등에 통달하지 않고는 그러한 예학논쟁에 끼어들 수 없는것이 당파싸움이었던 것이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누구말마따나 전문서적 두세권 이상은 통달하지 않고서는 끼어들 수 없는 싸움이란 이야기다.




 툭하면 빨갱이니 반역자니 하는 막말을 일삼고, 국장 보이콧 운동을 벌이겠다느니, 누구를 생매장 시키겠다느니, 자신들과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 하여 망자(亡者)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차리지 않는 패륜적 언동들이 어찌 예학과 문벌을 바로 세우기 위해 벌였던 300년전 조상들의 고품격 논쟁과 비교나 할 수 있는 대상인가. 지금 당장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를 찾아가 당파싸움이 극심했던 시절 대소신료들의 언쟁이나 상소문들을 살펴보라. 경서(經書)와 고사(故事)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보이며 논리를 펼치고 있는 그분들의 글과 말을 접하다보면 그야말로 요즘 언필칭 보수세력과 지적 수준차이가 엄청나게 난다.




 우리는 흔히 조선시대 당파싸움중 가장 한심했던 사례로 왕이 죽었을때 대비의 상복을 몇 년 입힐것인가 하는 문제로 싸운 예송논쟁을 든다. 특히 일제는 식민사관을 주입하면서 조선시대 당파싸움중에서도 그와같은 부분들을 애써 강조하고 부각시켰다. 하지만 예송논쟁에서부터 삼백수십년이 지난 지금 전직 대통령의 국장 문제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세태가 350년전 예송논쟁과 과연 무엇이 다른가 생각해보자. 아니, 최소한 그 시절 예송논쟁은 명분과 품격이 있었음을 생각해본다면, 뒷골목 패륜아가 아니고서는 할수없는 온갖 욕설과 독설을 내뱉는 언필칭 보수사이트의 네티즌들은 부끄러워서라도 지금 당장 자신들이 올린 게시물들을 삭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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